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비의료인 의료기관 개설시 탈법 정황 발견돼야 처벌”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설립했더라도 기관 자금을 부당하게 유출하거나 유령회사를 만들어 악용한 구체적인 위법 정황이 발견돼야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7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B의료법인의 이사장이다. 그는 의사가 아닌데도 2009년 무렵 B의료법인 명의의 C병원을 개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A씨가 C병원 소속 의사들을 직접 고용하고, 이들이 다수의 환자들을 진료하게 하는 등 의료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의료법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의료법인 등이 아닌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1심과 2심은 A씨를 C병원의 개설자라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1심은 “A씨에게는 의료법인을 개설하는 것이 의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했고, 2심은 “A씨가 이사장 지위에서 과다한 급여를 지급받았으며, 자신의 배우자 등 임직원들에게도 과다한 급여를 지급하는 등 영리를 목적으로 이 사건 의료법인을 운영했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가 의료기관 개설자격을 위반했다고 인정하려면 위법 정황에 대한 추가적인 심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의료법인에 재산을 출연할 수 있는 사람이 의료인으로 한정되지 않을 뿐더러, 법상 의료법인의 임원 자격이 의료인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임원의 지위에서 의료기관(병원)의 개설·운영에 주도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의료법인의 본질적 특성에 기초한 것”이라고 했다. 의료법인의 임원 자격이 의료인에 제한되지 않은 이상 의료법인 이사장인 A씨가 관련 병원에 자금을 출연하는 것도, 기관 운영에 관여하는 것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A씨가 의료법인을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하거나 공공성·비영리성을 해친 정황이 인정될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유령 의료법인을 만들어 병원 개설·운영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거나 의료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한 정황이 인정될 경우 의료기관 개설자격에 위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하급심에서 A씨의 위법 정황을 추가로 심리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의 운영 수익을 부당하게 유출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의미가 아니”라며 “의료기관 개설을 위해 의료법인을 악용하는 등 법인의 공공성·비영리성을 일탈하는 행위는 철저하게 금지되고, 그와 같은 행위를 한 경우 (중략) 처벌 대상이 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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