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귀국 직후 수해 현장 방문 “저도 어이가 없다”
“비통하고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공무원엔 “현장 나가서 미리 대처” 주문
수해에도 우크라 방문에 ‘성난 민심’ 달래기
윤석열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수해 현장을 찾았다. 수해로 인명 피해가 커지는 가운데 귀국 일정을 연기하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부랴부랴 성난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5시10분쯤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 편으로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후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집중호우 대처 상황을 점검했다.
녹색 민방위복을 입은 윤 대통령은 오전 8시30분쯤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대본 회의에서 “비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이번 폭우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의 상황을 모두 엄중하게 인식하고 군경을 포함한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야 된다”며 “복구 작업과 재난 피해에 대한 지원 역시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 정책 수단을 모두 동원하여 후속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공직자들에게도 “국민의 안전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집중호우가 올 때 사무실에 앉아만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둘러보고 미리미리 대처해 달라”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이런 기상 이변은 늘 일상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상, 이러한 기후 변화의 상황을 이제 우리가 늘상 있는 것으로 알고 대처를 해야지, 이것을 이상 현상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인식은 완전히 뜯어고쳐야 된다”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경북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산사태 피해 현장을 찾았다. 83가구 143명이 살고 있던 이 마을은 지난 15일 발생한 산사태로 30가구가 파손돼 두 명이 실종됐고, 주민 50여명이 임시주거시설로 대피했다. 산에서 계곡으로 이어지는 지역에 위치한 이 마을은 수백톤의 바위와 뿌리째 뽑힌 커다란 나무들로 뒤덮여 있었고, 마을 곳곳에는 반파·전파된 집들과 종잇장처럼 구겨진 자동차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윤 대통령은 김학동 예천군수와 이영팔 경북소방본부장으로부터 집중호우 피해 상황과 인명구조 상황 브리핑을 들은 뒤 피해 주택과 파손 도로 등을 둘러봤다. 윤 대통령을 토사물을 퍼내고 있는 마을 주민들에게 “수고가 많으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산사태로 뒤집힌 차량 1대를 둘러보며 “나만 찍지 말고 주변을 모두 찍어놓으라”고 지시했다. 피해 복구 작업 중인 군·소방·경찰 관계자들과도 만나 “수고 많으시다”라며 격려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이재민 임시거주시설로 쓰이고 있는 벌방리 노인복지회관을 방문했다.윤 대통령은 이곳에 모여 있던 주민 50여명의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고 “아이고, 아이고, 얼마나 놀라셨어요”라고 위로를 건넸다. 한 할머니는 윤 대통령의 손을 잡으며 울먹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저도 어이가 없다”며 “저는 해외에서 산사태 소식을 듣고 그냥 주택 뒤에 있는 그런 산들이 무너져 갖고 민가를 덮친 모양이라고 이렇게만 생각했지, 몇백톤 바위가 산에서 굴러내려 올 정도로 이런 것은 저도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봤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여기서 좁고 불편하시겠지만 조금만 참고 계시라. 식사 좀 잘하시라”며 “정부에서 다 복구해 드리고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우선 실종자 수색에 최선을 다하고, 마무리되는 대로 반파·전파된 가옥을 수리하거나 새로 지을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힘을 합쳐 최대한 돕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국내수해가확산하는 상황에서 귀국 일정을 연기하고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것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자 부랴부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행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 순방 중 발생한 수해로 인한 사망자는 40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16일(현지시간) 폴란드 현지에서 집중호우 피해가 심각한 상황인데 우크라이나 방문 취소를 검토했는지를 묻자 “한국 대통령이 당장 서울로 뛰어가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는 입장”이라고 설명한 것을 두고 야당을 중심으로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순방 중 명품 매장을 방문한 것도 여론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YTN에 출연해 ‘우리나라 수해 소식을접했을 것 같은데 우크라이나 방문이 고민되지 않았느냐’는 진행자 질문에 “저희가 현지 시간으로 해서 금요일 저녁 8시에 우크라이나행 열차를 탔다”며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대규모의 피해는 없었다”고 말했다. 조 실장은 “그때까지는 제 기억에는 (청주) 오송 터널 (사고) 초기거나 아직 보고받기 전이 아니었나 싶다”며 “그래서 초기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시는 것과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순방 기간 수해 대응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는 비판 관련 질문에 “윤 대통령이 출국 전 여러 차례 사전대비를 철저히 하고 특히 저지대 주민들을 미리 대피시키라는 구체적 지침을 내린 바가 있다”며 “이번 수해에 대응하는 정부가 그 지침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여부는 어느 정도 단계가 지나면 한번 점검할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이날 찾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산사태 피해 현장과 관련해 “말하자면 기후 변화로 인해 기상이 극단화되고 그에 따른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즉 천재지변의 측면이 크다고 말할 수 있겠다”며 “기후 변화로 인해 기상 상황이 우리 예측을 벗어나서 극단화되고 있다는 걸 어쩔 수 없이 경험한 사고”라고 말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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