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위대한 동행’ 70년과 이승만 혜안[이미숙의 시론]

2023. 7. 17. 11: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미숙 논설위원
정부수립 이어 北 남침 격퇴 李
한미 상호방위조약도 이끌어
동맹 없으면 전쟁 재발 됐을 것
한미동맹 덕분 亞 공산화 막아
이승만은 英 처칠 같은 지도자
尹 ‘李 결기와 리더십’ 따라야

원로 영화배우 신영균(95) 선생이 땅 4000평을 이승만(1875∼1965) 초대 대통령 기념관 건립용으로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분은 건국 대통령일 뿐 아니라 6·25전쟁 때 우리나라를 지킨 분”이라는 말도 했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6·25전쟁, 그리고 전후 폐허 속에서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일구며 선진국으로 발돋움해온 과정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켜본 노배우의 체험적 평가라는 점에서 울림이 각별하다.

‘이승만이 없었으면 대한민국도 없다’는 말엔 3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이승만이 없었으면 해방 후 좌파의 집요한 파괴 책동 속에서 1948년 정부 수립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첫째이고, 그가 없었으면 1950년 김일성의 남침을 물리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둘째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있었기에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승만은 미국이 군사고문단 3000명만 남겨둔 채 1949년 미군을 철수한 탓에 전쟁이 났다고 봤다. 그래서 휴전협정에 앞서 방위조약 협상을 미국에 집요하게 요구했다.

휴전 협상이 한창이던 1953년 6월에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전망은 불투명했다.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휴전협정부터 체결하자’는 식이었고, 미 국무부 등도 ‘공산 세력의 재남침 시 참전국들과 강력한 응징 보복을 한다’는 선언 정도로 때우려는 기류가 강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한국을 지킬 수 없다고 본 이승만은 3만 반공포로 석방이란 충격요법까지 동원하며 배수진을 쳤다. 그 덕분에 7·27 휴전협정 체결 후 한미 외교장관이 협상을 시작해 10월 1일 양국 정상이 서명했고 이듬해 11월 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됐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을 기념해 반기문재단과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이 지난 3일 공동 주최한 심포지엄 때 주제 발표자인 제성호 중앙대 교수에게 ‘휴전 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제 교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1950년대에 공산화됐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군이 철수하자 1973년 함락된 남베트남, 2021년 아프가니스탄처럼 한국도 김일성 손아귀에 들어갔을 것이란 얘기다. 휴전 이후 1971년 남북대화가 시작될 때까지 20년 가까이 북한의 무력도발은 7800건이 넘고, 안보 불안 상황도 이어졌다. 1968년 1월 청와대 습격을 위해 남파된 김신조 등 무장 공비 일당이 자하문 부근까지 접근했을 정도다.

이승만은 휴전 협상 국면을 한미동맹 체결 모멘텀으로 활용, 6·25 후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경제·군사 지원을 받으며 한강의 기적으로 나갈 발판을 마련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1953년 결단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1940년 결의와 닮았다. 처칠이 그해 하늘과 땅, 바다에서 끝까지 아돌프 히틀러와 싸우겠다는 결기로 영국을 살리고, 자유 진영의 승리를 이끈 것처럼, 이승만은 김일성의 재남침을 막기 위한 한미동맹을 1953년 체결함으로써 한국을 살리고 동아시아의 도미노 공산화를 막았다.

이승만은 당시 특별 담화를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우리나라 독립 역사상 가장 귀중한 진전이고, 그 영향이 자손만대에 미칠 것이니 우리가 잘만 해서 합심 합력으로 진전시키면 후대에 영원한 복리를 줄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대로 실현됐다. 오는 27일, 6·25 당시 낙동강 전선 최대 요충지였던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지에 이승만 동상이 제막된다. 여기엔 “우리는 남자와 여자, 아이들까지 필요하다면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서라도 싸울 것”이라는 그의 글귀가 새겨진다. 전쟁이 일어난 날 미국 측에 이런 메시지를 전한 그의 결기가 동맹을 탄생시켰고, 나라를 살렸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이 바통을 이어받아 동맹의 미래 전략을 짜야 한다. 이를 위해선, 미국을 설득할 충격요법도 불사하면서 오직 국가 수호에 집중했던 이승만의 리더십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래야 한미동맹이 북·중의 위협을 넘어 안보·경제·첨단 테크놀로지·원전·우주 등 전방위에서 협력하는 21세기 글로벌 동맹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미숙 논설위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