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사고로 식물인간 된 남편 대신 아내가 ‘처벌 불원’ 못 해”(종합)
피해자가 원치 않을 때는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와 관련,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신해 ‘처벌 불원’ 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형사소송법 제26조에 따라 법정 대리인이 의사 능력 없는 피고인이나 피의자의 소송 행위를 대리하는 건 가능하지만, 대법원은 처벌 불원 의사까지 대리인이 대신 표하는 건 적법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처벌 불원 의사는 ‘진실한 의사’에 기인할 때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국가소추권·형벌권 발동 기본 전제…법문 충실히 해석해야”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는 17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2018년 11월 19일 자전거를 운행하던 중 전방에서 보행 중이던 피해자를 들이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고로 피해자 B씨는 뇌손상 등의 중상해를 입었고, 결국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다. 이후 B씨의 성년후견인이 된 배우자 C씨는 A씨와의 합의 후 1심 판결 전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죄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면서,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른바 반의사불벌죄다. 이는 1953년 경범죄에서 당사자 간 합의를 장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외국에서는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든 규정이다.
이 사건의 1·2심은 “형사소송 절차에서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소송 행위의 법정 대리는 허용되지 않고, 피해자에게 의사 능력이 없더라도 그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리해 처벌 불원 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인 성년후견인이 의사 무능력인 피해자를 대리해 소송 행위인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형사소송법 제26조는 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의사능력이 없는 때에는 그 법정 대리인이 소송 행위를 대리한다고 규정한다.
전합은 형사소송 절차 규정을 해석·적용할 때는 절차적 안정성과 명확성이 무엇보다 중요해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에 충실한 해석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 의사와 같이 소송 조건과 관련된 규정은 국가소추권과 형벌권 발동의 기본 전제가 되기 때문에 법문을 충실하게 해석할 필요성이 무엇보다 크다는 것이다.
전합은 형사사법의 목적과 보호적 기능, 국가소추주의 또는 국가형벌 독점주의에 대한 예외로서 반의사불벌죄의 지위 등을 감안하면 피고인 또는 피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처벌 희망의 의사 표시를 철회하는 의사 결정 그 자체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피해자 본인이어야 한다고 봤다.
전합은 “반의사불벌죄는 일부 범죄에 대해 피해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특별히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를 소극적 소송 조건으로 규정해 형사사법 절차에 관한 사인의 개입을 예외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며 “그 예외를 명시적 근거 없이 확대하게 되면 형사사법의 보호적 기능이 약화되고, 국가형벌권이 불공평하게 행사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처벌불원 의사는 진실한 의사에 기인한 것이어야 하므로, 피해자가 의사 무능력인 경우 성년후견인의 대리에 의한 처벌불원 의사 표시는 그것이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부합하는 것이라도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아울러 전합은 “피해자 본인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한 형사소송 절차에서 성년후견인에 의한 대리를 허용하는 것은 피해자 보호를 비롯한 형사사법이 추구하는 보호적 기능의 구현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에 역행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판단했다.
◇”성년후견인, 처벌불원 의사표시 가능해야” 반대 의견도
반대 의견을 낸 대법관들도 있다. 박정화·민유숙·이동원·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피해자가 의사 능력을 결여한 경우 성년후견인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반의사불벌죄에 관한 처벌불원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대법관들은 “형사소송법에 의사 무능력자인 피해자를 위해 처벌불원 의사 표시를 대리할 수 있다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지만, 이를 금지하는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는 법률의 흠결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법률의 흠결은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 대리를 불허하려는 입법자의 의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관들은 “국가형벌권의 공적 성질을 고려할 때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는 본질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그 법적 효과면에서 통일적으로 처리할 필요성이 있다”며 “그럼에도 형사소송법이 고소 및 고소 취소에 대해 대리를 허용하는 규정을 두면서도 처벌불원 의사에 대해서는 이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해석에 의한 보충이 필요한 입법의 불비이자 법률의 흠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피해자가 의사 무능력인 경우에도 피해자의 자기결정권을 구현하고 피해자의 복리·보호를 위해 제3자가 피해자의 의사를 지원·보완하는 방법을 통해 처벌불원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피고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형사소송법의 관련 규정들을 유추 적용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년후견 제도 도입의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성년후견 제도는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하거나 흠결된 사람들의 자기결정권을 지원·보완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 기초가 있다는 것이다.
대법관들은 “성년후견인은 가정법원에 의해 선임된다는 점에서 공적인 특성을 갖고, 소송 행위 대리에 관한 가정법원의 허가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실체적 심리 절차에 해당한다”며 “성년후견인에 의한 대리를 허용하는 것이 성년후견 제도를 새롭게 도입해 의사 능력이 결여되거나 부족한 사람을 지원·보완하려는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해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의 문언적·합리적 해석이라는 다수 의견에 대한 반박도 제시했다. 성년후견인에 의한 처벌불원 의사 표시의 허용은 피고인에게 불리하지 않으므로 이를 허용하더라도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다. 또 이를 제한하게 되면 성년후견 제도의 이용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피해자 보호를 후퇴시키고 소극적인 소송 조건을 부당하게 축소 해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처벌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된다고 비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다만 성년후견인이 의사 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해 한 형사 합의가 양형 요소로 고려되는 것까지 부정하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민주의 배신… 삼성전자 미보유자 수익률이 보유자의 3배
- [똑똑한 증여] “돌아가신 아버지 채무 6억”… 3개월 내 ‘이것’ 안 하면 빚더미
- “진짜 겨울은 내년”… 세계 반도체 장비 공룡들, 대중 반도체 제재에 직격타
- 오세훈의 ‘미리 내 집’ 경쟁률 50대 1 넘어… 내년 ‘청담르엘·잠래아’ 등 3500가구 공급
- 특급호텔 멤버십 힘주는데... 한화, 객실 줄인 더플라자 유료 멤버십도 폐지
- 中 5세대 스텔스 전투기 공개… 韓 ‘보라매’와 맞붙는다
- 배터리 열폭주 막을 열쇠, 부부 교수 손에 달렸다
- 사람도 힘든 마라톤 완주, KAIST의 네발로봇 ‘라이보2’가 해냈다
- '첨단 반도체 자립' 갈망하는 中, 12인치 웨이퍼 시설 설립에 6조원 투입
- “교류 원한다면 수영복 준비”… 미국서 열풍인 사우나 네트워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