[매경이코노미스트] 우리는 왜 기후변화에 무심할까
자책감 느낀 인간에 피로감만
기후행동 유도에 더 도움 안돼
희망 전파하고 효능감 공유를
꽤 오랫동안 기후변화가 현실이며 되돌릴 수 없는 파국으로 가는 길에 예상보다 빨리 들어섰다는 경고가 쏟아져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대중은 기후변화에 대해 여전히 시큰둥하다.
경제학은 인류가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을 DNA에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물론 인류는 종의 생존을 위한 장기적 선택보다 항상 당장 필요한 선택을 우선시해왔다. 기후변화는 더 어렵다. 장기적으로 안전한 선택은 지금 당장 크고 작은 불편과 손해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자 앞에 있는 사슴을 향해 돌진하지 않는 인류의 선택은 종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이었다. 이랬던 인류는 기후변화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위험 회피를 위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아직 많은 사람이 기후변화가 가져올 파괴적 결과에 대해 잘 모르고 있어서일까? 이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최근 국내에서 일어난 인명 피해를 동반한 홍수나 매년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폭염이 놀랍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우리는 이미 기후변화를 부정하기에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있다. 최근에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지금 당장, 그것도 매우 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10년 내에 재앙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해도 기후변화는 큰 이슈가 아니다. 왜일까?
노르웨이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페르 에스펜 스토크네스는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이를 막기 위한 활동을 게을리하고 논의마저 꺼리는 현상을 다섯 가지 심리적 장벽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거리감이다. 그간 기후변화는 코로나19와 같은 즉각적인 위협과 달리 추상적이며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먼 미래, 또는 못사는 나라의 문제로 여겨져왔다. 이 요인은 더 이상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가 되지 못한다. 2021년 랜싯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을 포함한 10개국 16~25세 인구의 84%가 기후변화에 대해 어느 정도 걱정하고 있으며, 59%는 지구의 미래에 대한 실존적 공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기후변화를 장기간 파멸 또는 '최후의 날' 내러티브로 묘사하며 사람들이 갖게 된 피로감이다. 두려움과 죄책감을 강조하면 우리는 처음엔 긴장하지만 별 변화 없이 위기가 장기간 지속되면 방어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그 결과는 무력감과 문제를 무시하며 논의 자체를 피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부조화'다. 부조화는 개인이 어떤 사안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것 사이의 괴리 때문에 발생한다. 사람들은 재활용이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행동이라고 믿으면서도 그 효과에 대해 회의적이다.
장기간의 부조화가 지속되면 우리는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정보를 피하거나 무시하게 되는데 이것이 네 번째 장벽인 '부정'이다. '부정'을 통해 우리가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불편한 현실에 직면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 다섯 번째 장벽은 '정체성'이다. 기후변화는 종종 개인의 가치관, 정치적 성향, 라이프스타일 선택과 결부돼 있다.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비판이나 의문은 인신공격으로 간주되며 이를 이용하는 정치권에 의해 정체성 논쟁, 다른 상대를 비난하는 소재로 발전한다.
이러한 분석은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는 기후위기를 다루는 소통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온전히 내 책임이 아닌 일에 자책감을 갖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에 사람들은 불편하고 피곤해한다. 절망과 비난이 가득한 내러티브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희망'을 전파하고 기후행동의 '효능감'을 공유해야 인류는 종의 미래를 향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것이 스토크네스의 메시지다.
[오형나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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