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다림이 만들어낸 완벽한 동심의 세계
암울한 시대에 그린 희망의 원더랜드…청담 갤러리 나우에서 7월 한달간 전시
청담 갤러리 나우(gallery NoW)에서 7월 한 달간 개인전 ‘더 스토리 오브 원더랜드(The Story of wonderland)’를 열고 있는 채색화가 김인옥 작가를 만나 이번 전시와 삶의 철학에 대해 들어 봤다.
Q. 이번 개인전의 의미는 무엇인가
작품 20여 점이 공개되는 이번 전시는 ‘희망’에 대한 근간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1990년 초 시작된 ‘항금리 가는 길’과 ‘기다림’ 시리즈는 일상의 면면에서 사색을 통해 얻은 마음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전과는 결이 다소 다르다. 그전 전시가 기다림과 설렘이라는 소극적인 감정을 표현했다면, 이번 전시는 완벽히 아름다운 희망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달콤한 솜사탕 같은 모양의 날아다니는 나무들, 청량감이 감도는 공간들을 통해 초현실적인 세계와 동심의 세계를 표현했다. 마음속의 풍경, 사실적인 모습과 감정에 대해 현실성에 매몰되지 않고 아름답고 몽환적인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브로콜리 형태의 나무는 어느 날 마트에 갔다가 브로콜리가 거대한 나무 같아 보여서 그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관심 없는 생명체나 들풀 같은 하찮은 것들에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 다양한 생각의 소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편 이번 전시는 그려 오던 시리즈를 고수하기보다는 정체되지 않고 조금 더 새롭고 조금 더 많은 분들이 좋아할 수 있는 그림을 지향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림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픔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들었다. 그림을 그리며 나 자신이 치료됐듯이 그림을 보는 많은 분들에게도 그런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Q. 화풍의 변화에 대해 알고 싶다
그림의 시작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됐다. 1990년 이전까지 반추상 작업에 집중하다가, 작업실을 양평군 항금리로 옮기면서 ‘기다림’에 대한 내용을 확장해 나갔다. 지난 2008년경 베이징에 거주할 당시, 화풍에 대한 고민이 있던 중, 채색화 작업에 대한 의외의 좋은 반응을 얻고 나서 오랜 고민 끝에 확신을 가지고 지금의 화풍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누구나 행복을 기대하지, 불행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돌아갈 수 없는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는 없지만, 미래의 꿈은 기다릴 수 있다’는 생각을 모토로 ‘항금리 가는 길’ 시리즈를 그렸고 상당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동양화에는 준법이라는 정해진 색체 방식이 있는데, 본인은 그것을 스스로 파괴하고 실험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한국의 전통 오방색을 단청에 보여주는 색깔과 우리나라 탈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형상화해서 그린 작품도 있었다. 때마침 컬러TV가 나오면서 채색화에 대한 도전과 궤가 맞아 떨어졌다.
채색화는 아름다운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이디어가 빨리 떠오른다면 일주일 만에도 작품을 끝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수년을 내버려 두다가 완성하기도 한다. 정체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굳이 애쓰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평범한 대화 속에서도 나올 수 있고, 생각이 떠오르면 멈춘 그림에 다시 혼을 불어넣어 완성한다.
Q. 그림이 이야기하는 희망과 기다림은 어떤 의미인가.
기다림은 중의적인 표현이기도 하고, 복합적인 표현의 단어이다. 이 단어에는 그 시절 통과 의례처럼 살아온 일생의 여정 속에서 그림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 서양화가 중심이 된 미술계에서 차분하게 동양화가로서 화업을 쌓아 올려왔던 아티스트로서의 인내, 그리고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양평의 작업실을 오가며 길에서 보냈을 수많은 물리적 시간 속에서 보고 느꼈던 정서들도 포함돼 있다. 열심히 살아온 시간은 하나도 무의미한 것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삶이건 어느 인생이건 만만할 수도 없고, 미지의 장소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에도 희망을 노래하며 삶의 정수를 느끼는 것이 원더랜드라고 생각한다.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했을 때, 어린 남자아이가 본인의 그림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말했을 때, 그 한마디 말로도 지금의 시리즈를 이어 올 수 있었던 큰 힘이 되었다. 이렇듯 삶에는 희망을 연장하는 수 많은 것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안에서 어떤 기다림과 희망의 원형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삶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
IMF 시절이나 생애 곳곳 어려운 시기들이 있었다. 경제적 빈곤 속에서도 삶을 붙잡아준 것은 희망이었고, 그림은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러한 시간들을 오래 겪어 온 탓인지, 지금은 어느 정도 부족한 없이 살고 있지만, 아직도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항상 가난한 마음으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항상 가난했던 청빈한 마음으로 살 때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30여년전 양평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작은 땅 위에 오랜 집을 수리해서 살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돈을 벌고 조금씩 땅이 넓어질 때마다 집을 넓히기보다 주변에 나무를 계속 심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집 주변이 거대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금은 양평에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정착해 소박하고 편안한 노후를 즐기고 있다. 삶에서 거창한 것을 추구하며 괴로워하기보다 매 순간 삶의 감사와 경이로움을 느끼고, 나이가 들어감에도 젊고 활기찬 마음을 유지하며 산다면 날마다 천국처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 김인옥 약력
1955년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고려대학교, 서울교대, 홍익대 등 강사 역임
1979년 이후 다수 개인전 단체전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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