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잘’ 신혜선-안보현, ‘그(그녀)가 잊혀질까 두렵다!’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당신한테 이번 생이 새로운 생이긴 해요? 이미 끝난 전생의 인연 붙들고 사는 거 아니고?”
16일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에서 민기(이채민 분)가 반지음(신혜선 분)에게 던진 일갈이다.
애경(차청화 분)이 쓰러졌다. 당초엔 원인불명이었지만 정밀검사를 통해 가슴에 혹이 생긴 것으로 밝혀졌다. 인생 24회차 민기는 애경에게 닥친 불행의 원인으로 전생을 기억하는 반지음이 이미 끝난 전생의 인연인 애경을 찾아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아울러 “악연이었다면 그나마 나았겠죠. 만나서 풀 게 남은 사이니까. 하지만 좋은 인연은 달라요. 그런 인연은 다시 만나지 않고 흘러가게 둬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민기가 제시하는 해결 방법은 기억이 시작된 첫 번째 전생을 전부 기억해 내 그 인연의 실타래를 전부 풀어내는 것이다.
애경을 위해 첫 번째 전생의 기억을 되살리는 매개체인 무령을 집어 든 지음은 자신을 ‘수’라고 부르던 전생의 언니가 현생의 초원(하윤경 분)이었고, 그 초원을 ‘신당의 한야’라 부른 현생의 문서하(안조현 분)가 칼로 베어 죽였음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죽일 것이다!”고 처절하게 다짐하는 자신의 모습도.
물론 여전히 맥락 전체가 떠오른 것은 아니므로 사실관계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의 슬픔과 원통함이 지음을 격랑에 휩싸이게 만들었고 보인대로만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그 처절한 기억에서 깨어났을 때 눈 앞에 서하가 있었고 살기에 휩싸인 지음은 전생의 수가 그랬던 것처럼 “죽일 것이다!” 외치며 서하의 목을 조른다.
결국 자신의 증오가 퇴색하지 않길 바랐던 천 년 전 그 다짐 하나가 마침내 19회차에 이르도록 전생을 기억하는 ‘반지음’이란 영혼을 탄생시킨 셈이다.
선종(禪宗) 제6대조인 혜능(慧能)의 자서전적 일대기인 육조단경(六祖壇經)에는 “사람의 본래 성품은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생각과 지금 생각과 다음 생각이 생각생각 서로 이어져 끊어짐이 없다... 한 생각이라도 머무르면 생각생각 마다에 머무르는 것이므로 얽매임이라고 부르며, 모든 법 위에 순간순간 생각이 머무르지 아니하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머무름이 없는 것으로 근본을 삼느니라.”는 구절이 있다.
결국 그 생각의 얽매임이 흘러야 할 인연을 흐르지 못하게 막아 영혼을 윤회로 이끈다는 설명이다. 원한에 멈춘 ‘수’의 생각이 천 년의 세월을 흐르도록 전생을 기억하는 반지음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반지음은 머무름 없는 경지의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세상은 이상혁(이해영 분)의 자수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문서하와 반지음은 그 소동으로부터 멀어지듯 여행길에 올랐다. 하지만 세상의 아우성은 여행지까지 두 사람을 쫓아왔다.
그 기사를 보며 “미안해요. 가장 억울한 사람은 윤주원이었을테니까.”라고 사과하는 서하에게 지음은 “나 엄청 위로 받았는데!.. 반학수.”라고 말한다. 현생의 아버지인 반학수의 살해 동기인 채무변제기록을 불태워준 서하의 마음을 알아준 것이다.
이어 “어떻게 그래요.. 전생의 나를 죽인 사람의 딸로 태어나고.. 반지음 아버지라서 그랬던거 알아요.”라고 심상히 말한다. 이에 서하는 “그냥 몰랐으면 했어요. 사이가 좋던 나쁘든 가족의 그런 모습은 상처가 될테니까.”라며 지음에 대한 배려를 밝혔다.
그렇게 반지음은 반학수라는 전생의 원수와 현생의 원수같은 아버지란 인연을 심드렁하게 흘려보냈다. 못지 않았던 피해자 문서하도 원한을 불쏘시개 삼아 태워버렸다. 그렇게 둘은 흘려보내고 태워서 잊으며 반학수란 악연에 멈추지 않았다.
그럼 반지음은 첫 번 째 생의 원수 사이인 문서하와 어떻게 18회 차에 이어 19회 차에도 좋은 인연을 이어갔을 수 있을까?
이미 1회 차 당대에 반지음의 전생 ‘수’는, 불꽃다리를 건너오는 문서하의 전생 ‘한야’의 심장에 비수를 꽂으며 당대에 원한을 갚았다. 직후 자신은 누군가 날린 화살에 맞았다. 한야는 자신을 죽인 수에 대한 원한을 흘려보내면서 다음 생엔 좋은 인연으로 만나길 원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수의 원한은 정산됐고 한야는 새롭게 치부책을 적지 않았으니 그 원한 전의 인연까지만이 윤회에 작용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수의 영혼은 왜 윤회하며 전생을 기억하는 저주에 걸렸을까? 혹시 당대에 자신이 원한을 풀었음을 인지하기도 전에 죽음을 맞아 그 원한만을 영혼에 각인 시켜 전생을 기억하는 저주에 걸린 것은 아닐까?
그러다보니 드는 궁금증 하나. 과연 좋았던 기억을 잊는 것이 고통스러울까? 끔직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고통스러울까?
가령 반지음은 전생 언니를 죽인 서하에 대한 끔찍한 원한을 잊기 위해 서하와의 아름다운 순간들, 아니 서하 자체를 잊는 것을 기꺼워할까? 서하도 전생을 기억한다면 죄책감을 잊기 위해 한때의 어린 연인 윤주원과 새롭게 사랑한 반지음을 기꺼이 잊을 수 있을까?
민기의 처방에 의하면 전생의 인연과는 맺어지지 않아야 모두에게 좋다. 반지음과 문서하도 예외 없다. 그 두 사람이 이제 서로에 대한 기억을 잃어 타인이 되어야 한다면 어떨까? 끔찍한 과거를 잊지 못하는 저주보다 그가 잊혀질까, 그녀가 잊혀질까 더 두렵지 않을까? 이럴 때 망각은 축복만은 아닌 것 같다.
/zaitung@osen.co.kr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