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년후견인, 피해자 대신 ‘반의사불벌죄’ 처벌 불원 의사 표시 못 해”

박진영 2023. 7. 1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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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사불벌죄 처벌 불원 의사 대리 불허
‘형사 합의 양형 고려’ 부정 취지는 아냐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피해자 대신 ‘반의사불벌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반의사불벌죄 처벌 불원 의사는 원칙적으로 대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17일 대법관 8 대 5 의견으로 “반의사불벌죄에서 성년후견인은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의사 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해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한 처벌 불원 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 희망 의사 표시를 철회할 수 없다”며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 상고를 기각하고, A씨에게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1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13명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착석해 있다. 뉴스1
A씨는 2018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앞쪽에서 걸어오던 60대 B씨를 앞바퀴로 들이받아 뇌 손상 등 중상해를 입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사고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2020년 1심은 “전방 주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A씨 과실을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이에 A씨는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인 아내 C씨가 1심 판결 선고 전 법원에 처벌 불원서를 제출해 공소기각 판결이 선고돼야 한다”며 항소했다. C씨는 1심 판결에 앞서 A씨에게 4000만원을 받고 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취지의 합의서 등을 냈다. 교통사고처리법상 치상은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법원은 질병, 장애, 노령 등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에 대해 당사자나 배우자 등의 청구로 성년후견인을 선임한다. 법정대리인인 성년후견인은 원칙적으로 포괄적인 대리권을 갖는다. C씨는 2019년 남편 B씨의 성년후견인이 됐다.

2021년 2심은 C씨의 처벌 불원 의사 표시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아 A씨 항소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리하거나 독립해 피고인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더라도, 그것이 반의사불벌죄 처벌 희망 여부에 관한 피해자의 의사 표시로서 소송법적으로 효력을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민사소송법과 달리 형사소송법엔 의사능력이 없는 피해자를 대리할 사람이 없는 경우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법관 8명은 다수 의견에서 “성년후견인의 법정 대리권 범위에 통상적인 소송행위가 포함돼 있거나 성년후견개시심판이 정하는 바에 따라 성년후견인이 가정법원 허가를 얻었더라도 피해자를 대리해 처벌 불원 의사를 결정할 수 없다”며 원심과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이들은 “반의사불벌죄 처벌 불원 의사 같은 소송조건 관련 규정은 국가 소추권·형벌권 발동의 기본 전제가 된다”며 “그 예외를 명시적 근거 없이 확대하게 되면 형사사법의 보호적 기능이 약화되고 국가 형벌권이 불공평하게 행사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가 의사능력이 없는 경우 성년후견인의 대리에 의한 처벌 불원 의사 표시는 그것이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주심인 민유숙 대법관 등 대법관 5명은 “제삼자가 의사 결정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해 의사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의 자기 결정권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성년후견인에 의한 대리를 허용하는 게 성년후견제도로 의사능력이 결여되거나 부족한 사람을 지원·보완하려는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해석”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법률 문언, 형사사법 목적, 반의사불벌죄 취지, 성년후견제도와 형사소송절차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 불원 의사는 원칙적으로 피해자 본인만이 가능하다는 법리를 설시했다”며 “다만 성년후견인이 의사능력이 없는 피해자를 대리해 한 형사 합의가 양형 요소로 고려되는 것까지 부정하는 취지는 아니다”고 판결 의의를 설명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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