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버스' 타다 연행된 장애인 "우리가 버스를 타려는 이유는…"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권리단체 활동가들이 장애인이 타지 못하는 '계단버스'에 탑승하는 방식의 버스 시위를 시작했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 버스정류장에서 약식 기자회견을 열고 "22년 동안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외쳐왔지만 장애인을 배제하는 차별버스(계단버스)는 여전히 당당하게 운행된다"라며 "기어서라도 차별버스에 탑승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지난 2021년부터 지하철 행동을 통해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벌여오던 이들이 지하철이 아닌 버스 행동에 다시 나선 데에는 최근 불거진 서울시 및 국민의힘 측 '전장연 때리기'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입장발표에 나선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는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휴전 제안에 따라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멈추고 지하철 선전전만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지속적인 민사소송과 과태료 부과 등을 통해 갈라치기와 전장연 죽이기에 나섰다"라며 "우리는 오 시장의 전장연 죽이기, 마녀사냥 중단을 촉구하기 위해, 그리고 장애인 권리 보장을 선전하기 위해 비폭력·불복종 버스 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로 6번째 시위에 나선다"고 밝혔다.
앞서 박 대표는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글래드호텔 앞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가로막는 방식의 버스 시위를 진행하다 경찰에 연행됐다가 하루 만에 석방되기도 했다. 전장연은 이날부터 진행된 버스시위에선 "횡단보도로 내려가 버스를 막아서는 시위를 하진 않겠다"라며 "다만 오늘부터는 승강장에서 버스를 태워줄 것을 촉구하겠다"고 앞으로의 시위 방식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이날 현장에서 진행된 버스 시위는 휠체어 이용자인 장애인 활동가가 휠체어 진입이 불가능한 계단버스에 탑승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휠체어에서 내려 버스 계단 위로 진입했고, 박 대표 등 전장연 측 활동가들은 "장애인도 버스 탈 수 있도록 기다려주시고 탑승을 시켜주십시오"라고 연호했다.
이 과정에서 버스 운행이 지연되자 경찰은 버스에 탑승하려는 이 대표를 버스 밖으로 끌어내렸다. 경찰은 이 대표 등 서울장차연 활동가 2명을 미신고불법집회, 버스운행방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해 남대문 경찰서로 연행했다.
전장연은 "이규식 서울장차연 대표가 차별 버스에 함께 타려고 했다는 이유로 남대문경찰서로 연행됐다"라며 "수십 년 동안 요구한 장애인 이동권의 외침은 무시한 채 장애인을 차별하고 탄압하기 바쁜 한국 인권의 처참한 현실"이라고 반발했다.
전장연은 경찰이 이 대표를 연행한 직후 집회 해산을 선포했지만, 앞으로 '서울시가 전장연에 대한 탄압을 중단할 때까지' 버스 시위는 계속될 예정이다. 박 대표는 "우리는 22년 전에도 이곳 혜화동에서 '버스를 탑니다' 시위를 했었다. 그렇게 22년 동안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제기했지만 차별버스의 현실은 여전하다"라며 "우리가 (버스에) 탈 권리가 있다는 걸 서울시민에게 알려나가면서, 또한 오 시장이 과도한 행정폭력을 멈추고 (장애인 권리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하면서 행동을 이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01년 당시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는 △시내버스에 장애인용 수직리프트를 장착할 것 △휠체어를 탄 채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를 도입할 것 등을 요구하며 버스 시위에 나선 바 있다.
2004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으로 장애인 이동권 개념이 법문에 명시되면서 정부는 △2011년도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31.5%를 저상버스로 전환 △2016년까지 전국 시내버스 중 41.5%에 저상버스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5개년 계획(2007)을 수립했지만 실제 도입률은 2016년 기준 19%에 그치는 등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에서 운행 중인 저상버스는 총 9840대로, 전체 시내버스 3만 5445대의 27.8% 수준이다. 서울시나 광역시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40% 수준에 이르지만 농어촌 등 지역의 평균 저상버스 보급률은 10%대에 불과하다. 법문 등에 명시된 저상버스 도입 조항은 '의무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도입을 책임져야 할 지자체는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저상버스 도입을 거부하거거나 미룰 수 있다.
한편 지상에서 운행되는 버스나 트램 등을 막는 방식의 장애인 권리 운동은 지난 1970년대 독일에서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유서 깊은 형태의 당사자 운동이다.
당시 독일 사민당(SPD)이 주도하는 브레멘 의회가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차량 서비스를 도입했다가 예산상의 어려움으로 이 서비스를 제한하려고 하자, 장애인 당사자 단체 '절름발이그룹' 등이 브레멘 시내 중앙 교차로에서 버스와 트램을 막고 시위를 벌였다. 해당 시위로 브레멘 의회는 장애인 차량 서비스 예산삭감 계획을 철회했다. (관련기사 ☞ 열차·트램 운행 막은 독일 '전장연', 그들이 독일을 바꿨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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