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텔 향한 어퍼컷, 전 부처의 검찰화?

김은지 기자 2023. 7. 17. 07: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칭 ‘반카르텔 정부’가 탄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각 부처에다 이권 카르텔을 혁파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정책과 정치의 자리를 감사와 수사로 채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새 이름을 얻었다. 7월3일 윤석열 대통령은 차관 임명식에서 “우리 정부는 반(反)카르텔 정부”라고 말했다. 문민정부(1993~1998년 김영삼 대통령), 국민의 정부(1998~2003년 김대중 대통령), 참여정부(2003~2008년 노무현 대통령)는 지향하는 바를 담았다. 이후부터 각 정부명은 대통령 이름에서 따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행정수반으로서 이끄는 정부의 성격을 ‘카르텔’에 반대한다는 뜻을 담아 소개했다. 집권 2년 차 사실상 첫 개각을 하며 꺼내든 단어다. 실세라는 평가를 받는 차관들에게 “헌법 정신을 무너뜨리는 이권 카르텔과 가차없이 싸워달라”고 당부했다. 사정 기능 강화를 주문하는 말이다. 이 자리에 주로 사정 역할을 맡아왔던 감사원·검찰·경찰·국세청·국가정보원 인사는 없었다.

2022년 5월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공무원들을 만난 윤석열 대통령이 선물받은 글러브를 끼고 ‘어퍼컷 세리머니’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공직사회에 전하는 의미는 명확하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조직이든 기업 조직이든 제일 중요한 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라며 ‘산하단체와 공직자들의 업무 능력 평가를 늘 정확히 해달라’고 신임 차관들에게 당부했다”라고 밝혔다. 6월28일 대통령실 출신 차관 내정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윤 대통령은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조금 버티다 보면 (정부가) 바뀌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은 정부가 아닌 국회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카르텔 혁파’라는 국정 기조를 제시하며,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것임을 천명했다.

이러한 지시를 맞닥뜨린 공직사회가 첫 번째로 부딪힌 문제는 무엇이 카르텔이냐는 것이다. 미션 수행을 위해서는 대상 파악이 먼저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카르텔은 경제용어다. ‘동일 업종의 기업이 경쟁의 제한 또는 완화를 목적으로 가격, 생산량, 판로 따위에 대해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하는 독점 형태’라는 뜻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업무가 떠오르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전 부처에 관련 지시를 내렸다. 그렇기에 ‘카르텔’의 의미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 행정부 최고결정권자인 대통령의 말과 글은 고위직부터 말단까지 모든 공무원의 준거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사이트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문을 보자. 2022년 5월10일 취임부터 2023년 7월5일 현재까지 모두 연설 247건이 올라와 있다. 1.7일에 한 번씩 공식 발언을 남겼다.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생각과 관심사를 알 수 있는 사료다. 취임사부터 국무회의 모두발언, 해외 순방 당시 연설, 그리고 유소년 야구대회 격려사 등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 다양한 분야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담겼다.

전체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문 247건 중 ‘카르텔’이라는 단어가 나온 연설문은 6건이었다. 집권 초 국정 어젠다를 가장 세게 밀고나가는 2022년 내내 윤석열 대통령 연설문에서 ‘카르텔’이라는 단어가 나온 적은 딱 한 번이었다. 지난해 6월21일 국무회의에서다. 그는 “이권 카르텔, 부당한 지대추구의 폐습을 단호하게 없애는 것이 바로 규제 혁신이고 우리 경제를 키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언급하며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윤석열 대통령의 ‘카르텔’ 뜻은?

게다가 검사 윤석열에서 정치인 윤석열로 변신을 공식화한 2021년 6월29일 ‘정치 참여 선언문’에 처음 등장했던 카르텔의 용례와는 다소 달랐다.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공격하며 카르텔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절실함으로 나섰다. 거대 의석과 이권 카르텔의 호위를 받고 있는 이 정권은 막강하다.”

그러고는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연설에서 더 이상 ‘카르텔’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2023년 7월 현재 윤석열 정부를 대표하는 말로 자리 잡은 양상과는 대조되는 모양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검색 서비스 빅카인즈에 따르면, 2021년 6월29일(윤석열 정치 참여 선언)부터 7월5일 현재까지 ‘카르텔’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의 연관 분석어는 1위가 윤석열 대통령, 2위가 사교육 업체, 3위가 국정 운영 방향이다(아래 〈그림〉 참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검색 서비스 빅카인즈에서 ‘카르텔’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뉴스(2021년 6월29일~2023년 7월5일)의 연관 키워드를 분석했다. 1위는 윤석열 대통령, 2위는 사교육 업체, 3위는 국정 운영 방향이 차지했다.

