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근로자, 근로계약 해지 요구 거부 시 태업·무단결근”
57% “외국인 근로자 부족” 호소
52% “근로계약 해지 요구 경험”
외국인 고용기업 10곳 중 9곳이 내년도 외국인력 도입 규모가 현재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외국인근로자가 근로계약 해지를 요구하며 태업이나 무단결근하는 등 불공정한 사례를 기업의 절반 이상이 경험했으면서도 외국인 근로자가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그만큼 중소기업의 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17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502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외국인력 활용실태 및 개선사항 조사’ 결과 내년도 외국인력 도입규모에 대해 ‘올해 도입규모인 11만명을 유지’(43.2%)하거나 ‘더 확대해야 한다’(46.8%)는 응답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줄여야 한다는 응답은 9.2%에 그쳤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줄어든 외국인 근로자를 충원하기 위해 올해 비전문 외국인력(E-9 비자) 도입규모를 역대 최대 규모인 11만명으로 결정했다. 외국인력 도입규모는 국무총리실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매년 결정하며, 이때 사업장별 고용허용인원, 고용허용업종, 인력송출국가 등 외국인근로자 관련 기본계획도 심의‧의결한다.
외국인근로자가 부족하다고 응답한 기업들이 추가적으로 필요한 외국인력은 평균 6.1명이었다. 응답기업들이 고용하고 있는 평균 외국인근로자는 9.8명이며, 이는 내국인근로자(76.8명) 대비 12.7%에 해당한다.
1년차 내국인근로자의 생산성과 소요인건비를 100으로 보고 동일연차 외국인근로자의 생산성과 소요인건비 수준을 조사한 결과 생산성은 평균 86.7%, 소요 인건비는 평균 91.5%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포천상의 이상택 외국인근로자전문위원은 “올해 11만명 외국인근로자가 들어오고 있어 코로나19로 힘들었던 회원업체들의 인력갈증이 일부나마 해소될 수 있겠지만 현장 인력들의 고령화가 심해지고 청년세대들의 취업기피가 지속되고 있어 인력부족 문제는 여전하다”며 “중소기업들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향후 몇 년간은 올해와 같은 규모 이상으로 외국인력을 들어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한 기업의 52.4%가 근로계약해지 요구를 경험했는데, 이를 거부하면 태업이나 무단결근 등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모자라는 일손을 충원하기 위해 외국인근로자를 뽑아쓰지만, 외국인근로자들이 회사를 옮기기 위해 근로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경우가 잦아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현행제도상 외국인근로자의 사업장 변경은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사용자의 위법‧부정한 행위로 계속 근로가 어려운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되지만 현장에선 남용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근로자에게 사업장 변경을 위한 근로계약 해지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기업의 52.4%가 ‘있다’고 답했다. 근로계약 해지 경험이 있는 기업이 이를 거부한 경우 외국인근로자들은 ‘태업’(41.1%), ‘무단결근’(14.8%), ‘무단 이탈’(8.7%), 단체행동(4.2%) 등 불성실한 근무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회사측과 원만히 타협하고 정상근무에 나선 경우는 11.4%에 불과했다. 노동청에 진정하는 등 계속 요구하는 경우가 4.6%, 수용해 계약을 해지해준 사례도 15.2%에 달했다.
‘외국인근로자들이 사업장 변경을 원하는 이유’로는 ‘먼저 입국한 지인의 이직권유’(35.4%)가 가장 많았다. 근로 형태 등에 있어서 더 ‘좋은 자리’를 소개받아 옮기는 것이다. 이어 ‘임금 인상’(24.7%), ‘업무강도 낮은 곳으로 이직’(22.4%)이 뒤를 이었다. 수도권이나 도시지역으로 이직한 경우는 9.1%에 그쳤다.
정부는 5일 수도권 등으로의 외국인근로자 이동을 제한하기 위해 그동안 업종내에서 전국 이동이 가능했던 사업장 변경제도를 일정한 권역과 업종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 개편을 실시해 오는 9월 입국자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부산상의 관계자는 “정부 개편안으로 수도권 이직을 위한 사업장 변경문제는 해소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지인의 권유나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한 이직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업장 변경가능 횟수를 줄이고, 태업 등의 불성실한 근무태도에 대해 책임을 묻는 제도적 조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상의는 이번 실태조사와 함께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취합해 ‘외국인근로자 고용·활용 제도 개선 건의서’를 18일 정부에 제출한다.
‘기업이 바라는 외국인력 제도 개선사항’으로 ‘외국인근로자 재입국기간 완화’(53.0%)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사업장별 고용허용인원 확대’(43.2%), ‘사업장 변경 요건 강화’(36.6%), ‘외국인력 도입규모 확대’(33.5%), ‘한국어·문화 교육 강화’(29.1%), ‘생산성 향상 위한 직업훈련 제공’(26.5%) 등의 순이었다.
건의서에는 비전문외국인력(E-9비자) 관련해 △도입규모·고용허용인원 확대 △체류기간 연장 △사업장변경 횟수 제한 △고용허용 업종 추가(택배분류업무, 플랜트공사) △외국인력 체류지원 확대 △외국인력 배정 점수제 개편 등을 담았다.
전문외국인력인 숙련기능인력(E-7비자) 관련한 건의도 있다.
“심각한 인력난을 겪는 조선업에 도입한 용접공‧도장공의 낮은 기량과 자격이 문제되고 있다”며 자격기량 검증체계를 현지에 구축해 줄 것과 최근 해외수주가 늘면서 인력부족을 겪고 있는 항공제조산업에 대해서도 숙련기능인력 도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 외 외국인 유학생의 지역기업 채용연계, 공적개발원조(ODA) 직업훈련사업 참여자 도입, 출입국관리소 인력충원 및 증설 등도 건의했다.
유일호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산업현장 뿐만 아니라 농어촌 등의 만성적인 인력부족을 해결하는데 외국인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인구감소와 도심 인구집중화로 인해 앞으로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규모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이제는 단순히 내국인 인력을 대체하는 차원을 벗어나 다양한 수준의 외국인력을 도입하고 이들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책방향을 잡아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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