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중심 의료' 전환, 부단한 노력과 설득 필요해
의료·보건 시스템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환자 중심 의료'를 적극적으로 확산하기 위해선 연구와 진료, 정책 현장 등 전방위적인 측면에서 그 의미와 중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환자 중심 의료란 환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치료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의사결정과 치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돕는다. 국내 의료계 역시 이에 주목하며 도입을 시작했으나 대중적으론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네카)은 지난 1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에서 '환자중심의료기술최적화연구사업단'(PACEN, 페이슨)의 2023년 성과 발표회를 진행했다.
페이슨은 민간 재원으로는 수행하기 어려운 공익적 가치 중심의 임상연구를 지원하는 보건복지부 R&D 사업이다. 2004년 설립됐던 국가 주도 임상연구소인 '질환별 임상연구센터'의 연구사업을 전신으로 하며, 2019년 연구사업단을 구성해 본격적인 연구 사업을 시작했다. 5년차를 맞은 현재 1단계 사업 막바지에 접어들었으며, 내년부터 돌입하는 2단계 사업은 2026년까지 진행한다.
이날 임태환 전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은 "임상연구란 성과가 더디고 결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데다 환자 중심으로의 의료 패러다임 이동 역시 확실한 인식의 전환과 꾸준한 설득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지겨울 정도로 부단히 씨앗을 뿌리면 이뤄진다"고 연구단을 격려했다. 그러면서 임 회장은 "그럼에도 최근 사업단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점차 진료 현장에서도 의료 서비스의 근거를 마련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며 그간의 성과를 평가하기도 했다.
허대석 페이슨 단장은 기조강연을 통해 환자 중심 의료의 개념을 재차 정립하고 그간 연구단의 행적과 앞으로의 구상을 전했다. 허 단장은 "페이슨의 연구 대상은 환자의 필요성과 사회적 가치는 굉장히 높음에도 밝혀진 의학·과학적 근거 수준이 아직 낮은 의료기술들"이라면서 "어떠한 의료 기술이 환자에게 가장 좋은지, 어떻게 의료기술을 환자와 국민들에게 최적화할 것인지 등의 '가치'를 고민하며 연구 주제를 선정하고 의학적 근거를 확인한다"고 사업단을 소개했다.
그는 이어 "환자 중심 의료를 실현하려면 의학과 임상연구의 패러다임을 기존의 '기술 중심, 연구자 주도'에서 '가치 중심, 환자·국민 최우선'으로 옮겨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사회적으론 의료 자원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자원까지도 연구에 융합해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 단장에 따르면 연구단은 2019년 사업 개시 당시 보건의료 전문가, 정책부서, 일반 국민과 환자,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570여 건의 연구 주제를 제안받았고, 첫 해 33개 과제를 최종 선정해 연구에 착수했다. 이후 현재까지 5년간 총 107개 과제에 대해 946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분야별로는 환자의 질병 부담이 큰 심혈관, 종양(암), 신경계, 소화기, 근골격계 질환 등과 관련해 환자에게 더 이익이 되는 치료법을 탐색하고 진료체계를 개선하는 방안 등이 주축을 이뤘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감염병 사태가 의료시스템과 국민·사회 전체에 미치는 연쇄적 피해 상황과 같은 보건사회학적 연구도 수행했다.
1단계 막바지에 이른 현재 34개 연구과제가 종료했고 지난 3년 동안 총 86편의 SCI급 논문이 발행됐다. 당초 목표치보다 많은 숫자다. 또한, 이 과정에서 연구단은 전국 45개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전국의 다양한 의료기관이 함께 협력하는 '연구 플랫폼'도 자연스럽게 형성했다.
허대석 단장은 "앞으로 연구 종료 시점(2026년)까지 121개 연구과제를 완료하고 이를 종합한 데이터베이스(DB) 등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환자 중심 의료 연구의 결과를 보고서와 논문 형태로 출판하는 건 최소한의 목표일 뿐, 이를 향후 진료 현장에 실용적으로 적용하고 수가제도 등 의료정책에도 반영하는 지점이 연구단의 실제 목표"라고 강조했다.
허 단장은 이와 관련한 다양한 방안의 2단계 사업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연구 결과를 임상진료 지침으로 구축·보급해 국내 의료현장에서 의료 관행의 변화를 선도하는 한편, 각 의료기관에서 연구를 통해 축적한 데이터를 실제 정책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 보건의료 데이터로 융합하는 '페이슨 DB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페이슨의 연구를 지원하는 실질적인 주체는 국민이고 세금이기 때문에 최종 연구 결과를 단순히 학계만 알 수 있는 언어로만 소개할 순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연구 내용이더라도 환자의 눈높이에서 국민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리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면서 "향후 페이슨이 구축한 연구 플랫폼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의 보건·의료 문제를 빠르게 포착해 해결하는 파이프라인으로 이어지도록 자리잡길 바란다"고 연구단에 주문했다.
뒤를 이어 미국 정부가 환자 중심 의학기술과 관련 정책을 연구하도록 2010년 설립한 PCORI (환자중심성과연구소)의 에린 홀브 연구인프라센터장 역시 기조강연을 통해 홀브 센터장은 의료보건 시스템에서 환자 중심 의료가 필요한 이유를 강조했다. 그는 "전통적인 의료기술은 환자들의 의사결정에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환자 중심 의료 연구는 환자와 보호자에게도 질환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의사결정 권한과 의료 형평성을 강화하고 결과적으론 의료시스템의 효율성 제고에 기여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코로나19 대유행에 대응한 환자중심 임상연구 △환자중심 보건의료서비스 최적화 연구 △합리적인 의료적 의사결정을 위한 근거생성 연구 △국내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연구 등 4개의 세션을 통해 연구단 내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한편, 1~2세션 좌장으로 참석했던 박병주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대한민국의학한림원)는 이날 자리를 함께 한 보건복지부 홍승령 보건의료기술개발과장을 통해 환자 중심 의료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도 촉구했다. 박 교수는 "이와 같이 의미있는 목적의 대규모 연구사업은 첫발을 떼기가 쉽지 않다"면서 "향후 연구단이 연구사업 종료 이후에도 조직적으로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의료·바이오산업 활성화 정책의 일환에 반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지현 기자 (jh@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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