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떨어지는 주먹구구식 대응 매뉴얼, 사고 키웠다
행안부 지침 있지만 강제 아니고 모호해
공무원이 통제 여부 판단해야 “부담된다”
일정수위 차면 자동 차단 시스템 도입해야
15일 내린 폭우로 충북 청주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물에 잠기면서 10명 이상이 사망한 가운데 이번 사고가 사실상 인재(人災)에 가깝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호우경보가 발효되면 교통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지자체가 제대로 통제를 하지 않아 피해 규모를 키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국 900개가 넘는 지하차도를 통제할지를 사람이 판단하도록 한 현행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으며 비가 일정 수준 이상 차면 기계가 출입을 통제하는 자동 차단 시스템 도입이 서둘러서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7일 소방 당국에 따르면 폭우로 인해 15일 오전 8시 40분 충북 청주 오송읍 미호천교 인근 제방이 무너지면서 유입된 물이 궁평2지하차도를 덮쳐 2~3분 만에 6만 톤(t)의 물이 가득 찼다. 이 지하차도에는 청주의 747번 급행버스를 포함해 최소 15대의 차량이 있었으며 현재까지 13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고 발생 전 금강홍수통제소가 충북도, 청주시, 흥덕구 등 관할 지자체에 홍수 경보를 발령하고 주민 대피·통제를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번 참사의 책임이 지자체에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도로법에 따르면 홍수 등 천재지변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도로에서 통행이 위험한 경우 해당 도로의 관리청은 도로 통행을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 궁평2지하차도의 관리청은 청주시다.
행정안전부는 2019년 침수 위험이 큰 지하차도를 3등급으로 나눠 기상특보 단계에 맞춰 통제하라고 했다. 궁평2지하차도는 ‘침수 위험 보통’인 3등급 차도로 분류됐으며 호우경보가 발효되면 통제해야 했다. 당시 청주에는 호우경보가, 궁평2지하차도에서 300~400m 거리인 미호강에는 홍수경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행안부 지침은 강제 사항이 아니며, 지자체가 구체적으로 대응 기준을 마련해 대응한다. 충북도는 “지하차도 침수 수위를 50㎝로 정해 한계에 도달하면 바로 통제에 들어가게 돼 있다”고 밝혔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50㎝에 도달하지 않아 사전 통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고는 제방이 무너져 지하차도에 물이 순식간에 쏟아지면서 발생했다.
◇ 교통 통제 매뉴얼 ‘사후 약방문’ 式... “자동 차단 시스템 도입 필요”
현장 공무원들 사이에선 지하차도 침수 수위가 일정 수준 이상 되면 교통을 통제하는 식의 매뉴얼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하차도는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초 단위로 수위가 몇 cm씩 올라갈 수 있다. 침수 수위를 기준으로 대응하면 너무 늦다는 것이다. 또 같은 지자체라고 해도 동네마다 강수량이 달라 모든 지하차도의 침수 수위를 재난 대응 공무원 몇 명이 24시간 모니터링 해야 하는 점도 실시간 대응을 어렵게 한다.
한 지자체의 재난안전관리 담당 공무원은 “호우 경보는 실제 날씨보다 빨리 내려지는데 섣불리 도로를 통제했다가는 시민들이 왜 비도 안 오는데 지하차도를 막는 거냐며 민원을 넣는다”며 “특정 도로를 통제했다가 우회도로로 사람이 몰려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상급자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하차도에 물이 일정 수위 이상 차오르면 자동으로 출입을 통제하는 시스템의 전국 도입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부산, 대전 등 일부 지자체에서 지하차도 수위가 어느 정도 높아지면 자동으로 차단기가 내려지고 진입금지를 알리는 안내문을 띄우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2021년 조사에서 전국 지하차도 925개 중 자동 차단 시설이 설치된 곳은 11개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건희 호서대 건축토목공학부 교수는 “호우경보에만 의존해 일률적으로 지자체가 모든 지하차도를 통제하도록 하는 것은 실제 도로 상황과 맞지 않을 수 있고 각 지하차도 상황이나 지역 맞춤형 대응을 어렵게 한다”며 “하천변이나 바닷가에 위치하거나, 도로나 우수관보다 현저히 낮은 곳에 위치한 지하차도에 우선으로 자동 차단시설을 도입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차차 모든 지하차도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참사와 판박이인 2020년 부산 초량 지하차도 침수 사고가 재난안전관리 공무원들에게 일종의 트라우마가 돼 소극적 대응을 할 수 밖에 없는 여건이 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집중호우로 차량이 물에 잠겨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업무상 과실치사죄 등으로 넘겨진 구청 공무원 등 11명 모두 작년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경우 부산대 공공정책학과 교수는 “재난재해 사고가 발생하면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주의를 기울였냐’를 따져야 되는데 일단 어떤 조치를 안했다고 처벌을 받다보니 공무원들 사이에서 재난안전부서는 기피부서가 됐다”며 “평소에 재난 관리 투자를 많이 하고 공무원들에게는 처벌 위주로 가기보단 평소에 예방, 대비 노력을 잘한 사람에게 보상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번 집중호우 때마다 지속적으로 재해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평소 예산을 투입해 투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영훈 경북대 건설방재공학과 교수는 “방재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평상시에 이뤄져야 하는데 항상 큰 사고가 나고 나서야 ‘왜 투자를 안했냐’는 식의 지적이 이어진다”며 “지하차도 배수펌프와 자동 차단 시설 등에 대한 투자를 평소에 계속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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