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출산, 누가 막냐고? 불평등한 세상이[불평등의 경제학](15)
출산율이 역대 최저로 하락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대로면 장기적으로 나라가 소멸할지 모른다는 전망 앞에서도 한국인들은 거의 체념했는지 담담해 보인다. 여러 언론이 주목하듯 한국의 베이비 버스트(baby bust)에 관해서는 오히려 해외에서 놀라움의 목소리가 크다. 어쩌다 이렇게 아이를 안 낳는 사회가 됐는지는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모자라고 노동시장의 격차가 크며 사회적 안전망도 불충분해 청년들은 생활과 미래가 불안하다. 집값은 너무 비싸고 아이를 기르는 데 돈이 많이 들며 일하던 여성들은 아이를 낳은 후 직장에 복귀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모두 남의 눈을 의식하고 비교하는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여성의 약한 권리와 서울 집중
이런 한국의 현실에서 여러 차원의 불평등은 출산율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먼저 여성의 권리가 약하고 남녀 사이 불평등이 심하면 출생에 악영향을 미친다. 선진국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한 실증연구는 1980년에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과 출산율 사이에 음(-)의 관계가 있었지만, 2000년에는 여성이 노동시장에 더 많이 참여하는 국가의 출산율이 더 높았다고 보고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특히 출산율을 높이는 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보육과 육아휴직 등에서 정부 지원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낮고 출생률도 최저다. 경단녀가 140만 명에 이르고 25~54세 여성의 약 40%에 달한다.
서울과 지방 사이의 불평등도 큰 문제다. 지방에 좋은 일자리가 없고 교육도 어려우니 모두 기회를 찾아 서울로만 몰려간다. 그러면 서울의 집값과 생활비는 더욱 오르고 살기 힘들어지니 서울 집중이 출산율에 악영향을 미친다. 동물들도 그렇듯이 인구밀도가 높으면 생존을 위해 출산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인구가 밀집된 서울의 출산율은 0.63으로 전국 지역에서 가장 낮으며, 지방은 그나마 조금 높다. 물론 출산율이 가장 높은 시는 공무원이 많이 사는 세종시로 1.3이나 된다.
하지만 출산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서구에 비해 혼외자식 비율이 크게 낮은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려면 결혼부터 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결혼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그만큼 여유가 있는 이들은 고소득층이나 부모가 부자인 경우일 뿐이다. 2022년 한국의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 1위는 ‘결혼자금이 부족해서’로 전체의 28.7%였고, ‘고용상태가 불안정해서’가 14.6%로 2위였다. ‘출산과 양육 부담’이 12.8%로 ‘결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다음의 4위였다. 특히 미혼 남자의 경우 ‘결혼자금이 부족해서’가 35.4%나 됐다.
결혼과 남성 소득불평등의 관계
결혼 자체가 정확하게 남성의 소득불평등 문제를 드러낸다. 얼마 전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과 출산 의향의 동태적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7~2019년 30대 중후반 남성의 경우 소득 상위 10%는 91%가 결혼 경험이 있었던 반면 소득 하위 10%는 절반도 되지 않는 47%였다. 상위 10%는 20대 중후반에도 29%나 결혼 경험이 있지만, 하위 10%는 20대 중후반 겨우 8%였고 40대 중반이 넘어도 약 27%는 결혼하지 못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여러 사회경제적인 특성을 통제한 후에도 비정규직이나 시간제 근로와 같은 불안정한 고용이 청년층의 결혼의향을 심각하게 낮추었다. 또한 10년 전과 비교해 모든 연령대에서 혼인 남성 비율이 감소했지만, 특히 30대 중후반은 저소득층 남성의 혼인 비율이 더 크게 하락했다. 또한 소득수준을 통제한 뒤에도 임금불평등이 높은 지역이 30대 후반 남성의 혼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자녀의 소득뿐 아니라 부모의 소득이나 금융자산이 미혼자녀의 결혼확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힘들게 겨우 결혼한다 해도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엄청난 결정이다. 양육과 교육에서 자녀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처지고 자신보다 잘 살지 못하게 된다면 아이 보기에도 미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이 2009년 48.3%에서 2021년에는 29.3%로 낮아졌다. 결국 최근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힘든 세상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합리적인 결정일 수도 있다. 그러니 최근 신생아 분만 건수를 보아도 저소득층 비중이 감소했다고 보고된다. 부의 대물림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가난은 대물림조차 되기 어려운 것일까.
실제로 소득과 부가 세습되기 쉬운 세상에서 아이들의 미래는 부모와 가정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아이들의 건강과 학습 능력 그리고 자란 후의 소득이 엄마의 뱃속에서 결정된다는 연구도 있다. 이른바 태아기원설에 따르면 임신한 엄마가 공해에 노출되거나 종교적 이유로 단식을 하거나 경제적인 충격에 직면하거나 하는 경우 아기가 저체중이 되기 쉽고 자라서 성적과 임금도 낮아진다고 보고한다. 가난한 엄마들의 아기는 아무래도 이러한 악영향을 받기가 쉬울 것이다. 결국 불평등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다는 우울한 이야기다. 흔히들 부가 대물림된다고 걱정하지만 이와 관련해 많은 연구는 가난한 산모나 아기들에 대한 영양이나 소득의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한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보육 등 이른 시기부터의 체계적인 공공투자가 사회의 불평등 개선에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저출생과 불평등 개선 정책 시급한데
그렇다면 여전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소득재분배를 확대하고 노동시장의 격차를 축소하며, 서울로의 집중을 막고 지방의 발전을 촉진하며, 여성이 아이를 낳고 회사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도 출산율 하락 앞에서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이후 저출생 예산이 300조원이 넘을 정도였다. 하지만 2021년 지방정부 몫을 제외한 약 43조원의 저출생 예산 중에서 출산·난임 지원과 양육, 보육, 가족복지 등 저출생과 직접 관련된 예산은 약 14조원에 불과했다. 대신 부동산 관련 예산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관광이나 게임산업 육성 산업도 포함됐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GDP 대비 가족 관련 지출은 2019년 1.4%로서 선진국 평균 2.1%보다 낮았다. 정부는 직접적인 저출생 예산을 확대하고 불평등을 개선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감세를 도입한 정부가 재정 긴축을 추진하면서 얼마 전 다자녀가구에 대한 무상우유 지원을 중단했다.
1960년대 아기를 너무 낳아 산아제한과 가족계획을 폈던 시기 정부의 구호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였다. 아이를 덜 낳으라고 만든 표어지만, 어쩌면 지금은 청년들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출산율이 이렇게 낮은지도 모르겠다. 나라의 소멸을 막기 위해 그야말로 거대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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