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 라면 빼고 가격 내린 오뚜기·삼양·팔도의 ‘꼼수 인하’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라면업계의 가격인하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서 교수는 7월 11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라면업계가 인기 제품 중심으로 대대적인 가격인하를 결정했다면 중장기적으로 기업 경영에 더 큰 이익이 됐을 것"이라며 "오히려 이번 계기를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얻고 기업 이미지와 평판을 제고할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진라면·불닭볶음면·팔도비빔면 제외
소비자들은 라면 가격인하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라면 값이 내려간 이후 일명 '맘카페'로 불리는 온라인 카페에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라면 가격이 그대로라 쓰는 돈은 똑같다" "오를 때는 200원, 내릴 때는 50원이니 감흥이 없다" "값을 내린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여전히 비싸다"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7월에도 라면플레이션 지속되나
가격인하율도 미미한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가격을 올릴 때와 비교해 인하율이 턱없이 낮다는 것이다. 지난해 9~11월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라면업체들은 밀가루 등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라면 값을 평균 9~11% 인상했다. 그 영향으로 서민 식품으로 불리는 라면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치솟기 시작하더니 올해 6월(전년 동기 대비) 기준 13.4%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9년 2월(14.3%) 이후 14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정부의 라면 가격인하 요구도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지만, 라면업체들은 이번 가격인하율을 인상 때의 절반 수준인 4~5%대로 결정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6월 28일 성명을 통해 "농심, 삼양식품 등 라면업체의 이번 라면 가격인하율이 지난해 가격인상률의 50% 정도에 그친 상황이라 아쉽다"며 "생색내기 식 가격인하가 아니라,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가격인하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라면업체 4사는 아직까지 가격인하 대상을 확대하거나 인하율을 높일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라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7월에도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조정된 라면 가격은 내달 발표되는 7월 라면 소비자물가상승률에 반영될 예정이지만, '라면플레이션'이 잦아들기에는 라면업체 4사의 가격인하 대상 제품 수나 인하율이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정부 요청에 최대한 협조한 것"
라면업계는 각 사마다 사정은 달라도 모두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정부 요청에 협조한 것이라는 반응이다. 제분사가 소맥분 가격을 5%가량 내린 것 외에 제조원가에 포함되는 나머지 원재료 가격이나 물류비, 인건비, 생산시설 가동비 등은 줄지 않았다는 게 공통적인 설명이다. 농심 관계자는 "소맥분 가격 하락에 따른 라면 가격인하 여력은 사실 80억 원에 불과했는데, 고물가 시대 정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자사가 추가로 120억 원을 더해 200억 원 인하 여력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이를 여러 품목에 적용하면 소비자가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하에 대표 상품인 신라면 가격만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주력 상품을 가격인하 대상에서 제외한 이유에 대해 라면업계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오뚜기 측은 진라면 가격을 2010년부터 2021년까지 동결했기 때문에 이번 가격인하 대상에는 포함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진라면(대형마트 5입 번들 기준 3580원)은 이번에 가격이 인하된 신라면(인하 후 3900원) 등 여타 라면보다 저렴하다"며 "그래서 진라면 대신 스낵면, 참깨라면 등 다른 인기 제품 가격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삼양식품 측은 불닭볶음면 가격이 해외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커 부득이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해명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불닭볶음면은 자사 해외 매출의 80%를 차지하는데 국내 가격과 해외 판매가가 연동돼 있다"며 "국내 가격을 내리면 전체 해외 매출에 타격을 줄 수 있어 가격을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팔도 측은 지난해 실적 부진으로 가격인하 여력이 다른 라면업체에 비해 부족한 가운데 가격인하 대상과 인하율을 최대로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팔도는 타사와 달리 대표 상품 원가율이 떨어져 '팔면 손해인 수준'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지난해 기업 수익성이 악화한 상황이라 지금도 원가율이 낮은 대표 상품은 가격인하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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