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25% 순자산 비중 ‘전국 최고’…자산 격차로 시름하는 제주
4년 전 제주에 갔을 때다. 공항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길은 뜻밖에 차가 많이 막혔다. 숙소에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다. 서귀포에 사는 분한테 이 얘기를 전하자 ‘제주의 신삼다’를 아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하자, 제주의 ‘삼다’(돌과 바람, 여자)가 돈과 차와 중국인으로 바뀌었단다. 그날 화제는 차에서 출발해 제주의 부동산으로 번졌다. 하루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의 땅값도 크게 올랐다고 했다. 뭍에서 또 멀리 중국에서 밀려들어 온 돈은 제주의 땅값을 띄웠다.
그 많다는 돈이 얼마나 골고루 뿌려졌는지 의문을 품고서 지난 7일 제주를 다시 찾았다. 섬은 종일 흐렸다. 김포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짓궂은 날씨에 한참이나 선회하다 활주로를 코앞에 두고서 회항했다. 다시 뜬 비행기는 예정보다 4시간 늦게 제주에 착륙했다.
공항에서 차로 1시간 달려 서귀포 ㅂ빌라 단지 앞에 도착했다. 차단기가 차량의 출입을 막았다. 경비원이 나와 차를 돌려세우며 ‘방문시 예약 필수’라고 적힌 전단을 건넸다. 전화로 분양가를 물어보니 60평대는 19억 원, 90평대는 29억 원에 분양 중이었다. 36세대 빌라 단지는 서귀포칼호텔에서 지척으로 바다를 내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위치다. 유튜브와 인터넷 블로그에 뜨는 빌라 분양 광고에 ‘최고급’, ‘럭셔리’, ‘초호화’란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2월 준공 뒤 미분양 상태지만 분양가를 내릴 계획은 없다고 했다. 빌라 분양을 알리는 한 블로그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고급 빌라’라면서 “애초 여기는 돈이 남아도는 사람들을 위한 단지”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불과 1.5㎞ 떨어진 동흥 주공3단지 아파트 앞. 노인 둘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놀이터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영구 임대 아파트에 세 들어 사는 이들은 집값에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한 분은 “이 형편에 자녀들에게 딱히 물려줄 게 뭐 있겠냐”는 말을 내뱉곤 입을 닫았다.
바로 맞은편 1994년 지어진 주공4단지 아파트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홍성철(59)씨는 지금 사는 58.8㎡(18평) 아파트를 25년 전 4500만원에 샀다고 했다. 나름 많이 오른 아파트값은 2억 원 언저리에 걸쳐 있다. 홍씨는 기간제 노동자로 일하면서 4대 보험료를 떼고 다달이 230만원을 번다. 그는 이 아파트와 차 한 대가 전 재산이라고 했다. 늦깎이 결혼으로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건 매달 조금씩 붓고 있는 적금밖에 없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에 아무나 와서 주차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며 불평하던 그는 넋두리를 늘어놨다. “제주에 일자리가 없다. 건설 경기가 죽어 공사판에 노가다(건설 일용직) 자리도 없다. 제주에 뭐가 있냐? 감귤밖에 없는데 인건비는 오르고 농자재값은 뛰어 이제 돈이 안 된다. 지금은 또 감귤철도 아니고….”
비정규직이지만 정년 걱정 없이 더 일할 수 있다는 그는 비교적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있다는 여유로움을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아파트가 동흥동 중심부와 붙어 있어 지금은 주춤하고 있지만 나중에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였다. 부동산 얘기를 하다가 뭍을 향한 원망도 드러냈다. “제주 집 부자와 땅 부자는 모두 육지 사람 아니냐. 토박이들은 대부분 진작에 땅을 다 팔아먹었다.” 부동산으로 돈방석에 앉은 이들은 결국 뭍 사람이라는 게 제주 토박이인 그의 생각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동흥동 주공아파트와 아무나 들어설 수 없는 ㅂ빌라의 가격은 10~15배 차이 난다.
지난달 도의회는 ‘제주특별자치도 금융포용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조례안을 제출한 도지사는 제안 이유를 “자산 격차 확대”라고 밝혔다.
이는 제주의 자산 격차가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음을 말해준다. 제주의 전체 가계 순자산(자산에서 부채 제외)에서 상위 25%가 차지하는 비중이 74.4%(이하 2021년 3월 기준)로 전국 16개 광역시도(이하 세종시 제외) 가운데 가장 높다. 이는 한국은행 제주본부 조윤구 과장 등이 지난해 7월 발표한 ‘제주지역 가계순자산 규모 및 자산 격차 현황’ 보고서(이하 자산 격차 현황 보고서)에 담은 내용으로 가계금융복지조사 등을 바탕으로 자체 추정한 값이다.
상위 10% 보유자산 대비 하위 40% 보유자산 배율을 뜻하는 ‘팔마비율’도 14.4배다. 이는 전국 평균(11.2배)을 크게 웃도는 수치로 서울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상위 25% 가계의 평균 순자산은 14억1128만원이지만 하위 25%는 1512만원에 불과하다. 93배 차이다. 가계 순자산을 기준으로 한 지니계수 또한 0.63(0에서 1 사이 표시, 값이 클수록 불평등)으로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서귀포시 동흥 주공4단지 아파트에서 만난 홍씨는 도시 4인 가구 기준 높지 않은 소득이지만 순자산 기준으로 제주도에서 하위 25% 훨씬 위에 있다. 대출이 없는 홍씨는 순자산액이 아파트값 이상이다. 맞은편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만난 노인 등 그보다 재산이 적은 제주도민이 많다.
