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EU, ‘난민 문제 해결’ 손맞잡지만···‘인권 탄압’ 우려는 여전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유럽이 북아프리카 난민들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튀니지와 국경 통제·인신매매 근절을 골자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를 두고 튀니지의 난민 탄압과 권위주의 통치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현지시간)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경제난에 처한 튀니지에 10억유로(약 1조4290억원)를 지원하는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대신 튀니지는 유럽으로의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 수색 및 통제를 강화하고, 인신매매 방지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그동안 EU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난민 유입 관문인 튀니지에 국경 통제를 강화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올들어 지난 14일까지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 도착한 난민은 약 7만5000여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3만1900여명에 비해 두배 넘게 증가했으며, 이중 절반 이상은 튀니지에서 출발했다.
이 때문에 최근 수개월 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은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을 만나 난민 통제를 대가로 한 지원 패키지를 논의해 왔다.
이날 양해각서 체결 이후 멜로니 총리는 “매우 기쁘다. 난민 위기 해결을 위한 튀니지와 EU 간 파트너십 구축을 향한 중요 단계”라고 밝혔다. 사이에드 대통령도 “비인간적 이주”에 관한 공동의 합의가 필요했다며 “이 양해각서는 빠른 시일 내에 구속력 있는 협정으로 뒷받침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 인권단체들은 양측의 합의 내용이 알려진 후부터 줄곧 우려를 표명해 왔다. 난민과 경제적 지원을 맞바꾼 EU와 튀니지의 거래가 결과적으로 사이에드 대통령의 난민 탄압 정책에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란 우려다. 튀니지는 그간 사하라 이남에서 모여든 난민들을 물과 식량도 주지 않은 채 사막 지대로 강제 추방해 왔다. 일부 난민은 성폭력과 폭력 피해를 신고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로렌 세이버트 난민·이주권리 연구원은 “이민자와 망명신청자를 향해 심각한 학대를 저질러 온 튀니지 경찰과 해안경비대 등이 더욱 강화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 마테오 드벨리스 연구원도 “유럽이 인권에 대한 존중 없이 튀니지에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억압적인 지도자에게 힘을 싣고 더 많은 학대를 조장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한때 ‘아랍의 봄’ 발원지였던 튀니지는 2019년 정권을 잡은 사이에드 대통령의 철권 통치에 시달리고 있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최근 독재로 향하는 발판을 차근차근 마련해왔다. 지난해 7월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 판사 임명권 등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통과시켰으며, 대통령이 ‘임박한 위험’을 이유로 임기를 연장할 수 있는 조항도 넣었다. 최근엔 반체제 인사, 활동가, 언론인, 야당 정치인 등을 연이어 체포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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