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위 가계부채율 韓… “DSR 예외 줄이고, LTV별 금리 차등 둬야”

세종=박소정 기자 2023. 7. 17.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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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경제연구원 ‘가계부채 증가 원인과 연착륙’ 보고서
작년 4분기 기준 GDP 대비 가계부채 105%… 韓 3위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세 제약하고 자산 불평등 심화”
“DSR 예외 축소, LTV 차등 금리, 통화 정책 등 조합要”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계속 늘어나면 우리 경제의 큰 불안 요소가 됩니다. 지금은 단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위해서 자금 흐름의 물꼬를 트는 미시적 대응이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이를 줄여가는 거시적 대응을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합니다.”
7월 13일 한은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말.

올해 7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가계 부채’가 가장 큰 화두로 부각된 가운데, 거시 건전성 정책과 통화 정책을 조합해 디레버리징(부채 감축)을 점진적으로 달성할 종합적 정책 체계 수립이 필요할 때라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세계 3위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17일 경제연구원 금융통화연구실 이경태 부연구위원(과장)과 강환구 실장이 작성한 ‘BOK 이슈노트: 장기구조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안’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지난 13일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앞에 붙어 있는 대출상품 관련 현수막. /연합뉴스

◇ 가계부채>GDP, 경제 성장 저하는 물론 자산불평등 심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완만하게 내려가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속해 상승하고 있다. 2010년 주요 43개국 중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4위였는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3위까지 올라섰다. 한국은 105%를 기록해 스위스(128.3%)와 호주(111.8%)를 뒤이었다.

은행 등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취급 선호 관행에 더불어, 길어진 저금리 기조로 관련 수요도 많았던 것이 그간 가계부채가 누적해서 증가해 온 이유로 꼽힌다. 금융기관 입장에선 기업 대출보다 가계대출의 수익성이 높고, 자본 규제와 관련한 부담도 덜하다. 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제도 도입이 2018년에야 이뤄져 주요국에 비해 늦은 데다가, 대출 시점이나 종류에 따라 현재 상당수의 대출이 이를 적용받지 않고 있어 대출 취급이 후한 측면도 있다.

가계 입장에선 저금리 기조 장기화로 가계 차입 비용이나 안전 자산의 실질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는 바람에, 부동산 이외 다른 자산으로 투자를 확대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영향이 있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주택 계약 제도인 전세대출의 비중이 날이 갈수록 확대된 것도 가계부채를 증가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한국은행 제공

보고서는 “현재 높은 수준의 가계부채가 금융 불안정으로 당장 이어질 위험이 제한적이지만, 우리 경제의 장기 성장세 제약이나 자산 불평등 확대 등 부정적인 외부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고소득 차주·가구를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 특징인데, 이런 상황에서 가계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유입될 경우 대출 접근성이 좋은 고소득층의 자산이 저소득층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해 자산 불평등이 확대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가계부채 규모가 앞으로 경제 성장이나 금융 안정을 저해하지 않도록 ‘연착륙 방안’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결론 내렸다. 거시건전성 정책과 통화 정책을 조합해 디레버리징을 점진적으로 달성할 필요가 있으며, 경제·금융 발전 속도에 맞춘 종합적 정책 체계 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계 부문의 신용 확대가 장기 성장세를 저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그래프.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부채와 연관성이 높지만 생산성이 높지 않은 부문에 대한 대출 집중도가 심화돼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제공

◇ “DSR 예외 축소, LTV 차등 금리 적용… 통화 정책도 동원”

상세한 정책 도구의 예로, 거시건전성 정책 측면에서는 가계 부문에 대한 경기 대응 완충 자본 적립, 전세대출 보증 한도 조정, 기업 대출 유동화 지원 등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취급 유인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또 DSR을 모든 대출에 대해 적용하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전세·중도금 대출 등 산정 시 예외가 적용되는데 이런 예외 대상을 축소하고, 담보인정비율(LTV) 수준별 차등 금리 적용, 일시 상환 방식에 대한 가산금리 적용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했다.

LTV 차등 금리 적용과 관련해 이경태 과장은 “영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LTV 15% 단위로 금리를 계단식으로 적용한다”며 “LTV가 60%면 연 3.5%를, 90%면 연 5% 후반을 적용하는 식”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에 도입한다면 실무적으로 어느 정도의 금리 격차를 줘야 할지 등에 대해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면서 “LTV 수준별 금리 격차를 둬 대출을 많이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영국의 LTV 수준별 주택담보대출 차등 금리의 예시(왼쪽)와 주담대 만기일시상환 방식 대출 비중의 주요국별 비교. /한국은행 제공

통화 정책 측면에선 완화적 통화 정책이 가계의 과도한 레버리지 활용이나 위험 자산 투자로 이어지지 않도록 ‘건전성 고려 통화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2금융권 등 ‘그림자 금융’의 비중 증가나 업권 간 상이한 규제 등으로 일차적인 거시 건전성 규제 정책의 ‘약발’이 통하지 않을 경우,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역할로 통화 정책을 활용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건전성 고려 통화 정책에 대해 이 과장은 “특별히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현재 금융과 물가 안정을 동시 목표로 해서 통화 정책을 운용 중인데, 가계부채나 부동산 부문 관련 시장 불안 요인들이 작용할 가능성이 있을 때 금융 안정 부문을 조금 더 중점적으로 고려해서 통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2021년 8월 가계대출 증가와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상승 억제를 이유로 주요국 대비 가장 먼저 금리를 인상하기로 했던 한은의 과거 사례를 살펴볼 만하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상회한 국가(왼쪽)와 시나리오별 비율 감축 전망. /한국은행 제공

보고서의 제언처럼 가계부채를 GDP 수준 이내로 줄이는 데에는 길게는 수십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주요국 중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었다가 이를 되돌린 사례를 살펴보면, ▲덴마크는 17.7년(최대치 137.9%) ▲아일랜드(119.3%) 4.8년 ▲네덜란드(120.4%) 18.5년 ▲노르웨이(113.4%) 5.3년이 소요됐다. 호주(124.3%), 캐나다(112.7%), 스위스(135.8%)는 각각 17년, 7년, 23년째 100% 초과 기간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대입해 소요 기간을 예상해 보자면, 명목 GDP가 연평균 4% 성장할 때 명목 가계부채 증가율이 3.6%씩이라면 2036년, 3%라면 2028년, 2%라면 2026년쯤에 100% 아래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명목 가계부채 증가율이 3%일 경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약 90%에 도달하는 시점은 앞으로 16년 후인 2039년이 될 전망이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의 이상적인 관리 목표 수준에 대해 이창용 한은 총재는 “중장기적으로는 80%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며 “금리 정책만 가지고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 아니다. 부동산 담보 대출 제도 등 변화가 필요하고, 이와 관련해 의견을 조정·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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