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책 타짜'들이 꼽았다… 휴가지에서 읽을 책 22권

구은서/임근호/안시욱 2023. 7. 1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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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여름휴가 책 추천
독서는 가장 간편한 피서
어느 책 속으로 떠나볼까
여름에는 역시 스릴러소설
휴가지에는 가벼운 시집을
평소 도전 못했던 묵직한 인문서
휴가 뒤 일상 위한 자기계발서도
GettyImagesBank.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책은 여름이 단연 제철이다. 앉은 자리에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독서는 세상에서 가장 간편한 피서다. 휴가지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책을 챙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여행업계뿐 아니라 출판계에도 여름은 '성수기'다. 출판사들은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그 해의 기대작을 출간한다.

올 여름휴가에는 어떤 책을 '반려책'으로 삼아볼까. 한국경제신문의 문화예술 전문 플랫폼 '아르떼'에 책 추천 칼럼 '탐나는 책'을 싣고 있는 국내 대표 출판사 편집자 12명에게 여름휴가지 추천도서를 2권씩 부탁했다. 일부 '다득표' 책 포함 총 22권의 '제철' 책을 정리했다.

◇여름엔 스릴러소설이 제격

여름에 어울리는 책으로는 역시 등골 서늘한 스릴러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작년 세계적 권위의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는 이번 책 추천에서 2표를 얻은 2권 중 하나다. 이 책은 판타지·호러 단편소설 10편을 담고 있다. 저주와 복수, 유령 같은 비현실적 소재로 현실 사회의 비이성을 드러내는 일종의 우화 소설이다.

글항아리 출신 독립 편집자인 박은아 씨는 이 책을 추천하며 "장마와 열대야, 천둥 번개와 음산함이 있는 여름의 얼굴은 극단적"이라며 "악천후가 지나고 맑게 갠 하늘이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모르겠는 기분이 들 때는 우중충하게 휘몰아치는 소설집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인플루엔셜의 한국문학 브랜드 래빗홀을 담당하는 최지인 팀장도 이 책을 자신 있게 추천하며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무서운 이야기처럼 저주 인형과 화장실 귀신, 여우 요괴 등 오싹한 재미를 한가득 풀어놓는다"며 "동시에 결코 가볍지 않은 현실의 부조리와 고통에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소설집 <영원히 알거나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도 무더위를 씻어줄 만한 책이다. 강화길 등 젊은 소설가 8명이 도시괴담을 테마로 쓴 소설을 묶었다.

백다흠 은행나무 문예지 '악스트' 편집장은 "이미 세상은 괴담에 가깝게 변해버려서 그 괴담들을 느끼지 못하는 중"이라며 "여름휴가란 그간 일하느라 놓쳐버린 괴담을 읽고 '그래, 세상은 무서운 거야. 그런 세상을 이렇게 열심히 살아오다니' 하며 내가 대견스러운 걸 깨닫는 시간"이라고 했다.

"짧은 소설을 모아둔 소설집은 휴가지에서 읽기에 안성맞춤인 형식"이라는 게 박선우 마음산책 편집2팀장의 설명이다. 그는 김혜진의 소설집 <완벽한 케이크의 맛>을 추천하며 "스스로를 깊이 들어가며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이야기들"이라고 소개했다.

백 편집장이 함께 추천한 장편소설 <트러스트>는 스릴러를 표방하지 않았지만 서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미국 퓰리처상 소설부문을 받은 이 작품은 20세기 초반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돈의 속성을 탐구한다.

백 편집장은 "겉모습은 미국 대공황 전의 '돈'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 내부는 어느 부부의 '트러스트(신뢰)'의 근본적인 사실 확인을 다루고 있다"며 "돈의 성질은 절대로 불변이지만, 그 성질을 지키기 위해 위악과 허상을 이용하는지를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시집

작고 가벼운 시집은 휴가지 가방에 챙기기에 부담이 없다. 그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황인찬 시인이 최근 출간한 신간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는 편집자 2명의 추천 책에 공통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선우 팀장은 이 시집을 추천하며 "낯선 풍광 속에서 읽은 시 한 편은 당시의 기억과 함께 오래 마음속에 담긴다"며 "산산한 아름다움이 깃든 황인찬의 시는 그 어떤 여름 이미지와도 잘 어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휘 난다 편집자는 "시간여행은 누구나 꿈꾸지만 누구도 끝내 갈 수 없는 여행"이라며 "어떤 시는 ‘그곳’이 아닌 어딘가, ‘그때’가 아닌 언젠가, 다만 그때 그곳의 ‘마음’으로 나를 데려다놓는다"고 이 시집을 추천한 이유를 밝혔다.

