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 美 증권위와 소송서 이겼지만… 가상화폐 증권성 판가름 이제 시작
다만 기관 투자자가 직접 구매한 리플은 증권
판매 방식에 따라 증권성 갈려
업계 “앞으로 증권성 판단 논란 이어질 것”
가상화폐 전체 시가총액 4위 ‘리플(XRP)’의 증권성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법원이 리플의 발행사 리플랩스가 기관 투자자에게 직접 판매한 리플에 대해선 증권 성격을 지닌다고 판단하면서 가상자산 시장은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됐다. 가상자산업계에서는 법원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일부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이에 따른 또 다른 증권성 시비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17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1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지방법원은 리플의 발행업체 리플랩스와 SEC의 소송 약식판결을 내리면서 “거래소에서 판매한 리플은 증권으로 볼 수 없다”며 리플랩스 측의 손을 들어줬다. 2년 넘게 이어온 법적 공방 끝에 리플랩스가 우위에 서면서 리플 가격은 전날 대비 70% 급등해 한때 최고 0.87달러(1101원)까지 올랐다. 다만 리플의 상승세는 잠시 주춤하면서 이날 오후 1시 52분 기준 0.74달러로 내려앉은 상황이지만 이는 전주 대비 60.30% 오른 수치다.
업계에서는 리플이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증권성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지방법원은 비록 거래소에서 판매된 리플은 증권이 아니라고 했지만 판매 방식에 따라 일부는 증권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리플 판결을 맡은 아날리사 토레스 판사는 “기관 투자자, 헤지펀드 등에 판매한 리플은 투자자들이 리플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는 투자 계약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판결은 미국 ‘하위(Howey) 테스트’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은 하위 테스트에 따라 증권성을 판단하고 있다. 하위 테스트는 ▲투자자금(Investment of money) ▲공동의 사업(common enterprise) ▲타인의 노력이 반영되는지 여부(derived from the efforts of others) ▲수익이 창출될 것이라는 합리적 기대(reasonable expectation of profits) 등 4가지 기준으로 구성돼 있다.
뉴욕지방법원이 주목한 것은 세 번째 기준인 ‘타인의 노력’ 여부다. 해당 기준을 쉽게 설명하면 기관 등 제3자의 노력에 따라 코인 가격이 오르고 내린다면 이는 증권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법원은 리플 기관 투자자들이 리플랩스를 통해 직접 리플을 구매했던 만큼, 리플랩스 추후 사업 결과가 리플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비슷한 방식으로 판매된 코인들이 증권성 논란에 휘말릴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특히 이전 리플과 비슷한 구조로 판매한 코인의 경우, 증권이라고 판단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시총 10위권 대형 코인으로는 솔라나(7위), 카르다노(8위), 폴리곤(10위) 등이다. SEC는 지난 6월 이 코인의 판매 방식과 구조가 하위 테스트의 요건을 일부 충족한다며 ‘불법 증권’이라고 지목했다.
가상자산 전문 분석업체 원더프레임의 김동환 대표는 “법원이 기관 투자자들이 구매한 리플을 증권으로 분류한 이유는 리플 대표가 이전 기관 투자자들에게 리플을 팔면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여러 차례 약속한 것이 주요하다”라며 “다만 이러한 방식은 폴리곤 등 여러 코인도 과거 택한 바 있기 때문에 이들 코인 역시 증권성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번 판결 결과에 따라 새로운 증권성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도 했다. 이번 판결문엔 ‘락업(lock-up)’된 코인을 수익 대신 받을 경우 투자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가상자산업계에서는 빈번하게 이뤄진 행위기 때문이다. 락업이란 보유한 코인의 일부를 일정 기간 동안 거래하지 못하도록 묶어두는 것을 뜻한다. 리플랩스와 같은 가상자산 발행처는 코인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되, 보유자들이 이를 처분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시장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법으로 락업 서비스를 이용해 왔다.
김 대표는 “법원은 기관 투자자들이 리플을 바로 처분하지 않고 몇 년간 보유했던 이유로 그들이 코인을 들고 있음으로써 ‘일정한 수익’을 기대한 것으로 봤다”며 “만일 다른 법원들이 이 부분을 준용할 경우, 락업 서비스를 통해 사업을 넓혀 온 다른 코인 발행처들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법조계에서는 약식 판결과는 별개로 이번 소송전이 장기전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기관 등의 투자가 증권성을 지닌 것으로 판단됨에 따라 추후 가상자산 프로젝트들도 투자처를 구하지 못하는 등 여러 악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주현철 법무법인 이제 변호사는 “많은 사람이 이번 약식판결을 두고 ‘리플의 승리’로 보고 있지만 증권성 논란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라며 “SEC가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가능성도 충분하고, 다른 가상자산 업체들과 분쟁도 여전히 진행 중에 있기에 상황을 낙관하기엔 이르다”고 했다.
홍푸른 디센트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대부분의 가상자산 프로젝트는 기관으로부터 초기 자금을 투자받아 몸집을 키워왔다”며 “다만 이번 판결로 이러한 행위는 투자 계약으로 간주될 수 있기에 앞으로 많은 가상자산 프로젝트들이 투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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