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2700만원 스시장인, 美선 7억원 받아… 일본인들 돈벌러 떠난다”
“임금 상승 가능케하는 노동시장 유연성 부재”
“가격 안 올리는 기업에 박수치는 풍토도 문제”
“日女 유흥업소 찾는 중국인 수요도 많아”
일본인들이 동남아 등 해외로 나가서 일을 하는 경우가 늘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임금이 잘 오르지 않는 일본보다 해외에서 더 큰 보수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그 이유로 꼽혔다.
지난 3일 일본의 벤처기업가 출신 호리에 다카후미(51)는 저출산 고령화, AI 발전 등 일본의 미래에 대한 분석을 담은 책 ‘2035년, 10년 후의 일본’을 출간했다. 17일 오전 11시 기준 이 책은 아마존 재팬에서 IT 분야 판매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호리에는 라이브도어 전 최고경영자(CEO)로, 2000년대 중반 일본 ‘벤처 신화’를 이끈 인물이다. 그는 거침없는 언행으로 종종 논란에 휩싸였지만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어 일본 만화 캐릭터 ‘도라에몽’에서 따온 ‘호리에몽’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그는 2006년 라이브도어 분식회계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살기도 했다. 이후 2013년 로켓개발 벤처기업 인터스텔라 테크놀로지스를 창업한 후 일본 첫 민간로켓 발사를 시도하고, ‘가진 돈을 모두 써라’·'모든 교육은 세뇌다’ 등 책을 펴내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활동 중이다.
16일 여러 현지 매체는 호리에의 이번 신간 일부를 발췌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호리에는 향후 일본인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일이 당연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동안 일본은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쪽이었으나 이제는 일본인이 해외로 나가 돈을 버는 경우가 증가했다”고 했다. 이어 “아직 많은 일본인들은 일본인이 돈을 벌러 해외로 이주하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며 “(미국 사회학자 에즈라 보겔의 책)’재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umber One) 시절을 떠올리며 현재 일본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 당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호리에는 그 이유로 ‘임금을 올리기 어려운 사회 구조와 풍토’를 지목했다.
지난 2월 NHK 프로그램 ‘클로즈업 현대’에 따르면 일본에서 월급이 20만엔(약 182만원)이던 한 간병인은 영어를 공부한 후 호주로 옮겨가면서 월급이 80만엔(약 730만원) 정도로 올랐다. 또 일본에서 연봉이 300만엔(약 2738만원)이던 스시 장인은 미국에서 8000만엔(약 7억 3000만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게 됐다. 해당 소식은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이와 관련해 호리에는 “현재 일본에는 임금이 오르기 어려운 상황이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예로 임금 상승을 가능케 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없다”며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직장을 옮겨도 연봉 인상이 어렵다”고 했다. 또 “국민에게 ‘디플레이션 마인드’가 뿌리내려져 있다”며 “이 때문에 원자재, 연료 등 비용이 올라도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기 어렵다. 조금이라도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로부터 괘씸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아울러 호리에는 ‘가격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기업에 박수갈채를 보내는 풍토도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서비스나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가격도 올려서 직원들에게 돌려줘야 하지만 이 사이클이 돌아가지 않으니 임금 인상도 할 수 없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생필품을 중심으로 가격이 인상되고 있으나 이는 원자재 및 연료비 급등, 엔화의 약세 영향 때문일 뿐이다. 이 가격 인상분이 기업이나 종업원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호리에는 “요리사를 비롯한 장인들, 간병인 등 서비스직을 중심으로 높은 임금을 찾아 해외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일본에서 간병인의 월급이 100만엔(약 913만원)이 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다”며 “결국 사람들은 바다 건너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해외에서 성(性) 산업에 종사하는 일본 여성도 늘어날 것”이라며 “중국인이 일본 유흥업소에서 거액을 쓴다는 얘기가 화제가 될 정도로 그 수요는 많은 상태”라고 했다.
호리에는 “돈을 벌러 나가는 지역은 물가가 비싼 미국이나 호주 같은 나라만이 아니다. 경제 발전이 두드러지는 동남아시아도 매력적인 곳이 될 것”이라며 “그동안 이주 노동자를 받기만 하던 일본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달리 그는 일본으로 유입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점차 적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일본의 임금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엔저로 인해 모국에 송금해도 예전처럼 이득을 얻기 힘들다. 또한 일본 경제는 침체되고 있는 반면 동남아에서는 경제발전이 이뤄지고 있다”며 “실제 이미 중국과 동남아의 젊은이들은 일본이 아닌 다른 아시아 국가 대도시에 모여들고 있다. 일본에서 일하는 메리트를 찾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호리에는 “이로 인해 일본 국내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일본에는 산업 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그 결과 일본 경제는 점점 더 침체할 것이고, 손해는 고스란히 일본인의 몫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호리에의 주장이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한다. 호리에가 지적한 노동시장 구조와 사회 분위기는 한국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해고가 어려운 탓에 능력 있는 직원에 대한 파격적인 연봉 인상이 불가능하고, 그 결과 호봉제가 유지되거나 ‘이름만 연봉제’가 만연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저가(低價) 대체제’가 있음에도 가격 인상을 무조건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비슷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몸값도 상품값도 결국은 가격 경직성의 문제”라며 “가격 경직성은 사회 전반적으로 다 같이 성장하던 과거 성장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성장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상황이 달라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도 일본도 아직은 ‘국경’, ‘언어‘같은 장벽이 생산성 높은 인력의 글로벌 시장 유출을 어느 정도 막아주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결국 능력있는 인력의 글로벌 유출은 피하기 어렵다”며 “인력의 생산성을 반영할 수 있는 노동시장에서의 임금 체계와, 경제 환경 수요와 공급 상황을 반영할 수 있는 가격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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