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안 쓰면 예산 절감될까요? 아닙니다

김정덕 기자 2023. 7. 1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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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댓글에 답하다: 예산 불용 보도
가계와 구조부터 다른 나라살림
계획따라 세금 걷어 쓰는 구조
돈 남으면 계획에 문제 있단 방증
지자체 불용 탓에 나랏빚 늘기도
일부 절감효과 있지만 12% 불과
정부 소비 줄면 국가경제 악영향

# 더스쿠프는 최근 나라살림연구소의 보고서를 토대로 '예산 안 쓰면 절약 아닌가요? 답은 반대입니다(통권 551호)'라는 기사를 냈습니다. 정부가 지난해 18조원의 예산을 쓰지 않았는데, 그게 문제라고 지적한 기사였습니다.

# 그러자 이런 반응들이 나옵니다. "나랏빚을 갚는 것도 죄냐?" "예산은 무조건 다 써야 한다는 논리면 예산을 낭비하라는 거냐?" 예산을 아꼈으니 오히려 잘한 일 아니냐는 겁니다. 과연 이 지적은 타당할까요. 더스쿠프가 이 댓글에 다시 답을 해봤습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예산을 잡아놓고도 안 쓰면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크다.[사진=뉴시스]

우리가 월급을 최대한 아껴 쓰고, 돈을 남겨 저축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죠. 이게 좋지 않은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소비를 해야 내수 경제가 굴러가긴 합니다. 하지만 소비 대신 저축을 하면 그 돈이 민간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소비 못지않은 역할을 합니다. 자산이 차곡차곡 쌓이니 가계 재무도 튼튼해질 겁니다.

난데없이 왜 뻔한 질문을 던지냐고요? 네,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질문 때문입니다. 그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계획한 예산을 쓰지 않는 것도 좋은 일일까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누군가는 "계획한 예산을 안 쓴 거면 돈을 아낀 것이니 잘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정부 살림살이는 가계 살림과는 다르고, '예산을 쓰지 않는 것'과 '예산을 아낀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예산 미집행=절약'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 사례➊ 기재부 엉터리 예산 편성 = 지난해 기획재정부의 결산서에 따른 예산은 22조2866억원이었습니다. 기재부는 19조5184억원을 집행하고, 2조7682억원을 남겼습니다. 대부분 계획해놓고도 다 쓰지 못한 '불용예산'이었는데, 이 가운데 2조896억원이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 이자상환'을 위한 예산이었습니다.

정부는 재원이 부족할 경우, 종종 국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공공자금관리기금의 돈을 빌립니다. 그럼 국채를 회수하고 돈을 갚을 때는 이자를 줘야겠죠. 그게 바로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 이자'입니다. 쉽게 말해, 빌린 돈의 이자를 갚고도 2조원이 넘게 남았다는 겁입니다. 기재부가 이 예산을 '잘못 편성해서' 발생한 일입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를 해보겠습니다. 이자를 갚고도 2조원이 남았으니, 기재부는 잘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남은 2조원은 다음해로 넘어가는데, 용처用處가 불분명합니다. 기재부가 예산을 제대로 편성했다면 2조원을 훨씬 더 의미 있게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문가들은 세수부족에 시달리는 윤석열 정부가 올해 고의적으로 예산을 쓰지 않을 거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사진=뉴시스]

사실 기재부가 예산을 엉망으로 편성하는 게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닙니다. 2조원이나 남은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 이자' 관련 예산을 편성할 때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는 "기재부에선 2019~2020년에도 이자 비용을 과다 추계해 매년 1조원 이상 불용했다"면서 "예산을 1조원가량 감액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2022년 예산을 전년보다 1조4000억원가량 증액했고, 결국 2조원을 남겨버렸습니다. 어떤가요? 이걸 '절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례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 사례➋ 행안부의 미집행예산 =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82조215억원의 예산 가운데 79조7085억원만 집행했습니다. 나머지 2조3130억원은 미집행했다는 건데, 그중 90%가량인 2조691억원은 예산을 마련하지 못해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부동산교부세였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추진한 부동산 감세정책에 따라 세금이 덜 걷혀서 못 쓴 겁니다.[※참고: 가령, 정부 예산 1조원은 '서류상 숫자'입니다. 이 정도 세수가 걷힐 것이니 이 정도 돈을 쓰겠다는 계획서가 바로 예산이죠. 그러니 세수가 덜 걷히면 예산의 '미집행분'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자! 그럼 미집행예산인 2조691억원은 절약한 걸까요? 이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부동산교부세는 전액 지자체에 나눠주는 '지방교부세'의 재원으로 쓰입니다. 부동산교부세가 계획보다 덜 걷혔다는 건 지방교부세가 그만큼 줄었다는 겁니다.

