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에서 삼성백혈병, 예수복제까지···자본·민족주의·욕망에 관한 사회학자 김종영의 소설 ‘문두스’

김종목 기자 2023. 7. 1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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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스>(갈무리)는 여느 소설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소설을 쓴 이는 사회학자이자 과학기술학자인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김종영이다. 소설 소재는 그간 픽션 영역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황우석 줄기세포 조작’ 사건과 ‘황빠’다. 삼성백혈병 사건과 반올림 운동, 광부 진폐증 같은 산재 사건도 녹였다. 여성 몸 착취라는 문제의식도 담았다. 민족주의 비판도 빼놓을 수 없다. 상상의 영역에서 주목할 건 ‘예수 복제’라는 소재를 끌어온 점이다. 역사의 대립 인물인 세조와 성삼문도 복제한다.

황우석 교수가 2005년 12월 23일 서울대 수의대 5층 현관 앞에서 울먹이는 제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교수직 사퇴 의사를 발표하고 있다. 강윤중기자

김종영은 갈무리 개최 작가와의 만남에서 진행한 강연과 교수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2005년 황우석 사태와 황빠(열렬한 황우석 지지자) 현상을 연구하다 ‘21세기 파우스트’를 쓰리라 결심했다고 한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악마와 영혼의 거래’를 한 ‘파우스트적 거래’로 널리 알려진 허구 인물이다. 김종영은 황우석을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영혼까지 판 우리 시대의 파우스트”로 여긴다. 파우스트의 21세기 버전은 “직접 신이 되려는” 존재이기도 하다.

황우석이 교통사고로 척수 장애를 앓던 소년에게 ‘반드시 걷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 점 등을 들며 “사회과학적 언어의 논문에 이걸 쓸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출간 시기와 맞물려 나온 넷플릭스 다큐 <킹 오브 클론: 황우석 박사의 몰락>엔 소년의 아버지인 목사 김제언과 황우석이 교회에서 재회하는 장면이 나온다. 2005년 7월 26일 열린 KBS <열린음악회> 녹화 때도 “휠체어 댄스를 선보인 강원래를 벌떡 일으켜 과거의 화려한 몸놀림을 다음 ‘열린음악회’에서는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종영은 “호모 데우스(신적 존재)를 꿈꾸지만 호모 데멘스(미친 존재)”에 관한 드라마를 써 내려간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킹 오브 클론: 황우석 박사의 몰락> 포스터.

소설은 스릴러, SF, 사회비판소설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른다. 도입부는 황우석 사태의 전개와 비슷하다. 소설은 황우석을 모델로 한 ‘권민중 박사의 자살 미스터리’를 넣으면서 상상 영역으로 나아간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미국 CIA, 세계 최대의 음모 조직 프리메이슨이 등장한다. 여기에 가상의 조선 최고의 비밀결사 조직 삼문대와 한국 재벌 한성그룹의 ‘한거용 회장’의 비밀 조직 ‘모비딕’도 나온다.

소설에선 이들 조직이 줄기세포기술을 얻으려 서로 다툰다. 소설 제목인 문두스(Mundus)는 라틴어로 세계, 우주, 하늘이란 뜻이다. 소설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술, 가장 중요한 것’을 뜻한다. 김종영은 “문두스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욕망, 세상을 다 가지려는 욕망을 뜻하는 표현”이라고도 했다. 문두스 어원은 ‘구멍’이기도 한데, 한거용의 성적 욕망을 은유하는 말이기도 한다. 소설에선 바벨탐을 본뜬, 한성그룹 100층짜리 사옥 이름이 ‘문두스’다.

소설 <문두스> 표지. 바벨탑을 본떠 만든 ‘문두스 빌딩’을 이미지로 만들었다.

권민중이란 이름에서 민중은 한국인을 가리킨다. 김종영은 소설 화자이자 줄기세포 조작을 폭로한 ‘강대웅 기자’의 대사에 다음과 같은 말을 넣었다. “줄기세포의 환상에 사로잡혀 가짜와 실재를 구별 못 하는 어리석은 군중들. 인지 부조화와 스톡홀름 증후군에 시달리는 민중들. 좀비보다 썩어 문드러져 시체 냄새가 나는, 과학을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넘긴 매판 민족주의자들. 그들에게 과학은 중요치 않고 오직 집단적 열등감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과학자가 필요할 뿐이다. 민중은 과학이 아니라 욕망이다.” 김종영은 “(민중은) 한국인의 좌절된 욕망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학술계, 정치권, 재계의 욕망과 이어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김종영은 2017년 낸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지성의 도전>에 “과학자, 정부, 시민으로 이루어진 지배지식동맹의 일환”인 ‘황우석 동맹’이 한국인을 집단적으로 속였다고 분석했다.

