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우 선배보다 차가운 유령으로 무대 서고 있어요"

이용익 기자(yongik@mk.co.kr) 2023. 7. 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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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주역 김주택
김주택이 유령의 상징인 마스크를 들고 있다. 오른쪽은 부산 공연 모습. 이충우 기자·에스앤코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는 뮤지컬이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다. 일종의 이벤트로 가끔 공연이 열리는 정도다. 하지만 세계적인 오페라 바리톤으로 인정받던 김주택(36)이 뮤지컬을 보는 시각은 조금 달랐다. 그에게는 뮤지컬이 오페라보다 더욱 활기차게 즐길 수 있는 '놀이터'처럼 보였다.

오는 21일부터 시작되는 '오페라의 유령' 서울 공연을 앞두고 만난 김주택은 일종의 운명론을 통해 작품에 임하는 소감을 밝혔다.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이 13년 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뮤지컬 작품 중에 가장 내 정체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이 딱 맞는 타이밍에 열리는 것"이라며 웃어 보인 그는 "아마도 뮤지컬 한번 제대로 해보라는 계시를 받았나 보다"고 밝혔다.

이미 부산에서 3개월 동안 공연을 마쳤지만 서울 공연이 다가오자 긴장한 모습도 있었다. "이제 막 샤롯데씨어터에서의 연습을 시작하는데 여기는 1열이 가까워서 관객분들 표정 하나하나 다 보인다고 조승우 배우가 겁주더라"고 말한 그는 "물론 오페라 경험은 많이 있지만 한국 관객분들이 더 냉철한 것 같다. 아무래도 노인분들이 많은 유럽 오페라와 달리 한국 뮤지컬 관객들은 젊어서 활기가 넘치고 반응도 좋고 눈빛까지 매섭다 보니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새삼 2009년 이탈리아 예시 페르골레시 극장에서 '세비야의 이발사'로 데뷔해 유럽에서 인정받던 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클래식 외길을 벗어나 한국 뮤지컬 무대에 서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물론 한 분야에 집중해서 파고든 장인분들이 존경스럽고 대단하다"면서도 "다만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뭐든지 볼 수 있는 시대인 만큼 아티스트들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방송에도 나가고, 뮤지컬에도 도전했다. 그 이전의 내가 경주마였다면 이제는 가림막이 사라진 기분"이라고 도전의 이유와 그 기쁨을 드러냈다. 이어 "막상 해보니 오페라를 할 때는 내 에너지를 전부 방출하면 붕 뜰까봐 자제했는데 뮤지컬 배우분들은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쳐 나랑 너무 잘 맞는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이미 수많은 무대 경험을 쌓고, 고국으로 돌아와 음악 경연 프로그램 등에도 출연했던 그지만 진짜 유령이 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긴 했다. "발성과 연기 딱 두 가지가 문제였다"고 돌아본 김주택은 "오페라에서 크게 하는 발성과 뮤지컬에서 마이크를 통해 하는 섬세한 발성이 다르고, 또 대사를 할 때도 번역이 돼 한국말로 하니 필터링 없이 바로 관객이 느끼게 신경 써야 한다"고 짚었다.

고생하던 그를 도와준 것은 '뮤지컬 선배'들이었다. "조승우 배우에게 제가 거의 연기 레슨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눈치도 안 보고 많이 물어봤다"며 웃어 보인 그는 "초대 유령이었던 윤영석 배우도 하나씩 팁을 던져주시고, 스무 살부터 알고 지냈던 전동석 배우 역시 도움을 준다"며 감사를 표했다.

각자의 연기톤에 드러나는 차이를 묻자 "관객들께 각자 해석을 맡기고 싶다"고 전제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기도 했다. "전동석 배우는 크리스틴에 대한 사랑이 드러나 부드럽고 애절한 맛이 있고, 조승우 배우는 크리스틴을 뮤즈로서 감싸주는 느낌이 잘 드러난다"고 돌이켜본 그는 "나는 크리스틴을 소유물로 여기고 내 음악을 완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다가 가면 갈수록 감정을 느끼는 식으로 풀어보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유령의 모습들이 기대되는 대목이었다.

이번 공연 이후에도 뮤지컬에 대한 그의 관심은 오래도록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김주택은 "의외로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영웅'의 안중근, '하데스타운'의 하데스 등 바리톤이 할 수 있는 배역이 많더라. 기회가 되면 악역으로 분한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다"며 미래를 점쳐봤다.

'그렇다면 이제 뮤지컬 배우로 정체성을 굳히는 것이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제 길을 넓힌 것이지 기존의 길을 버린 것은 아니다"고 못 박은 그는 "한국에서 제대로 오페라를 보여드리고 싶은 생각도 있고, 한계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 틀이 없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과거 성악 레슨으로 용돈벌이를 해본 적도 있다는 그는 "돌이켜보면 준비만 열심히 하는 친구들보다 이것저것 콩쿠르 많이 나가보는 친구들이 빨리 실력이 늘더라. 심장이 뛰면 어떤 음악이든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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