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서평연대 열 번째[출판 숏평]

기자 2023. 7. 1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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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는 가족(김보리 지음 / 다람)

혼자라는 가족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구성원이다. 사회가 정한 가족의 형태에 ‘혼자’는 없다. 1인 가구와 독신 가족 등으로 불리지만, 혼자 산다고 말하면 가족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가족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가족의 의미가 ‘서로를 책임지고 돌보는 구성원’이라면 어떨까. 저자 김보리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가 나뿐이라면 스스로 본인을 돌보면 될 뿐이며 혼자서도 가족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스스로를 그 무엇으로도 정의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는 모습에 뭉클한 위로를 받았다. ‘혼자라는 가족’은 우리가 굳이 무엇이 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누군가의 배우자나 어디 소속 사람 등 그런 타이틀 없이도 괜찮다고, 그저 자기를 잘 들여다보면서 살아가면 된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돼야만 한다는 강박을 쥐여 주는 이 세상에서, 나는 누군가 이렇게 말해 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현다연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현다연



■연암 산문의 멋(박수밀 / 현암사)

연암 산문의 멋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고속의 압축 성장을 이뤄냈다. 이렇게 급격하게 발전을 이뤄내면 우리는 옛것을 미뤄 두거나 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지나간 것을 무시하거나 망각해도 오래된 것이 가진 아름다움은 여전히 유효하다. 대표적으로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꼽을 수 있다. 유려한 문체와 연암 특유의 문제의식, 문학을 뛰어넘는 비유와 은유가 돋보인다. 연암의 문제의식은 비록 20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사람 간의 갈등이나 오만과 무지 그리고 괄시와 차별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연암의 글을 통해 우리가 지닌 정치·사회·문화적 모순이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다는 점을 깨달게 된다.

흑백으로 진영을 나누는 오늘날, 연암의 이야기는 이해와 극복을 말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갈등이 넘쳐나는 시대의 우리에게는 과거의 오래된 것이 가진 문제의식과 해결법이 무엇이었는지,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과 미래의 문제를 예단하는 ‘온고지신’의 자세가 필요하다. (윤인혁 / 사회문화비평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윤인혁



■활동가들(보리·현빈·현창 지음 / 플랫폼씨 기획 / 빨간소금)

활동가들



올해 상반기, 활동가들을 인터뷰해서 쓴 책이 여럿 주목받았다. 1990년대 이후 점차 사회운동에 대중적 참여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운동에 신뢰와 호기심을 가진 대중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2021년부터 기후 정의라는 의제를 두고 노동부터 인권, 생태까지 여러 운동단체들이 부문을 넘어 연대한 것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이 책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를 거점으로 연결된 노동, 퀴어, 여성, 반빈곤 등 다양한 현장의 활동가들에게 ‘활동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질문한 기록이다. 10대부터 인권운동 언저리에서 활동가들을 만나며 살아왔지만, 우스갯소리처럼 ‘활동판이 진정 강한 자만 살아남는 곳’이라고 여기곤 했다. 대표적인 활동가들은 하나같이 뚜렷한 신념과 확고한 판단, 강한 회복 탄력성으로 무장한 것처럼 보였다.

이 책을 읽다 보니 활동가의 삶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과거의 나에게, 다른 동료와 조직에게 묻어가고 싶은 유혹을 버리고 끊임없이 새로 판단하고 자기를 갱신하는 것. 활동가들을 믿고 의지하게 되는 마음은 그로부터 비롯되나 보다. 인터뷰이들의 눈에 띄는 공통된 메시지는 누구나 활동가로 살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런 세상을 만들려 노력한다는 것. (서경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서경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애매한 인간(채도운) 지음 / 지베르니)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


애매한 인간? 저자명이 대체 왜 이런가? 저자의 본명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채도운. 1992년생. 저자 표현에 의하면 자신은 자격증, 이력, 경력, 전문성, 돈, 재능 등 모든 면에서 애매한 인간이란다.

나는 이 책이 캐시미어 스웨터처럼 느껴졌다. 가볍고 부드럽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자기 별명을 ‘애매한 인간’이라고 붙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저자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때로는 그 ‘애매함’이 모든 걸 포용해 주는 것만 같다. 이것도 좋아하고, 저것도 좋아하는 애매한 취향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애매한 취향은 더 많은 장르의 문화를 접하고 즐기는 데 거부감이 없다.”

저자는 ‘애매함’이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는 태도를 만들어 주었다고 말한다. 늘 조금씩 부족하다고 생각하니 잘하기 위해 항상 노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아주 느리지만 가장 단단한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내 자신을 잃지 않는, 한 멋진 청년이 들려주는 이 아름다운 성장의 서사엔 애매함 따윈 없다. (김성신 / 출판평론가, 9N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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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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