제주에 뿌려진 돈이 부동산에 쏠리면서 전례 없는 수준으로 자산 불평등을 키우고 있다. 특히 2010년대 중반 부동산값이 크게 뛰었다. 그 결과 제주의 평균 가계 순자산은 4억9153만원으로 서울 다음으로 높다. 2015년 3월 대비 2021년 3월 순자산 증가율은 87.2%로 광역시도 가운데 가장 높다.
순자산은 어느 곳보다 빨리 늘었지만 골고루 늘지는 않았다. 자산 격차 현황 보고서는 그 이유를 “제주 지역 가계의 실물자산 비중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아파트의 가격 차별화가 꾸준히 진행된 데 기인한다”고 밝혔다.
제주는 가계 자산 가운데 부동산 비중이 85% 안팎으로 어느 광역시도보다 크다. 부동산 부자도 상대적으로 많다. 땅과 집 부자에 매기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규모도 큰 편이다. 14일 국세통계포털을 보면 지난해 기준 종부세(결정세액 기준) 규모가 충북, 울산, 전북, 광주보다 크고 강원, 충남과 거의 비슷하다. 고가와 저가 아파트의 가격 양극화 현상도 심해졌다. 아파트매매 가격 기준 하위 20% 대비 상위 20% 비중(5분위 배율)이 지난 몇 년 새 더 커졌다. 그 결과 자산 형태별 지니계수는 금융자산에서 줄어든 것과 달리 실물자산에서는 커졌다.
자산 세습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제주에서 상속세 납부 대상자 312명의 총상속재산가액은 5024억원에 이른다. 이는 68만 명이 안 되는 제주보다 인구가 훨씬 많고 지역경제 규모도 큰 광주, 울산, 전남, 전북, 충북보다 더 큰 액수다. 특히 제주는 상속 재산 중 부동산(토지와 건물) 비중이 78%로 전국(평균 37%)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증여세 또한 인구와 경제 규모에 견줘 많다. 지난해 제주에서 1118억원(결정세액 기준)의 증여세가 걷혀 강원, 경남, 경북, 전남, 충남, 충북, 울산, 대전, 광주를 앞질렀다.
이러한 현상은 제주에서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이 대규모로 세습되면서 나타나고 있다. 부의 지위가 빠르게 대물림되면서 상속 및 증여세 증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또한 청년 세대 내 불평등 씨앗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주 지역 30대 이하 청년 세대의 상위 25%와 하위 25% 간 자산 격차는 64배로 전국 평균(30.8배)의 2배 이상이다. 코로나19 팬더믹을 거치면서 청년세대 순자산 지니계수도 상승(불평등 심화)하고 있다. 부동산값 상승은 거주 비용을 키워 청년의 탈출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는 지난달 ‘제주지역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제주지역 인구이동은 2010년 순유입으로 전환한 뒤 지역 경기둔화, 부동산가격 상승 등 정주 여건 악화 등으로 2018년 이후 순유입이 둔화하고 있다”며 “특히 청년 인구는 전입 감소와 전출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지난해 순유출로 전환되었다”고 밝혔다. 청년인구 순유출은 9년 만에 나타난 변화다.
자산 불평등에 비춰 제주의 소득 분포는 상대적으로 고르다. 소득 불평등 수준은 전국 평균을 밑돈다. 문제는 소득이 낮다는 데 있다. 근로소득(2021년 귀속 연도, 원천징수지별 기준) 연말정산 신고를 살펴봤더니 제주의 1인당 급여 총액은 3427만원으로 광역 단체 중 꼴찌다. 지역에서 생산한 부가가치의 합을 인구수로 나눈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도 대구, 강원, 전북 다음으로 낮다.
주관적 삶의 만족도는 논외로 치고 ‘힐링의 섬’ 제주는 소득을 잣대로 했을 때 삶이 팍팍한 데다 부동산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어느 곳보다 격차가 큰 지역인 셈이다.
도가 나서 조례안까지 마련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제주도는 금융포용 지원에 관한 조례를 바탕으로 기금 100억 원을 조성해 금융약자의 금융비용 부담 경감, 공정한 금융 이용 기회 제공, 자산 형성을 지원할 계획이다. 비록 ‘미약한’ 수준이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자산 격차를 줄이겠다는 구체적 실행계획을 세웠다는 데 의미가 적지 않다. 이는 지자체 첫 사례라 할 수 있다. 정책을 주무한 송은미 제주도 경제활력국 경제일자리과장은 <한겨레>에 “제주는 다른 시도보다 자산 불균등이 심하다”며 “정책 접근을 하지 않으면 더는 청년을 붙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충청남도에서도 3년 전 양극화 해소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긴 했으나 구체성이 떨어지고 정책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사실 자산 불평등 대책을 그것도 지자체 차원에서 세우기란 쉽지 않다. 조세와 복지, 부동산 정책은 중앙정부의 권한이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도 지난 2월 양극화해소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자산 격차 현황 보고서는 “자산불평등 심화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가격 안정 노력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자산 취약 계층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자에게 서귀포 곳곳을 안내하던 장수익씨는 짓궂은 날씨만큼이나 제주의 미래를 밝게 보지 않았다. 마을 이장까지 지냈던 그는 얼마 안 되는 자그마한 땅을 갖고 있지만 단칸 패널 주택에서 산다. 그는 “자산 격차가 커지면서 없는 사람이 더는 올라갈 수 없는 유리 천장이 생겼다”며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 못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의 미래는 열려 있지만 그는 희망의 편에 서지 않았다.
글∙사진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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