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범 접근금지 명령에도 또 참극…제도 실효성 논란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스토킹 살인'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인천에서 30대 스토킹범이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받고도 옛 연인을 찾아가 살해하는 사건이 또다시 벌어졌다.
현행 시스템은 스토킹범이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도 미리 인지하거나 제재할 장치가 전무하다시피 해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인천에서 스토킹 끝에 옛 연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A씨는 지난 6월 법원으로부터 2∼3호 잠정조치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피해자인 30대 여성 B씨로부터 100m 이내에는 접근하지 말고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도 금지하라는 조치로, 기간은 다음 달 9일까지였다.
이 조치는 B씨가 지난 2월과 지난달 A씨를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범죄로 3차례 신고하거나 고소한 끝에 이뤄졌다.
B씨는 A씨를 고소한 지난달 2일 휴대전화 번호가 112신고 체계에 등록돼 관련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이 더 빠르게 출동하는 '신변보호 112시스템'에도 등록됐다.
하지만 접근금지 명령을 비롯한 여러 신변보호 조치는 스토킹범 A씨가 이날 새벽 피해자 B씨 집에 찾아가 주변에서 기다리고, 출근하는 B씨를 흉기로 살해할 때까지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기존 제도만으로는 스토킹범이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도 경찰이나 사법당국이 사전에 파악하기가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판결 전에도 스토킹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게 됐지만 이는 공포 6개월 후인 내년 1월 시행될 예정이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모든 스토킹 가해자에게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릴 수는 없기 때문에 사실상 스토킹범에 대한 밀착 관리체계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피해자가 112신고를 해야 경찰이 접근금지 위반 사실을 알 수 있는 '사후약방문' 식인데, 위급한 상황에 닥친 피해자가 제때 신고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지난해 2월에는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50대 스토킹범이 서울 구로구 호프집에서 40대 중국 국적 여성을 흉기로 살해했다가 붙잡혔다.
이 여성은 스마트 워치로 직접 신고까지 해 경찰이 3분 만에 현장에 출동했지만 끝내 살해됐다.
지난 4월에는 충남 서산에서 50대 남편이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가정폭력을 신고한 아내를 보복 살인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는 아내 주거지와 직장에 접근금지 조치를 받은 상태였지만 결국 피해자가 있던 미용실을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 관계자는 "인천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도 피의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같은 장치를 부착한 게 아니다 보니 접근금지 조치를 어겨도 사실상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제도상 허점에 대한 지적은 스토킹 살인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접근금지 명령의 실효성은 물론 스토킹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인 구속 비율이 높지 않다는 것도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2021년 10월 말부터 지난해 9월까지 검거된 스토킹 피의자 7천141명 중 254명(3.6%)만이 구속됐다.
구속영장 신청 건수(377건)와 비교했을 때 영장 발부 비율이 낮지는 않았지만, 용 의원은 "불구속 상태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계속 위해를 가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스토킹범에게 전자발찌를 채울 수 있는 개정 법률이 내년부터 시행되더라도 현장에서 제대로 정착하려면 후속 논의가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개정 법을 시행한 뒤에도 스토킹범에 대한 24시간 감시는 사실상 어렵다"며 "스토킹범이 피해자에게 접근하면 곧바로 체포해 구류 처분을 내리는 등의 후속 조치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법을 집행하는 사법 기관에 재량권을 주되 어떤 후속 조치가 더 효과적인지를 현장에서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cham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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