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행정처분법’은 없잖아? ‘엘시티 추락사’ 형사 유죄에도 벌점은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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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구 엘시티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4명이 숨진 '엘시티 추락사'(국제신문 2018년 3월 3일 자 1면 등 보도)를 두고 원청에 내린 행정 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숙견 상임활동가는 "공사 현장에서 사실상 하청은 원청의 지시 없이 아무 것도 못 한다. 원청의 책임 소재를 넓게 봐야 한다"며 "노사가 대등한 관계에서 자율적으로 산업안전을 도모하지 못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인 만큼, 중대재해처벌법과 더불어 원청을 강제하는 행정적 처분 요건이 생길 필요가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형사 처벌보다 행정 처분이 더욱 신경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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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구 엘시티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4명이 숨진 ‘엘시티 추락사’(국제신문 2018년 3월 3일 자 1면 등 보도)를 두고 원청에 내린 행정 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현행법상 직접 공사를 맡은 하청업체에만 행정 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취지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노동자 안전사고를 둘러싼 원청의 형사상 책임은 인정되지만, 기업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정 처분에선 여전히 벗어난 셈이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행정2부는 최근 포스코이앤씨(옛 포스코건설)가 부산 해운대구를 상대로 낸 ‘부실벌점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포스코 승소를 판결했다. 이 사건은 2018년 12월 제소됐으나 동일 내용의 형사 사건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재판이 연기됐다. 그러다 지난 5월 형사 재판이 끝나면서 약 5년 만인 지난 7일 이 사건 1심이 선고됐다.
소송은 엘시티 노동자 추락사건에서 비롯됐다. 2018년 3월 2일 엘시티 A동 55~56층에서 커튼 월(유리 외벽)을 설치 작업 중 노동자들이 딛고 서 있던 발판이 떨어져 4명이 죽고 6명이 다친 사건이다. 당시 포스코 사장 등 관계자들이 숨진 노동자의 장례식장에 찾아가 유족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기도 했다. 이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으로 재판받은 포스코는 벌금 2000만 원, 포스코 소속 선임 현장소장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해운대구는 사건이 일어난 해 9월 엘시티 건설 사업의 원청인 포스코에 부실벌점 2점을 부과했다. 발판 등 가설시설물의 설치 불량으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업체에 벌점을 주도록 한 건설기술 진흥법 시행령 규정에 근거했다. 포스코가 발판 설치 상태를 불량하게 관리해 사고 일어났다고 본 것이다. 그러자 포스코는 하청업체가 커튼 월 설치를 맡았으며 자신들은 공사를 직접 지시하지 않은 만큼 원청에 벌점을 주는 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공사를 직접 담당한 업체에 벌점이 부과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직접 시공하지 않은 원청에 책임을 물리면 여러 하청 업체의 잘못마다 원청이 벌점을 받아야 해 부당하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 원청에 하청 안전관리의무는 주어져 있지만, 이는 건설 공사를 직접 수행하는 것과는 별개로서 벌점은 공사를 직접 수행한 업체에만 부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원청의 ‘형사적 단죄’는 원칙적으로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보듯 관급공사 입찰 참가 자격에 영향을 주는 벌점 제도 등 ‘행정적 단죄’는 여전히 하청에만 적용되는 구조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숙견 상임활동가는 “공사 현장에서 사실상 하청은 원청의 지시 없이 아무 것도 못 한다. 원청의 책임 소재를 넓게 봐야 한다”며 “노사가 대등한 관계에서 자율적으로 산업안전을 도모하지 못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인 만큼, 중대재해처벌법과 더불어 원청을 강제하는 행정적 처분 요건이 생길 필요가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형사 처벌보다 행정 처분이 더욱 신경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해운대구 또한 원청에 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하고, 그래야 산업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보고 항소를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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