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격 맞은 듯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농심도 무너져

황송민 2023. 7. 1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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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사이에 평생 일궈놓은 삶의 기반이 무너져내렸습니다."

400㎜가 넘는 집중호우로 13개 리 중 9개가 물에 잠긴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의 농경지는 16일 흙탕물이 점차 빠져나가자 누런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다.

물이 빠져나간 괴산군 불정면 창산리 농경지에도 고추와 옥수수 등 농작물이 흙을 뒤집어썼고, 물에 휩쓸려온 영농자재와 쓰레기가 제자리를 잃고 널브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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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동평리 이덕한씨가 흙탕물을 뒤집어쓴 영농자재와 벼건조기를 바라보여 망연자실하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평생 일궈놓은 삶의 기반이 무너져내렸습니다.”

400㎜가 넘는 집중호우로 13개 리 중 9개가 물에 잠긴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의 농경지는 16일 흙탕물이 점차 빠져나가자 누런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다. 

비닐하우스 기둥은 휘어지고 비닐은 여기저기 찢겨나갔다. 그 안의 농작물은 쓸려온 토사에 파묻히거나 싯누런 흙을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었다. 농경지 곳곳에는 농기계와 영농자재가 처박혀 있어 수마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긴급 대피소에서 농경지와 집을 살피러 온 몇몇 주민들은 눈앞의 처참한 광경을 보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기도 했다. 

물에 잠겼던 집을 보러온 이덕한씨(64·동평리)는 “비가 많이 온다기에 대비한다고 했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미호천 물에 아내와 함께 몸만 간신히 빠져나올 수밖에에 없었다”며 “정식을 한지 얼마 안된 대파가 모두 흙에 묻히고, 벼 건조기와 농기계·저온저장고 등 대부분의 시설이 망가져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주민들은 “이번 피해는 미호천의 다리 공사를 하며 흙과 자갈이 든 톤백을 쌓아 만든 임시제방이 터지면서 발생한 명백한 인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광순 충북 오송농협 조합장과 오송읍 호계리 주민들이 무너져내린 둑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비닐하우스를 암담하게 바라보고 있다.

15일 새벽 6시30분경 병천천의 뚝이 터져 물바다가 된 오송읍 호계리는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세찬 물살에 비닐하우스는 찢기고 무너져 내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끊긴 둑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도로 조각이 위태롭던 당시 상황을 설명해줬다. 

허망하게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던 박종원씨(66)는 “갑자기 둑이 터져 하우스 16동과 한창 수확 중인 애호박이 모두 묻혀버렸다. 이 나이에 많은 돈을 들여 다시 농사를 시작할 수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며 가슴을 쳤다.  

인근 축사에서는 젖소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소들이 편히 쉬어야 할 축사 바닥은 흙탕물로 난장판이 돼버렸다. 그곳을 피해 한쪽으로 몰려 있는 소들은 서로 몸이 부딪칠 때마다 고통스러운 듯 괴성을 연신 뱉어냈다.

아버지를 도와 축사를 운영하는 정기영씨(38)는 “축사를 덮친 물로 전기시설과 착유기 등 대부분의 시설이 고장 나 젖을 못 짠 소들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다”며 “이 상태에서는 젖을 짜도 정상유가 아닌 이등유가 나와 모두 폐기할 수밖에 없어 손해가 막심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전기를 고치기 위해 한전에 전화했지만 전기안전필증을 받아오라는 한가한 답변만 돌아왔다”고 답답해했다.

괴산댐 방류로 물에 잠겼던 충북 충주 대소원면 문주리 수주마을의 주민 신옥련씨가 흙탕물을 뒤집어쓴 농기계와 영농자재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괴산댐의 긴급 방류로 물에 잠겼던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수주마을 주민은 16일 마을회관 가재도구를 들어내고 청소를 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냈다. 충주소방서에서도 소방차 2대가 출동해 복구작업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물에 잠겼던 집에 돌아온 주민들은 아수라장이 된 집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신옥련씨(69)는 “집 전체가 물에 잠겨 먹을 쌀 한 톨 없을 정도로 피해가 심하다”며 “집 안의 가재도구라도 정리하고 싶은데 거동이 불편한 탓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하루라도 빨리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충북 괴산군 불정면 창신리의 안정자씨 고추밭을 뒤덮어 버린 영농자재와 쓰레기

물이 빠져나간 괴산군 불정면 창산리 농경지에도 고추와 옥수수 등 농작물이 흙을 뒤집어썼고, 물에 휩쓸려온 영농자재와 쓰레기가 제자리를 잃고 널브러져 있었다.

고추밭을 살피러 온 안정자씨(79)는 “정성들여 키운 고추를 수확 한번 제대로 못 해 보고 모두 버려야 한다”며 “밭에 쌓인 쓰레기라도 빨리 치워야 하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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