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연기한 나… 출연료는 누구 몫?

이정우 기자 2023. 7. 1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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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배우조합 파업 계기로 본 ‘AI 초상·저작권’ 논란
드라마 ‘블랙미러-존은 끔찍해’
날 닮은 AI가 무슨 행동 해도
법적 제지 불가한 현실 그려
“대체 출연은 실제적인 위협”
美배우조합 파업 이유 오버랩
故김성재 디지털로 되살렸지만
‘AI 초상권’ 국내선 논의 미흡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존은 끔찍해’ 캡처

존(애니 머피)은 오전에 회사 직원을 해고하고, 전 남자친구와 만나 키스를 나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동거 중인 애인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스트림베리’를 켠다. 그런데 거기에서 자신의 하루를 악의적으로 재현한 ‘존은 끔찍해’란 드라마가 나오고, 그 드라마로 그녀의 삶은 엉망이 된다.

존은 드라마에서 자신의 역을 맡은 배우 샐마 헤이엑(샐마 헤이엑 본인)을 찾아가서 따지지만, 놀랍게도 현실의 헤이엑은 이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다. 드라마에 출연한 건 헤이엑의 얼굴과 체형, 목소리를 입힌 인공지능(AI). 존은 현실에서 자신을 망쳐 드라마 속 헤이엑의 모습을 망가뜨리고, 헤이엑은 드라마를 스트리밍한 OTT 플랫폼 스트림베리에 따진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모든 권리를 스트림베리에 위임한 상태로 자신을 닮은 AI가 드라마에서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법적으로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악몽 같은 미래를 다루는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미러’의 새 시즌 에피소드 1 ‘존은 끔찍해’의 내용이다. 그런데 존과 헤이엑이 겪은 사건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곧 닥칠 현재일지 모른다. 존은 일반 대중, 헤이엑은 배우, 그리고 스트림베리는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과 다를 바 없다. AI 기술의 발달로 나이 든 배우는 젊어지고 죽은 가수의 목소리가 되살아나는 것이 ‘현재’가 된 시대, 곧 벌어질 새로운 유형의 권리 충돌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 할리우드 배우와 작가 양대 노동조합이 63년 만에 동시 파업을 결의한 큰 이유 중 하나는 인공지능(AI) 배우의 보상 문제다. AFP 연합뉴스

실제로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AI가 자신들을 대체해 출연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이미지가 훼손될 가능성에 대해 “실제적이고 즉각적인 위협”이라며 파업에 나섰다. 지난 13일(현지시간) 파업을 결의한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이하 배우조합)의 4가지 협상 요구안 중 AI와 관련한 내용은 OTT와 AI 기술 발전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권리장전’이 필요함을 드러낸다.

배우조합은 우선 영상 속 AI가 출연도 하지 않은 실제 배우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등 오용 가능성에 대해 보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AI를 사용할 때마다 해당 배우가 승낙해야 한다는 동의 권한이 거론된다. 두 번째는 배우를 재현한 AI가 출연할 경우 합리적인 출연료를 지급하라는 것. 아울러 배우의 모습과 목소리, 움직임 등을 토대로 AI를 프로그래밍할 경우에도 정당한 보상 방안이 확립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넷플릭스·워너브러더스 등 대기업 제작사 스튜디오 측은 별다른 특약이 없을 경우 배우의 모습을 스캔해 하루치 급여만 제공하면, 그 이후엔 어떤 형태로든 보상 없이 AI를 사용할 수 있다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은 끔찍해’처럼 극단적 사례는 아니지만, AI로 배우의 연기를 보완하는 경우는 이미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를 젊은 시절로 되돌리는 디에이징 기술이 대표적이다. 현재 상영 중인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에서 80세의 해리슨 포드는 약 25분간 30대로 회춘한다. 특수효과 기업 ‘ILM’이 AI 소프트웨어 ‘페이스 파인더’를 통해 포드의 젊은 시절 얼굴을 구현해 낸 덕분이다. AI로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디지털 불멸’도 현재진행형이다.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는 AI로 죽은 존 레넌을 되살려 앨범을 제작한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SBS가 김광석을 AI로 되살려 노래를 선보인 바 있다.

TV조선 ‘아바드림’에 출연한 AI 김성재.

최근 TV조선은 듀스 김성재와 김자옥 등을 되살렸고, “전국∼노래자랑”으로 친숙한 송해의 목소리가 광고로 전파를 타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출연료는 누구에게 귀속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AI가 쏘아 올린 초상권 문제는 아직 국내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상태다.

김시열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분쟁연구팀장은 통화에서 “법률상 망자(죽은 사람)는 권리 주체가 될 수 없어 그 사람의 출연료란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며 “망자의 초상권을 사용하는 데 대해 유족에게 동의를 구하고 일정 비용을 지급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 권리가 일괄적으로 확립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살아있는 사람을 AI로 활용한 경우엔 처음 동의를 구할 때 비용이 지급되는 게 일반적인데, 그게 출연료인지, 보상비인지 등 명목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것 같다”며 “현재로선 계약마다 형태가 다를 수밖에 없다. 앞으로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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