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데이먼-마고 로비도 파업중! 마비된 할리우드
아이즈 ize 홍수경(칼럼니스트)
미국 작가 조합의 파업이 두 달 이상 계속되는 가운데, 배우 조합도 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정했다. 프라임 타임 에미 시상식 후보가 발표된 바로 다음 날이었다. 파업을 공표하던 때에 마침 런던에서 시사회 행사에 참석 중이었던 영화 '오펜하이머'의 배우들은 파업 소식을 듣고 연대를 표명하며 일찍 자리를 떴다. 킬리언 머피, 맷 데이먼, 플로렌스 퓨 등 주요 배우 없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홀로 상영후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상황을 알렸다.
미국 작가와 배우가 모두 파업에 돌입했다. 추후 3년간 제작사와의 계약 기준을 정하는 노동 조합 협상이 불발되면서 할리우드가 문을 닫은 셈이나 마찬가지다.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각 대형 스튜디오 앞에서 조합원들은 공정한 보상을 요구하는 문장이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와 시위를 시작했다. 파업 기간 동안 조합 소속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나 밖에서나 직업과 관련된 행위가 중단된다. 촬영은 물론이고, 스턴트, 모션 캡처, 목소리 녹음 및 예고편 촬영이나 오디션, 영화제, 시상식, 출연 협상 등 작품 관련된 어떤 행위도 할 수 없게 되면서 이후 영화와 TV 시리즈의 제작 과정과 홍보에 두루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미 제외되는 몇 독립 영화를 제외하고 제작이 중단되었다. 홍보도 멈췄다. 현재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이 한창이고 에미 시상식이 끝나면 올해 드라마 시즌이 시작된다. 9월 베니스 영화제부터 아카데미 시상식 프로모션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대형 스튜디오가 빠르게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하반기 배우들 소식을 접할 기회가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관객은 어쩌면 수백만 달러를 벌고 있는 스타들의 얼굴만 떠올릴지 모른다. 몇달간 파업을 하더라도 생계 문제가 없는 할리우드 스타들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배우 조합원 구성의 일부일 뿐이다. 배경이 되는 배우, 대역 배우, 스턴트 배우, 성우, 대기 배우 등 수많은 배우들의 생계가 조합의 협상에 달려 있다. 할리우드 스타라 할지라도 배우라는 직업의 위기에 대해 간과할 수 없다. 대부분 최저 임금을 받으며 무명 배우로 업계에 진출했던 과거가 있었고, 선배이자 업계 권력자로서 힘을 보태는 게 할리우드 배우 세계의 순리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배우도 시대 변화와 함께 '실존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말한다. 두 노동 조합은 비슷한 쟁점을 가지고 있다. 스트리밍 이전 시대에, 창작자와 실연자는 자신의 콘텐츠 라이선스가 수익을 거둘 때마다 일정 지분을 받았다. 이를 테면 시트콤 '프렌즈'는 여전히 미국에서 플랫폼을 바꿔가며 방영이 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수익이 발생한다. 라이선스 지분을 가진 관계자는 수익이 발생할 때마다 계약한 대로 추후 지분 수익(residual)을 얻는다. 스트리밍 시대가 되고 플랫폼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오리지널 작품이 증가하면서 재방송이나 재상영으로 인한 수익 계산이 어려워졌다. 대형 스트리밍 서비스는 자체 지분 비율을 적용하고 있지만 작가와 배우는 일방적으로 결정된 비율에 반대하고 있다. 극장 상영작이 블루레이, 디지털 대여/판매, 공중파, 케이블 TV 등으로 팔리던 시절에는 셈이 간단했다.
그러나 한 개의 혹은 소수의 스트리밍 시스템 안에서만 반복되는 콘텐츠는 어떻게 수익이 계산되어야 할까? 작가와 배우는 대안을 요구하며 비율을 인상할 것을 요구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콘텐츠 비즈니스와 그 구조를 바꾼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 사이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분쟁 지점이다. 예전과 같은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생산자의 몫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면? 그것이 창작자에게 바람직한 생태계인지 의문시 하는 게 당연하다.
인공지능(A.I) 또한 배우 업계를 뒤흔드는 기술이다. 쟁점이 되는 기술 중 하나는 배우를 디지털 이미지로 복제한 뒤 그 이미지에 대한 권리를 소유하고 A.I 기술을 이용해 계속 콘텐츠에 활용하는 경우다. 초상권을 지킬 수 있는 셀러브리티보다 단역들에게 영향이 큰 기술이다. 배우 조합은 복제를 위해 필요한 시간만 임금을 지불하고 배우의 실연을 무한 복제하는 오남용을 방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배우 출연 없이 실사 콘텐츠 제작이 가능한 사태를 하루라도 빨리 막으려는 것이다. 목소리 연기 쪽은 이미 심각하게 A.I 기술이 적용되고 있어 성우를 위협하고 있다.
자가 녹화 오디션 테이프도 협상 대상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대면이 어려워 자가 녹화 오디션 테이프 제출이 보편화되었고 팬데믹이 끝난 지금도 관행처럼 지속되고 있다. 거리상 오디션 현상에 참석할 수 없는 숨은 인재를 위해서는 유용한 방식인 듯 하지만, 배우가 오디션 동영상 비용을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결과를 낳았다. 덕분에 제작사의 오디션 장소 관련 비용은 감소했다. 전세계에서 오디션 테이프를 제출할 수 있게 되면서 경쟁은 한층 심화되었고, 제출 물량을 감당하기 위한 캐스팅 회사가 성장했다. 캐스팅 회사는 점점 더 까다로운 제출 조건을 내건다. 배우는 격화된 경쟁 속에서 더 좋은 테이프를 만들기 위해 집을 오디션 장처럼 개조하기도 하고 고가의 컨설팅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당락이 불명확한 가운데 이런 자가 테이프는 연기자에게 큰 부담이 되어 버렸기에 배우조합은 이에 대한 규제를 확립하고자 한다.
할리우드 배우 파업은 43년 만에 처음이다. 당시 비디오로 대표되는 홈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등장하면서 배우들은 지분을 얻기 위해 싸웠다. 작가와 배우 동시 파업은 1960년 이후 처음이고, 그 때는 영화의 TV 재방영 라이선스 수익 지분이 큰 협상 이슈였다. 이번 파업 또한 미디어와 기술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와 실연자는 플랫폼이 변할 때마다 제작진에 맞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왔다. 배우를 대체할 수 있는 A.I 기술이 부상하고 있는 지금은 여느 때보다 힘든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작년부터 경영 개선에 들어간 OTT 서비스에게는 제작 비용 인상을 초래할 노동조합의 협상안이 또 하나의 난제로 부상했다.
전세계 콘텐츠가 서로 선택받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글로벌 스트리밍 시대에 할리우드의 투쟁은 지역적인 문제로 여겨질지 모른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창작자라면 이 싸움은 단지 바다 건너의 불구경이 아니다. 이번 할리우드 파업은 투자자, 제작자, 창작자가 공정하게 지분을 나누고 인력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 기술 활용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시대와 지역을 가로지르는 기준을 세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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