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 노후 대책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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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타인의 눈길에서 지옥을 경험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당 재산이 제일 많을 때가 50대인데 50대 가구 총자산이 6억 4,200만원, 부채가 1억 760만원 정도다. 부채를 빼면 5억 3,400만원이 순자산인 셈이다. 50대 후반에 재산이 5억 3,400만원 정도 있으면 그럭저럭 먹고살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문제는 5억 3,400만원 중에서 집값이 4억 9,500만원이라는 점이다. 금융자산은 3,900만원이다. 3,900만원으로 30~40년을 어떻게 살 수 있는가? 결국 집을 팔아 살아가야 하는데, 10~20년 후에 집값이 내 노후를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우리나라는 가계 자산의 78%가 부동산이고 22%가 금융자산이다. 미국은 반대로 34%가 부동산이고 금융자산이 66%다. 우리도 50대가 되면 부동산과 금융자산이 반반 정도 되도록 가계 자산을 구조 조정해야 한다.
부동산은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자산이 아니라고 보는가?
부동산이 오르면 상관없겠지만 일본과 같은 부동산 장기 하락 현상이 우리나라에도 나타날까 걱정된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내 친구가 일본 도쿄 근처의 약 92.5㎡(28평) 아파트에 살고 있다. 1984년에 1억 2,000만원에 샀다. 일본의 집값이 제일 비쌀 때인 1991년에는 그 아파트가 3억 6,000만원까지 올랐다. 엊그저께 전화해 물어보니 3,000만~4,00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10분의 1로 떨어진 셈이다. 팔아봤자 1년 생활비가 안 되는 수준이다. 일본에 빈집이 1,000만 채쯤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3년 전에 151만 채가 비어 있다고 하더라. 대도시 한복판에도 빈집이 생긴다. 신도시가 만들어지면 구도심에 빈집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퇴직 시점의 가계 대출 규모가 다르다. 우리나라와 일본 모두 40대 미만 나이에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는 점은 비슷하다. 하지만 일본은 퇴직 시 남은 대출금이 평균 4%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 집값이 하락해도 당장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퇴직 시점에 부동산 대출 잔금이 50%에 달한다. 일본과 같은 집값 하락 현상이 우리나라에 나타나면 하우스 푸어가 속출할 것이다.
부부가 은퇴 이후 시골로 내려가 농사지으면 주거 비용이 적게 들지 않나?
은퇴 후 전원생활은 부부가 의견 일치를 봐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남편들은 텃밭이 있는 시골로 가고 싶어 하지만 아내들은 대부분 대도시의 문화시설이 있는 곳에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남편만 시골에 가서 사는 사람도 많다. 부부가 의견이 일치했다고 하더라도 전원생활이 맞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안 맞으면 살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후기 노년기에 들어가면 돌봄이 필요해지니 병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노년층 사이에서는 병원과 문화시설이 가까운 시내의 약 59.5~66㎡(18~20평)짜리 아파트가 인기다. 재산을 처분하고 시골로 내려간 사람은 몸이 아파 도시로 돌아오려고 해도 돌아올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우먼센스>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부의 행복한 은퇴 생활을 위해서는 남의 눈을 의식하면 안 된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앞서 이야기한 택시 기사가 마지막에 서글픈 이야기를 하더라. 택시 운전을 하는 그를 주변에서는 사장까지 한 사람이 참 대단하다고 칭송하는데, 정작 아내와 딸은 동네 사람들 보기가 창피하다고 한단다. 그 택시 기사는 세상 헛살았다고 한탄했다. “인간은 타인의 눈길에서 지옥을 경험한다”는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격언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읽은 한 퇴직자의 수기를 들려주고 싶다. 고위 공무원이었던 그는 은퇴 후 재취업이 쉽지 않았는데 노인 돌봄 센터에서 건강보험료 등 100만원을 받는 일자리를 어렵게 구했다. 그는 노모가 생각나 돈에 구애받지 않고 열심히 노인들을 보살폈는데 소문이 나며 주변 동네에서 노인들이 몰려들어 동네 스타가 됐단다. 또 일을 하니 은퇴 후 집에서 놀던 그에게 무섭게 대하던 아내가 천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노인은 자신이 남에게 유용한 존재라고 느끼는 노인보다 일찍 숨질 가능성이 3배 가까이 높게 나왔다는 조사도 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부유한 나라에서, 돈도 있는 나라에서 고통과 분노의 정도가 더 심한 것은 물질적 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내가 남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이나 내가 사회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 이상 갖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이다.”
기획 : 하은정 기자 | 취재 : 이승용(시사저널e 경제부 기자) | 사진 : 김동환, 게티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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