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여유없는 사회와 늘어가는 스트레스

오응석 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2023. 7. 1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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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응석 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장마철을 맞아 폭우가 쏟아지고 불쾌지수가 높은 요즘, 뉴스에서는 예전에 한국사회에서는 없었던 엽기적인 폭행, 토막살인 등이 연일 방송되고 있다. 물론 총기에 대한 소유권이 매우 한정적인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과 같이 묻지마 총격이나 보복성 총격살인 등은 다행이 없으나, 이에 못지않은 사건 사고들이 계속 늘고 있다. 이젠 동방예의지국에 유교사상을 자랑했던 우리나라의 좋은 전통을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기 민망할 정도다. 그럼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우발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참을 수 있는 한계에 부딪히는 상황들이 누적돼서가 아닌가 추측해 본다.

최근에는 돈과 지위를 막론하고 스트레스가 많고 힘든 직종은 피하게 된다고 한다. 어려운 공무원 시험을 붙어도, 대기업에 들어가도, 예전같이 높은 강도의 업무를 요구하며, 직장내 존재감을 올려주고, 봉급을 올려주는 정도로 구성원들을 만족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지금 직장을 첫 시작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돈과, 사회적 지위보다는 '워라밸'이 훨씬 중요하고, 개인의 행복이 최고로 중요한 인생의 목표임은 확실한 것 같다. 사회나 직장 내의 발전을 위해 예전같이 개인의 노력과 희생을 요구해서 더 많은 결과를 얻어내고자 하는 시대는 지났다. 논리적인 이해과 적절한 보상이 없이는 그 어떤 구성원도 움직이기 어렵다.

지난해 세계 85개 국가를 대상으로 살기 좋은 국가에 대한 평가 중 한국은 3계단이 내려간 20위였다. 1위 스위스, 2위 독일, 3위 캐나다, 4위 미국, 5위 스웨덴의 순위였는데 공통적으로 생활 속에서 스트레스를 서로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라들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정이 없어 보이지만 그들은 이미 전부터 이런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사회를 계속 유지했던 것 같다.

캐나다 연수 시절 가장 이상했던 점은 연구실에서 바로 뒤에 있는 외국인 친구가 내게 메일을 보내서 내일 연구 일정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바로 뒤에 있으니 잠깐 불러도 될 것이고, 자리에 없으면 전화하면 될 텐데 왜 자꾸 메일을 보낼까 궁금해서 물었다. 전화나 직접 갑자기 물어보면 내가 생각지 않은 일에 대한 즉답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또 급한 일이 아니라 메일로 연락했다고 한다. 급하거나 중요한 일이 아니면 전화는 잘 안 한다고 한다. 내가 느끼는 외국 친구에 대한 서먹함 이면에는 이런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있을 수 있겠구나를 처음 알게 됐다.

뇌과학의 측면에서 보면 어떤 일에 대한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하고 여러 번 고민을 해야 하기에, 뇌의 다양한 부위와 많은 신경세포가 일하고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차라리 몸이 힘든 게 낫다'는 말이 있듯,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업무처리가 오히려 더 힘든 경우도 많다. 우리 사회도 이제 많이 성숙해졌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은 외래에서 당일 환자를 받고 진료하고 있다. 물론 의료전달체계가 다르긴 하나, 국내와 비슷한 수준의 의료기술을 갖고 있는 외국의 대학병원에서 당일 외래 진료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급하거나 빠른 처치가 필요한 경우야 어쩔 수 없겠으나, 이를 위해 응급실이 운영되고 있으며, 실제로 급하다고 해서 외래진료를 보면 의료적 응급이 아닌, 환자 본인의 마음이 급한 경우가 더 많다.

이처럼 갑자기 방문해서 일처리를 요구한다면 본인들에게는 좋겠지만, 실제 일을 처리해야 하는 담당자에겐 스트레스와 업무과중이 될 수 있음을 반드시 생각해야 할 문제다. 또 밤이고 낮이고 갑자기 전화를 해서 일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럼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오늘 당장 아니면 안 돼 보다는, 예약을 통해서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이 뿌리를 내려야 하고, 또 상대를 존중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국가 사업들은 좀 더 멀리 가능성을 보고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생각해서 국민들의 삶의 질이 더 올라갈 수 있는 정책을 많이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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