2023년 들어서는 지금까지(7월5일 기준) 다섯 번 연설문에서 9차례 언급됐다. 2월27일 연세대 학위수여식에서 윤 대통령은 축사를 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그는 혁신을 강조하며 기득권 카르텔을 방치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3월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축사에서는, 신년사에서 언급한 3대 개혁을 카르텔과 연결했다. “국민을 고통에 빠뜨리는 기득권 이권 카르텔은 확실하게 뿌리 뽑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청년 세대를 위한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흔들림 없이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

5월16일 국무회의에서는 노동조합(노조)을 직격했다. “고용세습 등 불법적인 단체협약은 시정 조치하고, 세습 기득권 철폐를 위한 공정채용법 개정안을 낼 것이다. 개혁은 언제나 이권 카르텔의 저항에 직면하지만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겠다.” 이어 6월13일 국무회의에서도 “부정과 부패의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부수어야 한다”라면서 시민단체를 겨냥했다.

7월4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발표에서는 한 연설 안에서 카르텔을 세 번이나 언급했다. “특정 산업의 독과점 구조, 정부 보조금 나눠 먹기 등 이권 카르텔의 부당이득을 우리 예산에서도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해 낱낱이 걷어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직접 특정 분야를 지목하지 않았지만, 대통령실은 “금융·통신 산업의 과점 체계, 과학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정부 R&D 나눠 먹기”를 말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태양광 사업을 겨눴다는 해석도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연설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교육에 대한 카르텔 언급도 빼놓을 수 없다. 6월16일 윤 대통령이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이란 말인가'라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소위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에 대해 언급하며 한 말이라고 한다. ‘한편’이라는 말에 대통령실은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첨언해서 공개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가리키는 ‘카르텔’이 뭔지 여전히 뿌옇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와 야당, 시민단체, 노조를 넘어 사교육 시장까지 카르텔로 지목되면서 카르텔의 범위가 계속 넓어지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카르텔 인플레이션’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공방이 뒤따른다. 법조 카르텔, 검찰 카르텔, 처가 카르텔 등은 왜 그냥 두느냐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교육 시장의 ‘이권 카르텔’을 문제 삼자, 국세청과 교육부가 조사에 나섰다. ⓒ시사IN 박미소

이번 지시가 공직사회에는 어떻게 다가갈까. 전직 고위공무원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공무원 입장에선 명확해진 게 있다.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 말대로 왜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했을까? 정권이 바뀌면 수사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솔직히 윤석열 정부가 정확히 뭘 하고 싶은지 상이 없지 않나. 하라고 안 하면, 안 하는 게 공무원이다. 그런데 지금은 확실해졌다. 각 부처들에게 검찰 역할을 하라는 것 아닌가. 각종 산하기관 등을 점검해서 성과를 내면 된다. 부정수급, 담합 등을 자체 감사로 잡아내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전 부처의 검찰화가 가속화되리라는 전망이다.

또 다른 공무원 B씨는 우려를 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대 개혁을 꺼내들었을 때, 인기도 없고 잘하기 어려운 주제인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제는 분명해졌다. 관련 부서인 교육부(교육개혁)에도, 국민연금(연금개혁)에도 검사 출신이 가 있다. 대통령은 부정부패를 처단하는 방식으로 ‘개혁’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어퍼컷 날리듯이 카르텔을 때려잡겠다는 심산이다. 검사 마인드로 정부 부처를 장악하겠다는 건데, 일시적 효과는 나올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진짜 일이 되게 하는 방식’인지는 모르겠다.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단순히 부정부패 때문만은 아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각종 이해관계를 조정해서, 되게 하는 게 정책이다.”

“검사 마인드로 부처 장악하겠다는 뜻”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이와 같은 검찰주의적 통치의 모습을 예견한 바 있다. 그는 지난 3월23일 참여연대가 주최한 ‘대선 1년, 검찰공화국을 말하다’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검찰 권력은 기본적으로 모든 정책과 행정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을 일소하는 방향으로 사고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일부 부정수급의 가능성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일자리, 복지정책 등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노동개혁이나 교육개혁과 같은 윤석열 정부가 천명한 정책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부정한 사례에 대한 수사와 기소, 이를 적극 홍보하는 방식이 재현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행정 전반에서 소극적 행태가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의 '카르텔' 남용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승민 전 의원은 7월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서 이렇게 비판했다. “대통령이 최근 카르텔이라는 말에 꽂혀서 막 오용 남용하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경찰 검찰 국세청 온갖 동원해서 5년 내내 ‘적폐 청산’ 하느라고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대통령이 기여를 못하는 걸 보고 굉장히 답답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하고 윤석열 정부의 카르텔 청산하고 비슷해지는 것 같다.”

상대를 청산·혁파 대상으로 내몬다는 점에서 ‘적폐’와 ‘카르텔’이 닮았다는 주장이다. 윤석열 정부가 정책과 정치의 자리를 감사와 수사로 채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