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고소득 차주·만기일시상환 비중↑···자산불평등 확대 우려

이윤주 기자 2023. 7. 1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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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은행에 대출금리 관련 현수막이 붙어 있다. 성동훈 기자

한국의 가계부채가 계속해서 늘기만 한 데에는 국내 대출규제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데다 금융기관들이 기업대출보다 떼일 우려가 적은 가계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대출받는 사람도 저금리를 빌미로 자산투자에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한국은 나라 경제규모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세계에서 세번째로 커 가계부채 문제를 방치할 경우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지고 자산 불평등이 심해질 수 있다고 한국은행이 분석했다.

한은이 17일 발표한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연착륙 방안’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05.0%로, 주요 43개국 가운데 스위스(128.3%)와 호주(111.8%)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0년대 이전까지 주요국에 비해서 낮은 수준을 보였으나 2002~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14~2017년 가계대출 규제 완화, 2020~21년 코로나19 등을 거치면서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국내 가계부채의 가장 큰 특징은 소득이 많은 개별 차주(대출자)나 가구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현재 전체 가계부채에서 소득 1·2분위(소득 하위 40%)의 대출잔액 비중은 차주 기준으로 11%인 반면, 4·5분위(소득 상위 40%)는 76%에 이른다.

평상시에는 갚지 않다가 만기때 한번에 갚는 만기일시상환 방식의 대출이 지나치게 많은 사실도 지적됐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가계대출의 절반이 넘는 53.7%가 만기일시상환 방식이다. 2018년 기준 주택담보대출의 만기연장률은 58%에 그친 반면, 신용대출은 87%에 달했다. 보고서는 “신용대출의 경우 가계가 이를 상환하기보다는 만기도래시 재연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신용대출을 보유한 차주들은 규제 강화, 금융회사 영업방침 변화 등에 따른 차환리스크에 주기적으로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 제공

한은은 가계부채 증가의 공급 측면 원인으로 우선 가계대출의 높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꼽았다. 국내 은행의 수익 구조상 총이익에서 이자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80% 이상으로 매우 큰데, 가계대출은 기업대출보다 연체율이 낮아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고 안정적인 만큼 가계대출 취급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주요국 가운데 대출 규제가 느슨했던 점도 가계부채 급증세를 키웠다. 미국, 캐나다 등에서 2012∼2014년에 걸쳐 도입된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한국에서는 2018년∼2019년에서야 뒤늦게 활용되기 시작했다. 또 주요국에서는 DSR 대상에 대부분의 대출이 포함되지만, 한국에서는 전세자금·중도금 대출 등을 예외로 인정하는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특히 한국 금융기관은 신용대출에 완화적인 편인데 소득 및 신용이 양호한 경우 담보제공없이 소득의 약 50~150%에 달하는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주택 등 자산투자 목적의 가계대출이 증가해왔다. 금리가 낮아 빚 부담이 떨어지고, 예금 등의 안전자산 수익률도 낮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주택, 주식 등으로 돈이 쏠린 것이다.

하지만 한은은 이런 배경에서 불어난 가계부채가 금융 불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소비가 위축되고 금융을 통한 자원 배분의 효율성도 떨어져 성장률이 하락할 것으로 우려했다.

가계부채 증가가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은 분석 결과 2017∼2022년 부채를 보유하지 않은 가구의 순자산 증가폭은 7100만원인 반면, 당초 부채가 없었다가 이 기간중 빚을 낸 가국의 순자산 증가폭은 야 1억200만원으로 더 컸다.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소득 5분위(상위 20%)안에서도 이 기간 신규 차입을 선택한 가구의 순자산 증가폭(2억8000만원)이 부채를 보유하지 않은 가구(2억5000만원), 부채 상환 가구(2억4000만원)보다 컸다. ‘빚을 낸 고소득층’일 수록 순자산 증가폭이 컸다는 의미다. 즉 대출을 더 많이 낼 수 있는 계층일 수록 자산을 더 불렸다는 것인데 이는 부동산 투자에 기인한 측면이 큰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가계부채를 줄이고 연착륙에 성공하려면 거시건전성 정책 측면에서 DSR 예외 대상 축소, LTV(담보인정비율) 수준별 차등 금리 적용, 만기일시상환 대출 가산금리 적용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경태 한은 경제연구원 금융통화연구실 과장은 “가계부채를 GDP 수준 이내로 줄이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가계부채 증가율을 명목GDP 증가 범위 안에서 관리하면서 완만한 디레버리징(부채축소)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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