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팔 드럼 로봇, 빛의 속도로 연주…속도 넘어 감동도 추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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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립극장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국산 지휘 로봇 ‘에버6’는 외신들도 크게 보도하는 등 눈길을 끌었다. 손동작이 제법 섬세했고, 박자와 템포도 정확했다. 하지만 듣지도 교감하지도 못하는 로봇 지휘자의 한계는 뚜렷했다. 오히려 ‘인간 지휘자’의 빈자리를 돋보이게 한 측면도 있다. 그런데 악기를 연주하는 로봇이라면? 인간에겐 열 손가락뿐이지만 수백개의 손가락을 지닌 로봇이라면 인간 연주자를 능가하지 않을까. 실제로 각종 악기를 능란하게 다루는 연주 로봇이 곳곳에서 활약 중이다.
악기 연주 로봇은 생각보다 생활 가까이 다가와 있다. 인천공항에 가면 ‘로봇 드러머 앤트와 친구들’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디지털 전자음악이 아니라 로봇이 스틱으로 드럼을 직접 때려서 연주하는 아날로그 음악이다. 이 로봇을 개발한 국내 업체 ‘서울에이앤티’는 고성능 로봇보다 ‘친숙한 로봇’에 집중한다. 드럼과 실로폰, 리코더를 함께 연주하는 ‘로봇 합주단’도 운용한다. 박람회, 전시장, 행사장 등에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퍼포먼스형 연주 로봇’이다.
2013년 설립한 벤처기업 ‘이모션웨이브’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로봇 연주 시스템 ‘리마’는 첨단 성능을 갖췄다. 피아노와 드럼, 마림바 등 실물 악기에 10만여곡의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을 탑재해 자연스럽고 풍부한 사운드를 구현한다. 2017년부터 ‘메카트로니카 콘서트’란 이름으로 각종 축제 등에서 국악, 재즈, 클래식 공연을 펼쳐왔다.
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는 일찍이 2009년에 자동 연주 기계들과 협연한 ‘오케스트리온’을 선보였다. 미리 입력된 기계 장치에 따라 자동으로 연주하는 시스템이다. ‘로봇 연주자 시대’의 도래를 내다본 선구적 시도였는데, 첨단 인공지능을 장착한 최신 연주 로봇과는 차원이 다르다.
연주 로봇이 빼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분야는 타악기 영역. 네개의 팔을 가진 마림바 로봇 ‘시몬’(Shimon)이 대표적이다. 미국 조지아공대 음악기술센터가 개발한 이 로봇은 두 팔만 지닌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도 도저히 연주할 수 없는 엄청나게 빠른 곡도 척척 연주해낸다. 인간 신체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했으니 그야말로 ‘초인 로봇’이다. 빠른 ‘속주’뿐만이 아니다. ‘시몬’은 초보적이지만 인간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고 즉흥 연주도 한다고 이 연구소는 설명한다. 머신러닝 프로그램을 활용해 각종 음악 이론과 다양한 음악 장르와 스타일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음악기술센터 책임연구원인 길 와인버그 박사는 “재즈 연주자 텔로니어스 멍크나 오넷 콜먼 스타일로 다르게 연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몬은 미국 전역을 돌며 연주를 선보였다.
연주 로봇은 건반 악기도 곧잘 연주한다. 지난해 12월, 중국 항저우의 한 식당에서 피아노를 치는 안드로이드 로봇의 사진과 비디오가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샤오러’란 이름의 이 로봇은 정밀한 시각 인식 시스템을 장착해 건반을 정확히 누를 수 있다. 중국의 인공지능 전문 연구소가 만든 이 피아노 연주 로봇은 팔에 수많은 관절을 달았고, 허리와 머리, 발도 움직인다. 2016년엔 성남아트센터에서 이탈리아 로봇 피아니스트 ‘테오 트로니코’가 공연했다. 53개의 손가락을 지닌 이 로봇은 앞서 베를린 심포니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K488을 협연하기도 했다. 바흐와 모차르트, 베토벤의 작품 등 레퍼토리가 방대하고 강약과 속도 등 피아노 연주에 필요한 100여개의 기술도 지녔다.
로봇은 바이올린과 첼로 등 현악기와 트럼펫 등 관악기도 제법 연주한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 본사를 둔 로봇 업체 ‘쿠카’와 일본 자동차 회사 도요타는 악기 연주 로봇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업체들이다. 로봇 공학자 세스 골드스타인 박사는 2015년 바이올린 로봇 ‘로보’(Ro-Bow)를 개발했다. 음계에 맞춰 현을 짚는 로봇 손가락과 활을 켜는 장치로 구성돼 있다. 국내에서도 로봇 바이올린의 운지법을 다룬 논문이 여러편 나오는 등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로봇은 아니지만 자동 피아노의 발전은 눈부실 정도다. 19세기 말에 유행했던 초창기 자동 연주 피아노와는 ‘비교 불가’다. 스타인웨이 자동 피아노 ‘스피리오 r’은 세계적인 음악가가 바로 눈앞에서 연주하는 것처럼 생생한 라이브를 즐기게 해준다. 만약 임윤찬이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이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앱으로 방을 개설해 초대한다면 한국에서도 임윤찬이 치는 피아노 터치를 집 안에서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스피리오 r 피아노로 녹음한 피아니스트 랑랑과 유자 왕의 연주는 이미 이런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다. 글렌 굴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등 개성 넘치는 피아니스트들의 연주 역시 그들 스타일로 복제해 재생해준다. 물론, 수억원을 호가하는 ‘스피리오 r’ 피아노를 집에 들여놔야 가능한 상상이다.
인공지능 장착과 함께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연주 로봇이 장차 인간 연주자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까. 최첨단 자동 연주 피아노는 이미 호텔과 카페, 병원 등의 로비에서 일해온 연주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청중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퍼포먼스 연주 로봇’도 인기가 높다. ‘리마 자동 피아노’를 개발한 이모션웨이브 관계자는 “최근에도 롯데월드에 있는 한 식당에서 리마 자동 피아노를 구매해 배치했다”며 “대형 카페와 식당이 주요 고객”이라고 했다. 연주 로봇은 교육용이나 다친 연주자의 재활을 돕는 의료 용도로도 활용되고 있다.
기계에 차츰 밀려나고 있는 인간에게 예술 영역은 ‘최후의 보루’이자 ‘마지막 자존심’으로 여겨져왔다. 아직 인간보다 더 빠르게 연주하는 로봇은 있지만 더 큰 감동을 자아내는 로봇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빛의 속도로 연주하면서 ‘감동 코드’까지 탑재한 ‘사이보그 로봇 뮤지션’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인공지능이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사진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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