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복 패션의 청담동' 동묘 패션을 아십니까

조경훈 2023. 7. 17.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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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 거리에서 등산복에서 멋지게 꾸민 이들을 만났다.

고프코어는 야외 활동 시 체력 보충을 위해 먹는 견과류를 뜻하는 고프Gorp와 평범하면서도 개성이 살아 있는 패션 스타일인 놈코어Nomcore가 합쳐진 말로, 등산복을 일상복처럼 활용하는 패션 스타일을 뜻한다. 사실 아웃도어 패션은 예전부터 꾸준히 인기가 있었지만, 2017년 뉴욕의 매거진 <더 컷>에서 고프코어라는 단어를 처음 언급한 이후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서 발렌시아가나 구찌 같은 브랜드의 패션쇼에서도 고프코어룩이 등장하며 고프코어는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고프코어 패션의 선도자라 할 수 있는 불가리아의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Kiko Kostadinov는 과거 자신의 SNS에 동묘 길거리 사진을 올리며 '세계 최고의 거리, 스포티함과 캐주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감한 믹스매치 패션'이라며 동묘의 등산복 패션을 극찬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고프코어는 주요 패션 트렌드로 떠올랐고, 등산복은 패션 아이템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요즘 길거리에는 고프코어 스타일로 잔뜩 멋 부린 젊은이들이 꽤 많다. 아크테릭스 같은 기존 등산복 브랜드뿐만 아니라 한국의 소규모 패션 브랜드들(산산기어, 스마트어반유즈풀 등)의 인기도 대단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비교적 저렴하고, 쉽게 살 수 있던 등산복이 변했다. 품절되어 웃돈을 주고 사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해졌다. 실제로 고프코어 계열의 옷을 판매하는 한 브랜드는 신상품 판매 개시와 동시에 접속자가 몰려 사이트가 마비되는 일까지 일어났다.

등산복을 입고 다니면 '촌스럽다'는 것은 옛날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등산복을 입고 다니면 '힙하다'는 소리를 듣는 시대다. 등산복에 새로운 바람을 불고 온 고프코어 열풍. 나는 그 뿌리를 찾아 동묘로 떠났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골동품들도 꽤 있다.

어딜 가나 등산복

시끌벅적한 1호선을 타고 동묘앞역 4번 출구로 나왔다. 주말에 비하면 한적했지만, 평일의 동묘는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름의 열기도 동묘를 찾은 이들을 잠재우긴 힘들었던 모양. 사람들에 밀려 넓은 도로로 나오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와아~ 그대로네!"

오랜만에 찾은 동묘는 변한 것 하나 없었다. 길 양쪽으로 쫙 늘어선 노상 가판대들. 귓가를 가득 울리는 트로트와 출처를 알 수 없는 고함까지. 6월의 동묘는 벌써부터 뜨거웠다. 무지갯빛 파라솔 아래 손님들은 무릎을 굽혀 물건들을 뒤져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상인들과 흥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뭘 보고 있었을까? 노상 위에는 시계, 선글라스, 가방부터 오래된 LP, 필름카메라, 자전거에 이르기까지 동묘는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했다. 한마디로 동묘에는 없는 게 없었다.

먼저 동묘거리를 한 바퀴 돌아봤다. 골목이 많아 구석구석 둘러보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등산복만 파는 거리가 따로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1장에 2,000~3,000원하는 노상 구제 옷더미에서부터, B급 이상의 옷만 골라 판매하는 가게, 그리고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트렌디한 빈티지 숍까지. 등산용품은 동묘 구석구석에 있었다.

동묘에서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등산배낭들을 숱하게 볼 수 있다.

그중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바로 블랙야크의 전신인 동진 마크가 박힌 등산 배낭. 옆으로는 시중에서 자취를 감춘 오래된 도이터deuter나 노스페이스thenorthface의 배낭들도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가게 앞을 지키고 있던 사장님께 다가가 말을 걸었다.

"동진! 이거 옛날 블랙야크 가방이죠? 실물로는 처음 봐요."

"젊은 친구가 용케 알아보네요? 동묘에는 꽤 오래된 배낭들이 많아요. 대부분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이죠."

"얼마 정도 하나요?"

"도이터같이 상태 좋은 대형배낭은 7만~8만 원. 비교적 덜 유명한 다운타운 새 배낭은 3만~4만 원 해요."

배낭들은 깨끗했다. 약간의 오염만 있었을 뿐, 큰 하자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어깨에 메어 봐도 마찬가지였다. 크기도 10L대에서 80L대까지 다양했다. 가게 한편에 걸려 있던 오래된 파란 몽벨 배낭이 마음에 들었지만 결국 참았다. 비슷한 크기의 쓸 만한 배낭이 집에 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깨끗하게 샤워를 마친 등산용품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큰 도로를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갔다. 길이 좁아서인지 사람이 적었다. 덕분에 좀더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그때, 각 맞춰 진열된 등산화와 배낭들이 보였다. 군기 바짝 든 신병 같았다. 사장님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나는 구도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었다. 사장님은 슬그머니 다가와 "등산복을 좋아하냐"며 말을 걸었다. 나는 "네!"라고 대답하며 어디서 구제 등산용품들을 떼어오는지 물었다.

