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 뛰어든다…뜨거워지는 비트코인 ETF[비트코인 A to Z]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 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신청으로 가상자산업계가 뜨겁다.
블랙록은 6월 15일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iShares Bitcoin Trust)’라는 이름의 비트코인 현물 ETF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했다. 2019년 프로셰어즈(ProShares)가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BITO라는 최초의 비트코인 ETF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10개의 ETF가 시장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들은 모두 선물 ETF이고 현재까지 비트코인 현물 ETF는 단 하나도 없다.
물론 그동안 비트코인 현물 ETF를 신청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레이스케일(Grayscale)·반에크(VanEck)·위즈덤트리(WisdomTree) 등 유명 자산 운용사들이 꾸준히 현물 ETF를 신청했지만 SEC는 이를 모두 기각해 왔다.
하지만 약 10조 달러(약 1경3000조원) 규모의 자금을 관리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이 등장하면서 처음으로 현물 ETF가 승인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정경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고 여기에 더해 블랙록이 현재까지 신청한 576건의 상품 중에서 단 한 건만을 제외하고 575건이 SEC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은 시장에 비트코인 현물 ETF라는 새로운 기회가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블랙록의 현물 ETF 신청이 공식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유지돼 왔던 시장의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현재 SEC와 펀드 전환 관련으로 소송 중인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트러스트(GBTC)의 가격 할인 폭이 지난해 9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좁혀졌고 발키리(Valkyrie)·위즈덤트리·인베스코(Invesco) 등 다양한 자산 운용사들이 잇달아 현물 ETF 신청서를 제출했다.
여기에 더해 6월 29일 전 세계 4위 규모의 자산 운용사 피델리티(Fidelity) 역시 ‘와이즈 오리진 비트코인 트러스트(Wise Origin Bitcoin Trust)’라는 이름의 현물 ETF를 신청하면서 시장은 또 한 번 뜨거워졌다. 대규모 자산 운용사의 연이은 현물 ETF 신청 소식에 비트코인 가격은 블랙록이 신청서를 제출한 6월 15일부터 29일까지 2주간 20% 넘는 상승을 기록했다.
SEC의 기각에도 이어지는 재신청 쇄도
하지만 6월 30일 높아진 시장의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SEC는 블랙록의 현물 ETF 신청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SEC는 블랙록과 피델리티가 신청서를 제출한 거래소인 나스닥과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서의 내용이 부적절하고 명확하지 않다고 전달했다.
특히 SEC는 감시 공유 계약(Surveillance-sharing Agreement)에 대한 세부 사항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감시 공유 계약은 ‘유의미한 거래량을 지닌 규제된 시장 또는 거래소의 거래 내역, 청산 과정 공개 및 신원 확인 절차를 불순한 행위를 탐지하고 가격 조작과 시장 불안정성을 해소하는 장치’로, 블랙록의 경우 신청서 내에 공유 계약 파트너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이에 블랙록은 7월 3일 미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를 감시 공유 계약 파트너로 선정해 현물 ETF 신청서를 SEC에 다시 제출했다. 블랙록뿐만 아니라 신청서가 반려됐던 피델리티·인베스코·반에크·위즈덤트리 등 다른 자산 운용사들도 코인베이스를 감시 공유 계약 파트너로 명시해 다시 신청하면서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위해 SEC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려는 노력을 이어 갔다.
여기에 더해 핑크 CEO는 지난 5일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블랙록)가 하려는 것은 가상자산을 더욱 대중화하고 일반 투자자들을 위해 더 저렴하게 만드는 것(What we're trying to do with crypto is make it more democratized with all of crypto and making it much cheaper for investors)”이라고 말하면서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본래 핑크 CEO는 2018년 블룸버그 텔레비전(Bloomberg Television)과의 인터뷰에서 “그 어떠한 고객도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I don’t believe any client has sought out crypto exposure)”고 말했을 정도로 대표적인 가상자산 회의론자 중 한 명이었지만 현재 180도 달라진 그의 횡보에 많은 이들이 가상자산 산업이 가진 잠재력에 대해 기대감을 품게 됐다. 이에 시장 참여자들의 투자 심리를 나타내는 ‘공포·탐욕지수’는 6월 15일 41점에서 7월 4일 61점까지 상승했다.
가상자산 산업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현물 ETF
그렇다면 블랙록을 비롯한 대규모 자산 운용사들은 이미 비트코인 선물 ETF가 존재함에도 왜 현물 ETF를 상장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현물 ETF와 선물 ETF의 차이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현물 ETF는 말 그대로 기초 자산에 직접 투자하는 ETF를 의미하고 선물 ETF는 특정 날짜를 만기로 하는 선물 가격에 대한 투자하는 ETF를 말한다. 즉, 비트코인 현물 ETF는 실제로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ETF를 의미하고 선물 ETF는 비트코인 가격 움직임에 베팅하는 ETF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 시장에 존재하는 비트코인 ETF에 투자한다는 것은 실제로 비트코인을 매수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ETF의 규모가 커진다고 하더라도 가상자산 산업에 자금이 실질적으로 유입되는 정도는 미미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되고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투자한다면 해당 ETF를 취급하는 자산 운용사는 실제로 비트코인을 매수해야만 하기 때문에 가상자산 산업에 실질적으로 자금이 유입된다.
또한 기관투자가들의 실질적인 자금 유입과 함께 바이낸스나 업비트 등 기존의 중앙화 거래소 이외에도 일반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는 새로운 활로가 생겨나게 되기 때문에 핑크 CEO의 주장처럼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될 수 있다. 또한 ETF를 운용하는 자산 운용사로서도 비트코인 현물 ETF는 가상자산의 높은 변동성에 대한 노출은 최소화하면서 고객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수익까지 창출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SEC는 시장 가격 조작의 위험과 이로 인한 투자자 피해를 방지하겠다는 명목하에 12건에 달하는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을 지속적으로 거부해 왔다. 하지만 블랙록을 비롯한 대규모의 다양한 자산 운용사들의 이번 시도를 SEC가 또다시 기각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아무리 금융 시장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SEC라도 블랙록과 피델리티라는 초대형 자산 운용사의 막강한 입김과 그들이 감시 공유 계약을 중심으로 SEC의 요구 사항까지 충족하고 있다는 것이 위 의견의 주요 근거다. 특히 유망 레이어 1(Layer 1)인 세이(Sei)의 공동 설립자 제프 펭(Jeff Feng)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현물 ETF 재신청은 기관들이 코인베이스 운영에 강력한 법적 방어 수단이 있다고 믿고 있음을 의미하며 신청 승인에 대한 낙관론에 더욱 불을 지피고 있다.”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SEC의 강력한 규제 압박이 지속되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블랙록과 같은 거대한 기관들이 반복된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신청 기각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재신청을 단행했다는 사실은 전통 금융의 대규모 기관들이 가상자산 산업에 가지는 강력한 신뢰를 나타낸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돼 가상자산 산업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활로를 제공해 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동혁 디스프레드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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