달리 말해 지방교부세 의존도가 높은 지자체의 경우 살림살이가 빠듯했을 거라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지방의 저소득 가구가 지자체로부터 지원받던 라면 한박스가 절반으로 줄었을 수도 있는 거죠. 이번엔 좀 더 나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 사례➌ 돈 남은 지자체 = 정부나 지자체가 쓰지 않은 돈은 이월액과 불용액으로 나뉩니다. 이월액은 다음해에 사용할 것이 예정돼 있는 예산입니다. 불용액은 다음해 예산에 편입되거나 '순세계잉여금'으로 분류돼 금고에 남습니다. 2021년 전국 지자체의 순세계잉여금 총액은 31조4000억원이었습니다. 안 쓰고 쟁여놓은 돈이 그만큼이었다는 거죠.

당시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정부 지출을 늘리는 중이었는데, 재원이 없어 30조5000억원의 재정적자(국채발행 등)를 통해 마련했습니다. 지자체엔 돈이 남아돌고, 중앙정부는 돈이 없어서 빚을 내서 지자체에 내려보내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지자체들이 예산을 아낀 탓에 국가의 빚만 늘어난 겁니다.

'예산을 쓰지 않는 것'과 '예산을 아낀 것'은 전혀 다른 의미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세가지 사례를 종합해보면 명확해지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예산 계획을 잘못 짰을 때, 그 잘못 짠 계획으로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을 때, 그것만으로도 우리들이 납부한 세금이 낭비된다는 겁니다. 불용액이 많다는 건 그만큼 계획을 잘못 짰거나 당초 계획한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현행법(국가재정법ㆍ지방재정법 등)이 원칙적으로 정부나 지자체에 그해 예산을 그해 다 쓰라고 정해놓은 것도, 전문가들이 불용액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물론 불용액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재정이 비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불용액에는 예산 절감액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국재정정보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 비중이 12.7%에 불과했습니다. 예산을 절감해 남은 불용액이 전체의 10%를 갓 넘는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반면 예산을 사용하지 않는 데 따른 부정적 효과는 큽니다. 무엇보다 경제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합니다. 우석진 명지대(경제학) 교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난해 12조9000억원 규모의 불용이 발생했는데 이는 세금을 많이 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고, 쓸데없는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면서 "불용으로 정부 지출이 줄면 경제성장률이 1%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정부가 실질적인 소비를 1조원 늘렸을 때 그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8500억원 증가합니다. 지난해 미집행예산 18조원을 제대로 활용했다면 실질 GDP가 15조원가량 늘어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자! 이제 종합해볼까요? 정부가 계획해놓고도 쓰지 않는 예산이 많다는 건 '세금을 아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일부 세금을 아꼈을 수는 있지만 언급했듯 그 비중은 12% 수준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정부가 계획을 잘못 짰거나,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은 겁니다.

일례로 정부부처가 지자체와 예산을 분담해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가 지자체가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자 정부부처 예산은 쓰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해당 지자체와 긴밀하게 협의해야 하는 사안인데도 주먹구구식으로 일처리를 한 셈이죠.

이럴 때 남은 예산으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서 예산이 모자라는 곳에 적절히 분배하면 되는데, 그조차도 제대로 못 해서 최종적으로 불용액이 남는다는 것이니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사이에 우리는 숱한 기회비용을 상실하게 됩니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세수부족 우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내세운 감세정책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한해 지출 계획인 '예산'을 맞추려면 돈을 더 끌어오거나 지출을 줄여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국회 의견을 물어 예산지출을 줄일 생각도(감액 추가경정예산 편성), 국채를 발행해서 예산을 맞출 생각도 없는 듯합니다. 그저 지출을 줄여 어떻게든 예산을 끼워 맞추겠다는 말만 거듭합니다.

그러자 일부에선 정부가 의도적으로 예산의 미집행, 이를테면 '불용'을 종용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예산이 절감될 수도 있지만, 우린 수많은 행정서비스와 GDP가 늘어날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올해 불용액이 많아지면 우린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돈을 아껴 쓰는 정부니까 박수를 쳐주는 게 맞을까요?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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