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치열하게 표현하고 싶었죠"
"김서형의 새로운 모습 봤다는 말, 최고의 찬사"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오는 26일 개봉하는 스릴러물 '비닐하우스'는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주인공인 문정(김서형 분)에게 닥치는 연속된 불행과 비극적인 전개는 보는 이에게 고통마저 줄 수도 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솔희(29) 감독은 "생각보다 관객들의 호불호가 선명하게 갈렸다. 영화를 보기가 힘들었다고 말하는 관객에게 죄송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영화가 끝난다고 거기서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관객의 마음에 남기를 바랐지요. '멱살 잡고 끌고 간다'고 하잖아요. 시나리오 썼을 때부터 그게 제 욕심이었어요."
이 감독의 첫 장편인 '비닐하우스'는 실수로 자신이 돌보던 치매 노인을 살해한 문정이 살인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연극을 펼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문정은 집이 없어 비닐하우스에 살고, 치매에 걸린 자신의 노모는 병원에 맡긴 채 다른 사람의 부모를 돌보며 생계를 이어가는 인물이다.
그는 어쩌다 살인을 저지르게 되기는 하지만, 애면글면 치매 노인들을 돌보고 다른 사람에게 폐 한 번 끼쳐본 적 없는 선한 사람이다. 바라는 건 아들과 함께 살 소박한 집뿐이다.
"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문정처럼) 사람들 모두 그 일을 해내고 있잖아요. 문정은 튼튼한 집에서 가족과 사는 것, 돌볼 수 있는 사람을 돌보는 것, 진실한 사랑, 안정적인 직업을 꿈꾸죠. 대부분의 사람처럼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하는 게 실은 너무나 고통스럽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극단적이지만 치열한 영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감독은 극 후반부 문정에게 비로소 자유를 선사한다. 문정이 자신을 옭아맸던 현실에서 벗어나 새 삶을 시작한다는 걸 암시하면서다.
"문정은 자기를 위해 사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반면 그가 돌보는 할아버지 태강은 죽음까지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적인 인물이죠. 문정이 이제는 그렇게 그만 살고, 오히려 태강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결말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 '비닐하우스'의 결말은 열려 있기도 해요. 결국 관객의 마음으로 완성될 것 같네요."
문정을 연기한 김서형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시나리오를 보고서 이 작품을 끝내고 나면 얼마나 감정이 피폐해질까 걱정됐다"면서도 "앞으로 걸어가야 할 제 삶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해 주는 영화였다"고 털어놨다.
'SKY 캐슬', '마인', '종이달' 등을 주연한 그가 저예산 독립 영화인 신인 감독의 데뷔작에 출연한다는 게 다소 의외일 수 있다.
이 감독은 "운이 너무 좋았다. 김서형 배우가 시나리오를 너무 좋게 읽어줬다"며 "배우에게 이 역할이 새롭게 다가온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실제로 본 김서형씨는 그동안 어떻게 그렇게 센 역을 했나 싶을 정도로 순진하고 아이 같은 면모도 있었어요. 실제 말투대로 문정을 소화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귀를 기울여주시고는 그렇게 해주셨죠. 김서형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는 평가가 저한테는 가장 큰 찬사입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먼저 공개된 '비닐하우스'는 CGV상, 왓챠상, 오로라미디어상을 받으며 신인 감독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3관왕에 올랐다.
영화계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죽어도 이런 일은 안 한다"고 다짐했던 이 감독은 충무로에서 주목받는 신예가 됐다. 이제 그의 꿈은 "다음 작품을 찾아보고 싶은 감독이 되는 것"이다.
"차기작으로 코미디 장르를 해보고 싶은데, 제가 쓴 걸 주위에 보여줬더니 하나도 안 웃긴다는 반응이더라고요. 하하. '내가 웃기는 데는 소질이 없나 보다' 생각하고 저 자신과 타협하는 중이에요. 따뜻하고 밝은 영화를 만드는 분들은 많이 계시잖아요. 저는 삶을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 성찰하고 각성하고 고민해보게 되는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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