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깨지기 쉬운 그러나 진화하는 카르텔!
동부의 미국 사람들은 뉴 멕시코가 50개 주의 하나인 줄도 모른다는 것을 꼬집는 조크(Joke)이다. 텍사스,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그리고 뉴 멕시코 등은 원래 멕시코 땅이었는데, 19세기 중반 미국이 전쟁을 통해 빼앗거나 헐값에 사들인 땅이다. 사실, 오늘의 패권국가 미국은 멕시코 옆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면도 없지 않다.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이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골칫거리도 있다. 최대 마약 소비 시장 미국으로의 마약 유입은 대부분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 군대를 보내 그들 카르텔을 쳐부수겠다는 대담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금년 초,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삼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멕시코 정부는 대대적 군사작전을 펴 전설적 마약 왕 ‘엘 차포’의 아들을 체포했다. 중국에서 나온 재료를 가공하여 만든 합성마약 펜타닐(Fentanyl)의 과다 복용으로 숨진 미국인이 2021년에만 7만 명을 넘어 교통 사고나 코로나로 죽은 사람보다도 많고, 그 책임이 전적으로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있다는 미국의 압력이 그 배경이다.
중남미의 마약 왕, 정확하게 말한다면, 미국으로의 마약 밀반출 루트를 가진 마약 카르텔 우두머리의 일생에 관한 ‘미드’를 최근에 흥미롭게 봤다. 드라마는 콜롬비아의 파블로 에스코바르 그리고 멕시코의 엘 차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둘은 분할된 영역을 가진 공급자들의 연합체인 카르텔의 리더 즉, 맹주(盟主)였다. 카르텔의 맹주가 되려면 두툼한 배짱과 인정사정 보지 않고 처단하는 잔인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자격 요건은 카르텔 참여자에게 자신을 맹주로 모시고 충성을 다하면 이익을 보장해주는 ‘반대급부’를 확실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유사시 정부의 방패와 병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권력자와의 “유착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이다. 카르텔을 존속시키는 힘은 어디까지나 상호이익의 존재이다. 이익이 사라지거나 더 큰 이익의 제안이 오는 경우 카르텔은 여지없이 깨진다. 그래서 카르텔의 속성은 깨진다는 것이다.
카르텔의 어원은 ‘문서’라는 뜻의 라틴어 ‘Carta’에서 유래한다. 영어로는 ‘Card’나 ‘Chart’이고, 역사적으로는 1215년 잉글랜드 국왕의 무제한적 권한을 제한하여 법치주의의 초석이 된 문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大憲章)가 우리가 잘 아는 용례이다. 중세에 카르텔은 교전국 간의 휴전협정서를 의미하기도 했다. 현재 경제학적 정의는 ‘동종 또는 유사 업종에 종사하며 경쟁하는 기업들이 경쟁을 피하거나 완화하여 시장지배를 강화하고 이윤을 최대화할 목적으로 행한 생산, 가격, 판로 등에 관한 명시적 또는 암묵적 담합과 그 담합 집단’이다.
인간이 상업을 영위할 때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욕망은 누구나 가진다.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 상인들은 양털에 대한 가격 카르텔을 형성했고, 고대 인도 및 로마에서도 가격인상 카르텔을 규제하는 법률이 있었다. 그런 근본적 욕망은 중세 길드(Guild)에서 제도화 되었다. 당시 길드의 규칙을 현재 각국의 독점금지법이나 공정거래법에 따라 해석한다면 ‘신규 진입 제한 카르텔’, ‘가격 카르텔’, 또는 ‘거래 조건 카르텔’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에도 과거부터 현재까지 카르텔은 항상 있었다. 조선 시대 수도 한양에는 ‘시전(市廛)’이라고 관에서 허가 받은 상점들이 있었다. 시전 상인들은 길드같이 ‘도중(都中)’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다른 난전(亂廛, 잡상인)들의 한양 시장 진입을 막아 독점적 지위를 가졌으니 그것이 역사 책에 나오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이다. 여기서 ‘전(廛)’ 자(字)는 지금은 잘 안 쓰이지만 ‘가게’ 라는 뜻이다. 1970년대까지도 동네 수퍼나 구멍가게는 ‘전방(廛房)’이라 불렸음을 베이비부머들은 향수(鄕愁)처럼 기억할 것이다.