"구제 옷처럼 구제 등산복을 판매하는 도매상이 있어요. 저희는 거기서 괜찮은 것을 골라 들여오죠. 가져오면 가장 먼저 세탁해요. 아무리 구제라도 상품 가치가 있는 걸 팔아야 하죠. 이것 봐요. 깨끗해 보이죠?"

그가 내민 등산화는 A급이었다. 당장이라도 신고 북한산을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등산화들 사이로 군화가 눈에 띄었다. 나는 "저 군화도 판매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약초 캐러 산에 다니시는 분들이 많이 찾아요. 중등산화보다 목이 높아서 뱀물림을 막는 데 좋죠. 군용이 아니라 무게가 가벼워 산행하기에도 좋아요."

그는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싸게 준다고 가져가라고 했다. 이번에도 역시 집에 등산화가 있다는 핑계를 대고 슬그머니 가게를 빠져나왔다.

다시 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노상 판매대 위에 진열된 산행용 샌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묘는 벌써 여름 계곡산행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처음 보는 브랜드의 신발이었는데, 이건 심지어 신상품이었다. 만듦새가 튼튼해 보였다. '이걸 신고 계곡 산행 가보면 어떨까?'라는 궁금증을 들게 하는 녀석이었다.

눈에 띄었던 바람막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이 구매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점점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한층 붉어진 햇빛이 높게 걸린 길거리의 등산복들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길가에 핀 꽃들 같았다. 색이 화려해 동묘의 분위기를 한껏 밝게 하고 있었다. 저 멀리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서 있었다. 모두 옷을 보고 있었다. 나는 빛을 쫓는 하루살이처럼 홀린 듯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등산용 바람막이들이 있었다. 네파, 아이더 같은 국내 브랜드뿐만 아니라 마무트, 머렐 같은 해외 브랜드 제품들도 있었다. 옷걸이에 걸린 브랜드의 수만 따지자면 한 백화점에 입점한 아웃도어 브랜드의 수보다 많았다.

동묘 노상의 물건을 구경하는 한 행인.

동묘의 옷걸이에는 국경이 없었다. 국내외를 망라하고 대개 비슷한 가격이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봤다. 마침 춘추용 바람막이가 필요한 참이었다.

겉보기에는 대부분 괜찮아 보였다. 낡은 것들도 더러 있었지만, 상태를 감안해 낮은 가격이 매겨져 있었다. 바람막이의 경우 평균 1만~3만 원이면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등산복의 원래 '기능'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어텍스 재킷들은 빳빳함이 사라지고 군데군데 해져 있었다. 하지만 구제라는 걸 감안하면 이해가 됐다. 그런 옷들은 오랫동안 소모되어 기능을 잃고 주인에게 버려져 동묘까지 흘러왔을 것이다. 뛰어난 기능이 목적이 아니라면, 동묘의 등산복들은 일상복으로서의 활용가치가 무궁무진해 보였다. 저렴한 가격은 덤!

옷더미 속에서 사진 속 모자같이 괜찮은 물건들을 구할 수도 있다.

" 입고 다니기 편한 게 최고"

고프코어룩은 멋보다 실용성

동묘는 독특하다.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개성이 넘친다. 무도회장을 연상케 한다. 나는 동묘에 오는 사람들이 궁금해 온종일 동묘를 누볐다. 소문대로 등산복과 일상복을 과감히 매치한 사람들이 많았다. 일명 K-고프코어룩. 그들에게 오늘 입은 옷의 콘셉트에 대해 물어보니 대개 "집에 있는 옷이 이거라서" 혹은 "입고 돌아다니기 편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들에게 고프코어룩은 멋이 아닌 일상복 그 자체였다. 나는 그 무심함이 더 멋지게 느껴졌다.

동묘 앞에서 만난 4명의 멋진 고프코어 패션을 소개한다. (소개된 인물이 4명밖에 없는 이유는 촬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들 대부분은 인터뷰 요청에 "나보다 잘 입는 사람이 훨씬 많다"며 촬영을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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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오석탁

나이: 72세

등산 경력: 30년 이상

좋아하는 산: 도봉산, 화악산

패션 요약: 노란색 바람막이와 등산복, 밀짚모자를 섞은 동묘식 고프코어. 등산복과 밀짚모자는 보세, 바람막이는 폴로POLO, 신발은 르까프Lecaf.

이름: 장성복

나이: 77세

등산 경력: 10년 이상

좋아하는 산: 마이산, 무등산

패션 요약: 주황색 등산복과 나뭇잎 패턴 중절모, 체크무늬 바지의 과감한 만남. 상의는 K2, 모자와 바지는 보세.

이름: 나동균

나이: 69세

등산 경력: 10년 이상

좋아하는 산: 도봉산

패션 요약: 등산복과 낚시 조끼가 어우러진 종합 아웃도어 패션. 모자는 블랙야크BLACK YAK 상의는 레드페이스TheRedFace, 조끼와 바지는 보세.

이름: 이수민

나이: 23세

등산 경력: 1년 이상

좋아하는 산: 북한산

패션 요약: 빈티지 아웃도어 제품들로 코디한 젊은 고프코어 패션. 상의는 노스페이스TheNorthFace, 하의는 스타터Starter, 신발은 아디다스Adidas 슈퍼스타.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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