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또 속속 드러나는 '인재'…응분의 책임 물어 재발 막아야
(서울=연합뉴스) 잇단 위험 신호와 경보에도 일선 현장에서의 안일한 대처와 늑장 대응이 이번 폭우 피해를 키운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명백한 인재(人災)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고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전문지식 부족과 상황 오판, 무사안일만을 탓할 일은 아닐 것이다. 정부의 방재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개선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많은 비가 예보된 상황에서 당국의 재난 대응 체계가 가동됐는데도 피해 집계는 계속 늘고 있다. 특히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사람만 17일 오전 11시 현재 49명(사망 40·실종 9)에 달해 수해로 치면 12년 만에 최대 규모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날까지 13명의 사망자가 확인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인근 미호천교 공사 현장의 제방 유실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는데 지역 주민들은 임시로 만든 제방이 부실해 무너졌다고 증언했다. 한 주민은 연합뉴스에 "미호천교를 새로 지으면서 다리 끝부분과 겹친 기존 제방 40m가량을 허물어 공사 차량 등이 이동하는 통로로 사용하다 장마 예보로 1주일 전 임시로 제방을 만들었다"고 말했고, "굴착기로 주변의 모래를 긁어모아 임시제방을 쌓았다"는 증언도 있었다. 미호천교 공사를 주관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임시제방 설치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진상 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홍수가 우려되는 상황인 데다 유관기관의 요청이 있었는데도 관할 행정관청이 지하차도 통제를 제때 하지 않은 점도 철저한 조사를 통해 경위를 밝히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 사고 2시간여 전에 금강홍수통제소로부터 '교통통제'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고서도 관할구청, 시청, 경찰 등이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고 하니 분통이 터질 뿐이다. 그러는 사이 순식간에 지하차도를 삼킨 물은 선량한 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국무조정실은 이날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는 감찰에 착수했다면서 "모든 관련 기관이 예외 없이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폭우로 지하차도 등 지하공간이 침수되면서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고는 매번 되풀이되고 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도 3년 전 부산 동구 초량 지하차도 침수 사고와 닮은 꼴이다. 2020년 7월 23일 부산 지역에는 시간당 최대 81.6㎜의 폭우가 쏟아졌고 지하차도에도 갑자기 빗물이 밀려들어 차량 6대가 잠겼고 3명이 숨졌다. 당시 사고는 호우경보가 발령됐는데도 침수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결과로 드러나 관련 공무원 11명이 1심에서 전원 유죄 선고를 받았다. 초량 지하차도 사고 직후 정부는 유사 사고를 막기 위해 자동 차단시설과 원격 차단 시스템 구축을 대책으로 내놓았지만 오송 지하차도에는 아직 관련 시설이 구축되지 않았다. 참사가 있을 때마다 뒤늦게 대책을 발표했지만, 제때 실행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중한 생명을 잃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다. 이번에 산사태가 집중돼 사망자 19명이 발생한 경북 북부지역에서도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명피해가 난 곳 가운데 평소 산사태 위험이 있어 '산사태 취약지구'로 지정된 곳은 한 곳뿐이라고 한다. 게다가 피해가 컸던 지역 중 평소 비가 많이 오지 않은 곳도 있다 보니 사전에 충분한 점검과 대피 안내가 이뤄질 수 없었다. 방재 대책 보강과 재난 경보 체계 점검이 신속히 있어야 할 대목이다.
짧은 시간 동안 특정 지역에 극단적으로 많은 비가 쏟아지는 '극한 호우'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화석연료를 사용한 개발이 지속되면 평균 하루 강수량이 계속 늘어난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전북 군산에는 372.8㎜의 비가 쏟아졌는데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68년 이후 최대 하루 강수량 기록이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새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피해 복구와 실종자 수색이 시급하지만 동시에 시대 변화에 맞게 재난 대응 시스템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 올여름 추가 집중호우와 태풍 등에 대비한 단기적 대책도 즉각 시행할 것을 당부한다. 예고된 기상 상황 때문에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소중한 생명을 잃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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