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송아지 죽고 닭 5만마리 폐사해도…"슬프다고 말 못해"

청주(충북)=정세진 기자 2023. 7. 1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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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의 한 우사에서 침수 피해에서 살아 남은 송아지가 쉬고 있다. 20여시간 침수된 축사에 있던 이 송아지는 가죽이 물에 불어 주름이 생겼다. /사진=정세진 기자


"사람이 그렇게 죽었는데 우리는 슬프다고 말도 못 하죠."

17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의 한 우사. 70대 후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도와 비 피해 복구 작업을 하고있던 임모씨(43)는 이같이 말했다. 우사에서는 연신 소들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45년 이상 소를 키운 임씨의 어머니는 "어미소들이 새끼를 잃어 내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임씨 축사를 포함한 옥산면 일대는 지난 15일 이른 오전부터 이튿날(16일) 오전까지 20여 시간 침수됐다. 임씨 축사는 제방이 무너진 미호강과 직선으로 300m 거리에 있다. 당시 물이 어른 키만큼 차 있어 임씨는 50마리 소가 모두 죽은 줄로 알았다고 한다.

다행히 성체 소들은 머리를 물 밖으로 꺼내 숨을 쉬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지새웠다. 임씨는 물이 빠진 후 축사 곳곳에서 송아지 사체를 수습했다. 축사에서 소 사료를 먹으려는 비둘기를 쫓기 위해 키우던 고양이들도 모두 죽었다. 임씨 축사에서는 이번 폭우로 한우 송아지 9마리가 죽고 성체 1마리가 실종됐다.

임모씨(43)의 아버지가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에서 운영하는 축사는 지난 15일 오전부터 이튿날 오전까지 약 20여시간 물에 잠겨 있었다. 소들은 물 밖으로 머리만 내놓고 20여 시간을 버텼다. 사진은 축사 CCTV 갈무리. /사진=임모씨 제공


임씨가 키우던 송아리 10마리 중 1마리는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살아남은 송아지는 가죽이 물에 불어 주름이 생긴 채 축사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임씨는 "소들이 기운이 있으면 서서 돌아다니는데 20여 시간 물에 잠겨 있다가 사람들이 와서 복구작업이 이어지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임씨 어머니는 잃어버린 성체 소를 찾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도 슬프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지만 지하차도에서 죽은 젊은 사람들 생각하면 우리 피해를 말하긴 어렵다"고 했다.

충북 청주시 관계자는 "축사가 침수되면서 1~2마리씩 피해를 본 농가들이 많다"며 "이런 곳들은 현재 정확한 피해가 집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의 한 비닐하우스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이곳에선 이번 침수 전까지 호박을 수확하고 있었다. /사진=정세진 기자


임씨 축사 옆의 비닐하우스 2동도 모두 침수됐다. 호박 수확기에 발생한 피해였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A씨는 남은 호박을 전부 폐기해야 한다. A씨 역시 자식같이 키운 소를 잃은 임씨 앞에서는 아쉬운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A씨 비닐하우스는 아직 복구 작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충청북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까지 이번 비 피해로 충북에서만 1802.2ha(헥타르, 1ha=1만㎡)가량의 농작물이 피해를 봤다. 농작물 종류별로 △벼 1528.8ha △사과 23.3ha △콩 3.6ha △옥수수 4.9ha △기타 244.6ha 등이다.

박모씨(55)가 청주 청원구 오창읍 학소리에서 운영하는 양계장은 이번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었다. 영상은 박씨가 지난 15일 오전 10시쯤 촬영한 양계장의 모습. 이후 수위가 높아지면서 육계 5만 6000여마리가 모두 폐사했다. /영상=박모씨(55) 제공


인근 양계장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청주 청원구 오창읍 학소리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박모씨(55)는 이번 호우로 키우던 닭 5만6000여 마리가 폐사됐다.

출하를 하루 앞두고 사고가 났다. 빗물이 순식간에 들이쳐 420평(약 1388㎡) 규모 양계장 2동이 모두 물에 잠겼다. 성인 허벅지 높이로 물이 차면서 닭들이 폐사했다. 폐사체 수거에만 2000여만원이 들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청주시는 60여명의 인력과 포크레인, 대형 트럭 등을 지원해 2차 피해가 발생하기 전 폐사체를 모두 수거했다.

양계장에서 쓰던 집기류를 처리하기 위해선 폐기물 처리 비용 30만원이 필요했다. 박씨는 구청 담당 주무관에게 30만원을 빌렸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AI(조류인플루엔자)로 5만6000여마리를 '예방적 살처분' 조치한 이후로 빚을 갚지 못했다. 돈이 부족해 가축 보장한도가 낮은 상품을 선택해 5만마리만 가입했던 터라 보상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17일 오후, 청북 청주 청원구 오창읍 학소리에 있는 박모씨의 양계장에 계분이 쌓여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박씨는 닭고기 공급업체와 계약에 따라 출하를 못해도 납품받은 병아리값과 사료값은 내야 한다. 양계장에 쌓인 계분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500만원이 더 필요하다. 박씨는 평소 거름을 만드는 업체에 100만원을 주고 마른 계분을 처리했다. 침수로 계분이 젖어 거름을 만들기 어려워졌다며 업체에서는 500만원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충청북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까지 침수 피해로 폐사한 가축은 △육계 약 8만4000수 △오리 2만2000수 △쏘가리 치어 5000마리 △한우 5두 △염소 30두 △대농갱이(메기목 민물고기) 88만마리 등이다.

17일 오후, 이번 비피해로 육계 5만 6000여 마리가 폐사한 청북 청주 청원구 오창읍 학소리에 있는 박모씨의 양계장에서 마지막 남은 육계 1마리가 쉬고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청주(충북)=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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