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가득한 구미호, 모계사회에 대한 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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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 구미호가 전시장에 나타났다.
인간보다 강하고 능력이 뛰어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배척의 대상이 된 구미호는 사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둔갑에 둔갑을 거듭하며 인간 사회에 섞여 든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전시장은 꼭두를 시작으로 미로가 있는 중간계를 거쳐 신성한 세계인 사당과 같은 공간으로 이어진다.
전시장 마지막 공간인 사당은 힘없는 소수자들을 위한 헌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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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展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 구미호가 전시장에 나타났다. 사람을 홀려 간을 빼먹는다는 요물이 주인공이다. 한국계 캐나다 작가 제이디 차(Zadie Xa)는 구미호를 입체적으로 읽어낸다. 인간보다 강하고 능력이 뛰어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배척의 대상이 된 구미호는 사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둔갑에 둔갑을 거듭하며 인간 사회에 섞여 든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버려진 것, 중요하지 않은 것, 미생(未生)이 전면에 등장하는 전시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가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린다.
전시는 수미쌍관(首尾雙關)의 구조로 진행된다.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것도, 전시장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꼭두’다. 망자를 사후 세계로 안내하는 꼭두는 상여의 지붕에 나무로 조각된 장식품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해태를 탄 우두머리가 가장 선두에 놓이는데, 장군과 같은 남성인 경우가 많다. 제이디 차는 이 우두머리 꼭두에 동아시아의 태고신인 ‘마고할미’를 놓았다. 모계사회에 대한 헌정인 셈이다.
전시장은 꼭두를 시작으로 미로가 있는 중간계를 거쳐 신성한 세계인 사당과 같은 공간으로 이어진다. 입구는 두개이지만 출구는 하나인 미로는 복잡해 같은 곳을 두 번 돌기 쉽다. 현생의 역경이자, 신성한 세계로 가기 위한 험난한 여정과 다름 아니다.
미로 곳곳엔 반인반수의 그림이 걸려있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뭇 남성들을 ‘홀린다’는 구미호는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로 묘사된다. 연륜과 경험으로 공동체를 이끄는 여성 지도자의 풍모다. 작가는 “글로 전하는 남성 문화와 달리 여성들은 구전으로 전통 지식을 전승한다”며 “한국의 샤머니즘은 여성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페미니즘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이해하는 모계사회는 버려진 자, 배척된 자, 지위가 낮은 자들을 끌어안는다. 사기꾼으로 취급되는 여우가 그렇고, 유기된 개와 쓰레기 취급을 받는 갈매기들도 포함된다.
전시장 마지막 공간인 사당은 힘없는 소수자들을 위한 헌정이다. 이 모두를 이끄는 것은 ‘바리데기 공주’다. 자신을 버린 부모지만,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정작 본인을 희생한 바리데기 설화는 가운 같은 옷으로 표현했다. 부엌을 상징하는 불과 식칼, 김치 문양이 여러개 패치된 가운은 일견 무당의 법복처럼도 보인다. 엄마가 딸로, 그 딸이 또 그의 딸로 전달하는 ‘김치’는 구전 지식의 요체요, 한국인 정신의 근간인 셈이다.
제이디 차는 최근 글로벌 미술계가 주목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한국인이지만 캐나다에서 태어나 디아스포라를 체화한 작가다. 그가 묘사하는 한국은 서양의 시각에서 보기엔 너무나 한국스럽고, 한국의 시각에서 보기엔 어딘가 서양스럽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않는 작가의 정체성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2022년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2020년 캐나다 사스카툰 리마이 모던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다.
부드럽지만 강한,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여성상이 신화화 한다면 이러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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