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충북 오송과 이태원 참사는 '무정부 재난'
유례 없는 폭우임이 틀림없지만 오송 궁평 지하 차도 침수 사고는 작년 경북 포항 아파트 재난과 판박이 사건이다. 대체 1년 만에 어처구니 없는 재난이 거듭되는 이유가 뭘까.
만약 서울 중랑천에서 홍수 경보가 발령됐다고 치자. 오송과 같은 침수 재난이 발생했을까. 이미 훈련된 대도시에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는 지난 토요일(15일) 오전 8시를 넘겨 시작됐다. 그날 새벽 4시 10분에 금강홍수통제소는 홍수경보를 내렸고 청주시 흥덕구청에 그 사실을 통보했다. 2 시간여가 지난 오전 6시 30분엔 수위가 '심각'단계에 이르렀다.
미호천에서 제방을 넘어 쏟아진 물이 길이 400m가 넘는 지하 차도에 한순간 들이닥쳤으니 침수가 시작된 직후부터는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오송을 비롯해 지난 토요일, 전국 재난 소식은 방송 특보로 시시각각 전해졌다. 그러나 뉴스 속보로 전해지는 구조 소식은 감감하기만 했다. 소방이 출동해 대형 방사포로 지하차도에 넘친 물을 퍼냈지만 그또한 속수무책으로 보였다. 대형 방사포로 물을 쏟아내도 미호천 제방에서 흘러오는 물이 다시 차들어 별무 소용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충북 오송 지하 차도 구조 소식은 토요일 종일 내내 그렇게 전해졌다. 국무총리도, 충북 지사도, 청주시장도 지하침수 현장에 보이지 않았다. 특별히 현장에 그분들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어떤 특단의 조치를 지시했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충북도 도로과장 멘트만 전해졌다. "사고 현장 유입구 쪽에 물이 워낙 많이 유입돼 무너진 미호천 제방 물막이 작업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장비를 집중 투입해 하루,이틀 안에 물막이 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뉴스를 지켜보면서 과연 정부와 행정력이 그 재난 현장에 존재하는 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기 시작했다. 좌우간 소방 방사포와 도로과장의 '현실 역부족론'은 하루 종일 지겹게 반복 되었다. 재난은 각자가 지켜내야 하는 몫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국민들이 재난 현장에서 총리 장관이나 도지사·시장 등 고위직에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어떤 탁월한 '구조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다. 그 사실은 다 안다. 국민이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압도적인 행정력'을 동원할 수 있는 '힘' 때문이다.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 위임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므로 그 권한에 따른 '조치'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조가 긴급한 현장에서도 그들이 브리핑 받는 것을 용인한다.
한덕수 총리는 분명히 아니고, 충북 지사가 오송 재난 현장에 토요일에 다녀 갔는지 알지를 못한다. 다만 뉴스에 충북 지사가 다녀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다. 오송 현장에서 그날 가장 큰 미션은 누가 뭐래도 구조 작업의 선결 조치로 뚫린 미호천 제방의 물막이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압도적인 물막이 공사'가 불가능 했을까. 제방 임시 복구를 위해 더 많은 트럭과 장비, 심지어 헬기까지 동원해서라도 물막이 공사를 할 수 없었을까. 가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한 시간이라도 빨리 지시를 내렸더라면 어땠을까. 미호천 제방이 터져서 이미 그런 압도적 동원은 소용 없는 일이었을까. 뉴스 속보를 보는 동안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물론 교통 통제가 미리 이뤄졌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하루가 지나고 일요일(16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지시가 전해졌다.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로 복귀한 윤 대통령은 현지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연결했다. 그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저지대 진입을 통제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한다. 재난 대응의 제 1원칙은 위험지역에 대한 진입 통제와 물길의 역류나 범람을 빨리 인식해 선제적으로 대피 조치를 하는 것이라고도 얘기했다. 대통령의 말은 아쉽다. 이런 식이라면 '과하다 할 정도의 재난 대응'은 사후 약방문 격이다.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로 작년에 주민 7명이 사망했다. 그때도 아파트와 이웃한 하천 물이 아파트 주차장으로 폭포수처럼 흘러 들어와 재난이 발생했다. 비가 오면 제방 옆에 있는 지하 주차장이나 지하차도가 위험하다는 사실은 국민들도 아는 상식이 되었다. 당국은 지난 사고에서 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현 정부들어 이태원 참사와 침수 같은 긴급한 재난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지만 재난 대응 태세와 위기 의식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유일하게 발전한 것은 재난 문자보내기 뿐이라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는 재난에서 행정 책임에 대해 면피를 주다시피했다. 공무원들은 참사 책임에 대해 막을 수 없는 '우발적 재해'라고 변명하는 버릇이 생기지 않았는지 우려스러울 정도이다.
긴급한 사회적.자연적 재난에 원인과 대책을 짚어야 할 감사원은 정권 출범 이래 정치 감사에만 올인하고 있다. 특히 시급하지도 않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동해 북송 사건,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감사는 '긴급성'을 요구한다며 감사원법상 감사위원회 의결도 패싱하고 전격 감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시급성을 요한다며 수사의뢰까지 하는 강수를 뒀다. 반면 이태원 참사 감사는 어떤가. 이태원 참사를 올 초 상반기 감사계획에 포함시켜 놓고도 "계획이 없다"며 거짓 브리핑까지 했다. 그 감사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정작 '긴급한 사유'를 필요로 하는 감사 사안은 뭉개고 정권 비위만 쫓는 감사가 자연 재난에서 '무행정 상태'로 이어진 직접 원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재난 현장에서 국민에게 보여지는 행정력의 무책임성은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 웬만한 재해는 '피할 수 없는 재해'라는 인식이 굳어지고 있는 듯 하다. 재난 현장에서 '권한'을 갖고도 압도적 행정'을 펼치지 않는다면 그런 권한은 무엇에 쓰려는가.
충북 오송 지하차도 침수 재난을 보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사실이 있다. 이 나라는 특보를 하는 방송과 국민 스스로 재난을 지킬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권한을 위임 받은 국무총리, 도지사, 공무원들도 무력하다. 누가 이런 행정을 만들었는가. 뻥 뚫린 하늘에서 비가 그치기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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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구용회 논설위원 goodwil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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