소설은 “한국 자본주의가 여성, 동물, 노동자 신체를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동물 실험,동물 연구 윤리 문제도 다룬다. 베트남 참전 군인의 고엽제 문제와 베트남 농민 학살 문제까지 넣었다.

김종영은 ‘한거용 회장’이 백혈병에 걸린 것으로 설정하면서 일종의 ‘문학적 정의’ 구현을 시도한다. 소설에선 “나 백혈병일세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라는 한거용의 말에 강대웅이 “죽은 여공들이 이제 좀 이해가 되십니까?”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소설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을 두고 ‘악의 비범함’으로 논박한다.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 때문에 아이히만이 행한 악이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아우슈비츠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도리스라는 소설 속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치 제국의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자가 사유할 능력이 없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는 적극적으로, 아주 적극적으로 유대인을 몰살할 수 있는 생각을 짜내고 또 짜냈어요.(…). 아이히만의 악은 치밀하고 계획적이었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 낸 ‘사유의 산물’이었어요. 선만 공부를 하는 게 아니에요. 악도 공부를 할 줄 알죠. 아렌트의 주장과 달리 악은 ‘사유의 불능성’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만능성’ 때문에 일어나요. 그 사유의 만능성은 ‘모든 것은 가능하다’는 곧 6백만도 죽일 수 있다는 결론으로 나아갔고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은 결과로 이어졌죠.”

SF적 요소도 한국 현실과 역사 문제와 결합했다. 성삼문을 기리려 550년 전 조직된 삼문대는 사육신을 죽인 세조를 복제해 ‘역사적 법정’에 세우려 한다. 이를 위해 함무라비 법전에서 네바다 자율주행차법까지 모두 아는 ‘알파로(AlphaLaw)’라는 인공 지능을 만든다. 즉 과학이 역사를 심판하는 것이다.

‘예수 복제’라는 소재는 논쟁적이다. 이 소재 자체는 새로운 건 아니다. 제임스 보사이너가 1988년 <크라이스트 클론>에서 예수의 주검을 감싼 ‘튜린의 수의’에서 채취한 피부세포로 복제한 ‘재림 예수’를 다뤘다. 김종영은 <문두스>에서 한국과 이스라엘이 핵무기와 예수 복제를 거래하는 내용의 설정을 넣었다. ‘신을 죽인 민족’이라는 비난을 받는 유대인 문제를 이스라엘 민족주의, 신의 존재 문제 등과 연결한다.

황우석 지지자들이 2006년 2월 20일 서울대에서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갈무리 제공

김종영은 18년 전 북파공작원 훈련 교관 출신 ‘황빠’를 인터뷰했다. 당시 그의 여덟살 짜리 아들은 ‘뇌척수 장애’를 앓았다. “피와 살이 튀는 삶”을 살며 “황빠 운동에 올인”한 이야기를 ‘사회과학적 언어’와 ‘(박사로 훈련받으며 배운) 순종적인 글쓰기’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한다. 즉 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김종영은 “소설과 사회학의 공통점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잘하기는 매우 어렵다. 소설은 결코 만만한 장르가 아니다”라고 했다. ‘21세기 파우스트’라는 목표를 위해 괴테를 읽고 또 읽었다고 했다.

‘지적인 사회 비판 소설’이란 점은 분명하다. 재벌, 종교, 민족주의, 베트남전 학살 문제까지 거침없이 과감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용감한 소설’이기도 하다. 갈무리 출판사는 “현대 소설이 사소설화되고 심리학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내놓은 “거대서사적 형상을 통해 이슈화하려는 반시류적 노력의 산물”이라고 자평한다.

한 사회학자가 ‘21세기 파우스트’를 내세우며 내놓은 도전적인 소설을 두고 독자 반응이 어떨지는 지켜봐야 할 듯하다. 김종영은 교수신문에 최근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내가 ‘21세기 파우스트’를 꿈꾸면서 <문두스>를 썼다고 하면 또 말도 안 된다고 할지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상관없다. 18년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지 않았는가.”

사회학자 김종영. 갈무리 제공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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