1960년대 초 한국, 건설 및 음식에 필수품인 세가지 가루 즉, 시멘트, 밀가루, 설탕의 ‘삼분(三粉) 폭리사건’이 발생해 전국민을 괴롭혔다. 소수의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상태에서 그들이 담합하여 가격을 대폭 올리고 폭리를 취한 것이다. 그로부터 강산이 두 번 바뀐 1981년에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지각 시행되었다. 미국은 1890년 셔먼 법(Sherman Act)이, 일본은 1947년 독점금지법이 시행되었는데, ‘삼분 폭리사건’을 겪은 후에도 바로 공정거래법이 시행되지 않은 것은 국민 정서와 관련이 있다고 어떤 학자는 분석한다. 담합과 카르텔에 관대했던 우리의 문화적 배경은 ‘경쟁은 분열이고 악이며, 공동체의 단결은 선’이라는 전통적 정서가 뿌리 깊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업자끼리 단결해서 가격 좀 올리는 게 무슨 잘못이냐”라는 항의가 공정거래법 시행 초기에 빈번했다. 또 대기업 중심의 경제개발 단계에서 카르텔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는 인식도 공정거래법 지각 시행의 한 이유였다. 혁신(Innovation)의 주창자 슘페터도 인정했듯이, 카르텔을 통한 기업의 초과이윤은 불확실한 환경에서의 기술 개발과 대규모 투자를 촉진한다는 카르텔 긍정론을 당시 위정자들은 어느 정도 믿었을 것이다.
요즘 한국에 카르텔 풍년이 왔다. “구조화된 이권 카르텔, 사교육 카르텔, 웹하드 카르텔, 연구비 카르텔” 등 수 많은 ‘듣보잡 카르텔’이 뉴스에서 쏟아져 나온다. 기득권 카르텔은 타도 대상이며 그를 위해서는 감사원 같은 국가 권력의 확대가 필요하여 감사 공무원 정원도 늘린다고 한다. 그것은 사회 정책적 이슈이니 여기서는 논외이고, 독점 및 카르텔 관련, 경제인이 알아야 할 두 가지 이슈가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 기업의 빅딜과 국제사회의 승인이다. 독과점 지위를 가진 우리 기업 간의 빅딜인 인수합병에도 미국, EU 등 주요국 반독점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현대의 국제경제에서 상식이다. 현대중공업의 대우해양조선 인수가 EU의 반대로 무산된 것이 작년 초의 일이다. 양사의 결합은 시장 지배력을 과대하게 증가시켜 공정한 경쟁이 침해된다는 것이 EU의 반대 이유였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또한 주력 시장인 미국과 EU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있다. 비록 그들의 사전 승인이 없더라도 한국 기업 간의 인수합병은 법적으로는 유효하다. 그러나 인수합병 후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의 수주는 어렵게 되니 진퇴양난이다. 독점 및 카르텔은 국내를 넘어 국제적 이슈이다. 현재 가장 강력한 국제적 가격 카르텔은 OPEC(석유수출국기구)이다.
둘째, 현실이 된 인공지능(AI) 시대의 피할 수 없는 걱정거리는 ‘디지털 카르텔’이다. 인공지능이 작곡하고 글을 쓰며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창작 활동까지 버젓이 침범하는 현 시점에서 알고리즘에 의한 온라인 상의 가격담합은 이미 소비자들 모르게 진행되고 있다. 항공티켓이나 호텔을 예약하려고 플랫폼에서 가격을 비교할 때, 그 가격들은 경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미 판매자가 알고리즘을 통해 이윤을 최대화하게끔 세팅한 눈가림일 수도 있다.
공급자가 소수인 시장에서 누가 가격을 올리면 다른 공급자도 슬그머니 따라 올린다. 이런 행태가 관습적으로 반복 되었다면, 비록 그 공급자들 간에 명시적 담합은 없을지라도 ‘묵시적 담합(Tacit Collusion)’이라고 추정되어 가격인상 카르텔의 한 형태로 본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플랫폼에서 이루어지는 알고리즘에 의한 묵시적 담함도 카르텔의 한 형태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우버, 아마존, 페이스북 등 대형 플랫폼 기업의 묵시적 알고리즘 담합과 독점에 대해서 이미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이슈를 제기했다.
전자 상거래에 관한 한 선진국인 우리나라도 이런 디지털 카르텔에 무관심할 수 없다. 독점 및 카르텔 담당 기관은 관련 데이터를 입수, 분석하여 축적하고, 예방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이다. 공정거래법의 늦장 시행처럼 디지털 카르텔 및 대형 플랫폼의 독과점 행태에 대한 규제에 다시 지각해서는 안된다.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본능적으로 경쟁을 피하려 한다. 그러나 알아야 할 점은 경쟁이 없으면 창의성도 없어지고, 그러면 곧 쇠망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카르텔은 그 속성대로 깨져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와 당국은 디지털 카르텔 같은 그들의 진화를 빨리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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