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생각] 근로의 가치

노윤호 NH농협은행 청주교육원 팀장

아버지는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가난한 도시 근로자셨다. 일이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나가셔서 해가 지고 나서야 집에 오셨다. 늘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일을 할 준비를 하셨고, 일한 대가를 못 받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덕분에 나는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그 시기에 대해 아버지만 원망할 순 없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부지런하셨고, 형편 때문에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셨으니 말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놓고 노사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13일 열린 제13차 전원회의에서 결론이 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이번 주까지 논의가 계속될 수도 있다고 한다.

한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늘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로 4회 연속 동결했다. 한은은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물가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8월 이후에는 다시 3% 내외로 높아지는 등 상당기간 목표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화폐의 가치가 떨어진다. 우리는 근로의 대가로 화폐를 받는데, 화폐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면 우리 근로의 가치도 떨어지는 것인가? 근로의 대가로 받는 소득의 일정 부분(아마도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은 일반 상거래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 또는 최저임금을 초과하여 받는 근로소득과 구별되었으면 좋겠다.

일반 상거래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과 최저임금을 초과하여 받는 근로소득은 물가 변동에 따라 그 가치가 연동되어도 좋지만, 근로의 대가로 받는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은 물가 변동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가치를 인정받았으면 한다. 물론, 근로를 제공하는 데 기본이 되는 의, 식, 주의 가치에 한정해서 연동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소득이 두 가지로 나뉘어 관리되는 불편은 있겠지만, 근로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예를 들어, 근로자가 주 5일을 성실히 일하여 최저임금을 받으면, 그 임금으로 일주일 분의 원룸 임차료, 21끼의 보통의 식사, 일주일을 입을 수 있는 의복 비용 등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물가가 상승할 경우에도 동일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물가 상승에 따른 보정 작업이 필요할 텐데, 그 방법으로 최저임금의 교환비율을 주기적으로 공시하는 것이다. 근로자는 최저임금으로 의, 식, 주를 해결할 경우 근로소득×교환비율의 가치로 이용한다. 이렇게 되면, 원룸 비용이 두 배로 상승하거나, 식사 값이 20% 상승하여도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에는 교환비율이 적용되어 물가의 상승에 구애를 받지 않고 동일한 소비를 이어갈 수 있다. 반대로 물가가 하락하는 시점에는 교환비율이 낮아져 최저임금의 사용금액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근로의 가치는 기본적인 의, 식, 주 물가와 연동되므로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구상에 오직 사람만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는 존재이기 때문이고, 그러한 인간이 땀을 흘려 노동한 대가는 정당하게 그 가치가 매겨져야 하며, 물가 상승 시에도 저평가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화폐는 지역 전통, 친밀한 관계, 인간의 가치를 부식시키고, 이를 수요와 공급의 냉정한 법칙으로 대체한다"고 하였다. 만일 최저임금이 기본적인 의, 식, 주와 연동될 수 있다면 화폐로 인해 인간의 가치가 부식되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