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가계부채, 단기에 GDP 이내 축소 어렵다…규제 지속해야"
"금리로 부채 조정보단 거시건전성 규제 활용을"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세계 3위 수준인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이내로 단기간에 줄이긴 어렵다는 분석이 한국은행 내부에서 나왔다.
주로 금리보다 대출 등의 규제를 꾸준히 활용해 GDP 성장률 대비 낮은 수준의 가계부채 증가율을 유지함으로써 '완만한' 디레버리징(부채 감축)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은이 17일 발간한 '장기구조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의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안' 제하의 BOK 이슈노트에는 이 같은 주장이 담겼다.
먼저 보고서를 작성한 이경태 경제연구원 금융통화연구실 부연구위원과 강환구 실장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지난해 4분기 기준 105.0%로 스위스(128.3%), 호주(111.8%)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에는 43개국 중 14번째로 높았던 가계부채 비율이 10여년 새 크게 오른 것이다.
부채를 보유한 차주만을 대상으로 분석하면 부채 규모는 평균적으로 소득의 약 2.3배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부채를 보유한 차주의 비중이 높았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첫 번째 특징으로는 소득 수준이 높은 차주·가구 중심으로 대출이 이뤄진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연구진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를 분석한 결과, 각 소득 분위가 가계부채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소득 수준이 낮은 1·2분위의 경우 11%(작년 말 차주 단위 기준)에 그쳤지만 4·5분위의 경우는 76%에 달했다.
아울러 5분위의 소득점유율은 37%를 기록한 반면 대출 잔액 점유율은 53%로 대출 잔액 점유율이 소득 점유율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3분위의 대출 점유율은 약 2~7% 내외로, 소득 점유율에 비해 낮았다.
보고서는 "다만 소득에 따른 대출 접근성 격차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이같이 늘어난 데에는 가계대출의 높은 수익성·안정성, 낮은 자본규제 부담이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선호 유인을 조성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규제 미비 탓도 컸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에선 주요국과 달리 차주 단위 대출 규제(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가 뒤늦게 이뤄진 데다 전세·중도금 등 상당수 대출이 이를 적용받지 않아 가계부채 증가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수요 측면에서는 소비보다 주택 등 자산투자 목적 등에 의해 가계부채가 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가계의 차입비용, 안전자산의 실질수익률이 크게 하락했고 이에 가계가 여타 자산 투자를 확대할 유인이 형성됐다.
보고서는 "전세대출 확대도 가계부채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추정했다.
현재 가계부채의 위험성에 대해 연구진은 "금융 불안이 확대될 위험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담보대출에 대한 담보인정비율(LTV)이 낮고 대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소득 차주의 상환 능력이 양호해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등과 같은 상황은 초래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다만 "가계부채가 임계치를 넘어 과도히 늘어날 경우 상환 부담에 따른 소비 위축 효과가 부채 확대에 따른 소비진작효과를 넘어서면서 장기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연구도 가계 부문의 신용 확대는 오히려 장기 성장세를 저해하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경고했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부채와 연관성이 높지만 생산성이 높지 않은 부문에 대한 대출집중도가 심화되는 등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특히 부동산업은 2015년 이후 대출집중도가 심화돼 지난해 GDP 구성비 2배 이상의 대출이 유입된 상태다.
자산 불평등 확대도 우려된다. 지난 2017~2022년 부채보유가구로 전환된 가구의 순자산 증가폭(1억200만원)은 부채미보유가구(7100만원)를 상당 폭 웃돌았다.
한은은 가계부채 축소에는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며 중장기적 개선 방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가계부채를 GDP 수준 이내로 줄이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계부채 비율이 지금 우리나라처럼 100%보다 높았던 7개국을 살펴보면 100% 미만으로 떨어지기까지 노르웨이·아일랜드는 약 5년, 덴마크·네덜란드는 18년이 걸렸다.
이에 보고서는 "누증된 가계부채를 연착륙시키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다양한 구조적인 개선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가계의 높은 실물자산 보유 비중을 고려할 경우 "단기간에 부채 규모를 GDP 이내로 축소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금융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계부채 증가율을 GDP 증가 범위 이내로 지속 관리해 완만한 디레버리징을 달성해야 한다는 취지다. 예컨대 연평균 GDP 성장률 4%에 가계부채 증가율 3%를 가정하면 가계부채 비율은 2039년 약 90%에 도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가계부채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연착륙시키는 동시에 가계부채 누증이 재발하는 것을 구조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통화정책·거시건전성 정책 체계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한은의 최우선 목표가 물가 안정임을 고려하면 가계부채 조정을 위해 금리 정책을 활용하기보다는 DSR 예외 축소, 가계 부문 경기대응완충자본(SCCyB) 적립 등 거시건전성 규제를 중심으로 경제주체의 차입 유인과 금융기관의 신용공급 유인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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