이재현 문학동네 편집자는 백은선의 시집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을 추천하며 "'아무 대가 없이 사랑해주면 안 돼요?' 같은, 시집 속 솔직하고 정직한 표현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며 "땀이 눈물처럼 맺히는 여름, 몸도 마음도 푹 절어버려, 시원하게 직진하는 시가 필요하다면 백은선의 시가 즉효"라고 말했다.

추천 책 2권을 모두 시집으로 꼽은 김동휘 편집자가 택한 또 하나의 시집은 안희연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다. 김 편집자는 추천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마구 자라나는 식물들과 찌는 더위, 끈적한 습도, 어쩌면 여름이 품은 ‘적의’를 견디기 위해 우리는 바다로 숲으로 떠난다. 이 난폭한 더위의 한가운데로, 태양의 한복판으로 기꺼이 뛰어들었던 여름을 우리는 ‘휴가’의 계절로 기억할 것이다. 슬픔의 언덕으로 뚜벅뚜벅 올라 잎처럼 가지처럼 실컷 흔들린 후에, 비로소 “이제 나는 그것이 조금도 슬프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어떤 시인처럼."

◇묵직한 인문서 VS 가벼운 만화책

회사에서 날아오는 각종 메신저와 메일 알람을 꺼두듯 복잡한 생각은 차단해버리고 싶다면 만화책만 한 게 없다.

이 편집자가 시집과 함께 추천한 <성질 나쁜 고양이>는 일본 대표 만화가 야마다 무라사키가 여성으로서 자신이 느꼈던 진솔한 감정들을 고양이의 입을 빌려 들려주는 만화책이다. 이 편집자는 "푹푹 찌는 여름에는 역시 수박과 선풍기, 햇빛 그리고 고양이 만화"라며 "하지만 시를 읽듯 고양이들의 심오한 내면의 풍경들을 찬찬히 건너가다보면 깨닫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읽고 익히고 있는 자신일 것"이라고 했다.

정기현 민음사 편집자는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책 <산책>을 추천하며 "휴가에 책을 가져갔다가 한 번도 펼치지 않고 그대로 돌아온 일이 벌써 여러 번이지만 만화라면 다를 것"이라며 "매일 걷던 동네에서 새로운 장면을 목격하는 <산책>의 산책자를 통해서라면 여행길 역시 보다 자세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휴가는 평소 미처 도전하지 못했던 묵직한 인문서에 등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김현주 문학과지성사 편집2부 편집장은 이번 여름휴가에 비자이 프라샤드의 <갈색의 세계사>를 읽기를 권했다. 제3세계의 눈으로 본 20세기 현대사를 다룬 508쪽짜리 책이다.

그는 "‘제3세계’의 정치사라니,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냐고 물을지도 모른다"면서도 "그러나 희망과 열망으로 가득했던 제3세계 프로젝트의 흥망성쇠를 살펴보고 그 기억을 발굴해내는 일은 그 어떤 대안도 떠올리기 어려운 오늘날 새로운 정치 기획을 만들어내는 데 꼭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박은아 편집자가 추천한 페르난다 멜초르의 소설 <태풍의 계절>은 픽션이지만 현실을 고발하는 사회과학서적에 가깝다. 멕시코의 실제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폭력과 빈곤의 문제를 고발한다. 

박 편집자는 "을유문화사 암실문고로 소개된 한국어판 책 소개에 편집자가 '텍스트의 압력'이라는 말을 썼는데, 읽다 보면 정말 문득 그것에 짓눌릴 때가 있다"며 "빈곤과 폭력의 도시에서 소명될 수 없는 각자의 진심과 사정이 분노와 재앙이 되어 소용돌이를 일으킨다"고 소개했다.

정소연 세종서적 편집주간은 휴버트 드레이퍼스 등이 함께 쓴 <모든 것은 빛난다>을 읽어보기를 권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시작해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등 빛나는 서양고전을 다시 읽어가며 서양 철학과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책이다.

◇키워드는 #여름 #여행 #휴식

여름과 여행, 휴식을 키워드로 삼은 책도 눈에 띈다. 김현주 편집장은 서양사학자장문석의 <토리노 멜랑콜리>를 추천하며 "자동차 기업 피아트의 도시, 반파시즘의 도시 토리노가 어떻게 멜랑콜리에 휩싸인 도시가 됐는지를 유려한 필치로 서술하는 책"이라며 "한 도시의 굴곡진 20세기를 담은 이 책을 일종의 도시 가이드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기현 편집자는 소설가 박솔뫼·연구자 안은별·소설가 이상우가 함께 쓴 <바로 손을 흔드는 대신>을 추천 책 중 하나로 꼽았다. 세 작가이자 세 친구가 각각 서울, 도쿄, 베를린에서 같은 기간 동안 각자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정 편집자는 "여행지에서 읽기 좋은 책으로 이 책을 꼽을 수 있는 이유는 수도 없다"며 "순서에 관계 없이 어디부터 펼쳐도 읽는 데 무리가 없다는 점, 읽는 행위만으로도 이상하고 든든한 친밀감으로 마음이 채워진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교차하는 필자들의 글들이 여행 그 자체를 닮아 있다는 점 등이 그 이유"라고 했다.

