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통신사, 민사소송서 법원 명령하면 통신내역 제출해야”
민사소송이더라도 가입자의 통화내역 등 자료를 제출하라는 법원의 명령이 있다면 통신사는 이를 따라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7일 SK텔레콤이 문서제출명령 불이행에 따른 법원의 과태료 처분에 불복해 낸 재항고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A씨가 2016년 4월 남편 B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A씨는 B씨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면서 법원에 남편의 통화내역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SK텔레콤은 법원에 B씨의 통화내역을 제출하지 않았다. 통신비밀보호법상 통화내역 자료 제공은 협조의무로 규정돼 있지 않을뿐더러, 본사의 개인정보보호 강화 방침으로 자료를 제공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법원은 SK텔레콤에 과태료 500만원을 물렸다. SK텔레콤은 즉시항고했지만 항소심 법원도 과태료 처분이 타당하다고 봤다.
재판의 쟁점은 서로 대립하는 법률 중 어느 쪽을 우선할지였다. SK텔레콤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통신비밀보호법과 형사소송법,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따르는 경우 외에는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공할 수 없다’면서 해당 법이 민사소송법보다 우선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민사소송법 344조에 따르면 법원은 재판에 필요한 문서를 가진 자에게 제출을 명령할 수 있으며 문서 소지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이날 대법원 다수는 원심판결을 확정하면서 “통신사실확인자료는 문서제출명령의 대상이 되며, 통신사는 통신비밀보호법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미 민사소송법에선 ‘조사 촉탁’ 방법을 통해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을 허용하고 있으니 조사 촉탁보다 더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쳐 발령되는 문서제출명령에 의해서도 통신사실확인자료가 제공될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법원이 통신사실확인자료에 대해 문서제출명령을 심리·발령할 땐 통신비밀보호법의 입법취지를 고려해 통신·대화의 비밀 및 자유와 적정하고 신속한 재판의 필요성에 관해 엄격한 비교형량을 거쳐 그 필요성과 관련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안철상·민유숙·노정희·오석준 대법관은 “법원은 통신사실확인자료에 대해 문서제출명령을 할 수 없고, 명령을 하더라도 통신사는 통신비밀보호법을 이유로 제출을 거부할 수 있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통신비밀보호법과 민사소송법은 각각 통신사에게 양립할 수 없는 행위를 지시해 규범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특별법인 통신비밀보호법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선수 대법관은 별개의견으로 ‘과태료 재판에서는 문서제출명령 자체의 적법성을 다툴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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