책을 통해 비현실적 공간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볼 수도 있다. 최지인 팀장이 추천한 이소영의 소설 <알래스카 한의원>가 그런 경우다. 주인공 이지는 어느 날 가벼운 교통사고를 겪은 뒤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을 느끼자 치료를 위해 알래스카의 작은 한의원을 찾아간다. 최 팀장은 "이게 무슨 이야기지, 라고 의문을 갖기도 전에 매력적인 인물들에 빠져든다"며 "모든 단서들이 회수되며 그녀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묵직한 감동이 함께 찾아오는 몰입도 높은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어떤 책들은 일상을 여행으로 만든다. 강영특 김영사 편집자는 새를 관찰하는 활동, '탐조'를 즐기는 이들을 위한 책을 추천했다. 팀 버케드가 쓴 <새의 감각>이다. 강 편집자는 "영국의 동물학자인 저자가 펼쳐보이는 새들의 신기한 능력, 살아가는 모양을 보면서 그저 감탄하게 된다"며 "글도 정말 재밌다"고 했다.

혹은 '사람 여행'을 떠나볼 수도 있겠다. 서효인 안온북스 대표는 정성은의 대화 산문집 <궁금한 건 당신>을 추천했다. 프리랜서 영상 제작자이자 스탠드업 코미디언, 그리고 지금은 신인 작가가 된 정성은은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엉뚱한 질문을 던져 특별한 대화를 만들어낸다. 서 대표는 "찌는 듯한 무더위에 지칠 때쯤, 타인의 범상치 않은 인생기를 듣다 보면, 내 인생의 특별함마저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휴가의 세계에 규칙이 있다면 제1번 규칙은 '휴식'일 것이다. 

강 편집자가 추천한 개빈 프레터피니의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는 '멍 때리기'를 위한 준비운동이다. 각양각색 구름을 다룬 이 책의 부제는 '신기하고 매혹적인 구름의 세계'. 강 편집자는 "시름을 잊고 시간을 보내기엔 구름 보기만 한 게 없다"며 "이름도 고상한 '구름감상협회'를 만든 저자의 진한 애정이 느껴지는 사랑스런 책"이라고 추천했다.

송승언 시인이 쓴 <덕후 일기>는 휴식과 열정 사이를 오간다. 이 책은 시인이 쓴 시간을 죽이는 방법이다. '몬스터 헌터'에서 '멜보르 아이들' 같은 온갖 게임에서부터 건담 시리즈를 위시한 애니메이션, 거기에 '의천도룡기'와 '나 홀로 집에'에 이르기까지. 그가 시간을 죽이는 방법은 다채롭다. 이 책을 추천한 서 대표는 "무용한 것을 위한 노력이 내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 같다"는 책의 문장을 인용하며 "그건 여름을 지내는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휴가 이후를 준비해볼까

평소 생활습관이나 일하는 태도를 돌아볼 수 있는 책들도 추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현대인의 집중력 부족 문제를 실리콘밸리 등 각계각층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파헤친 책이다.

최윤경 어크로스 편집장은 "상반기 내내 탈탈 털리면서 일한 직장인에게, 휴가는 빼앗긴 집중력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라며 "하지만 ‘충전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며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으면, 당신의 집중력은 영영 가출해버릴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이 바람직한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의 건강 수업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도 함께 추천했다. 최 편집장은 "'올해는 건강에 신경 좀 써야지'라던 연초의 다짐이 무너진 지 오래일 것"이라며 "휴가를 한껏 방탕하게 즐기고, 복귀 후에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으로 몸과 마음의 근육을 단련해 하반기를 버틸 힘을 만들어보시라"고 권했다.

일터에 복귀하면 그간 미뤄뒀던 업무 회의, 발표, 보고 자리가 카드 고지서처럼 날라들지 모른다. 휴가모드에 들어갔던 뇌를 다시 깨워 적확한 정보를 출력해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말 잘하는 법'이다.

정소연 편집주간은 정연주의 <말을 잘한다는 것>을 추천하며 "사실 누구에게나 공적인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며 "책은 두려움 없애기부터 말실수 피하는 법까지 담은 말하기의 정석"이라고 설명했다.

구은서/임근호/안시욱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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