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비 속 우크라 찾은 尹… 전시국 첫 방문에 담긴 의미는 [尹, 우크라 전격 방문]

이현미 2023. 7. 17.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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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육로·기차 갈아타며 14시간 이동
키이우서 단독·확대 정상회담 후 오찬
대통령궁 인근 전사자 추모의 벽 헌화
“대한민국의 가치·책임외교 실천 기조
아시아 넘어 유럽 현안으로 적용 확장”
우크라 재건사업 참여 명분 강화 행보
정상회담서 살상무기 지원은 언급 안해
민간인 학살현장 둘러보며 변화 관측도
긴박했던 극비 방문 막전막후
취재진에도 우크라 출발 2시간 전 알려
급박한 전황에 최소한의 수행단만 대동
윤석열 대통령의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격 방문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이끄는 국제질서에서 ‘리더 국가’로 부상하려는 윤석열정부의 외교전략이 반영된 행보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왕복 27시간에 걸친 험난한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 정상 최초로 전쟁 중인 국가를 방문했다. 현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안보(군수), 인도, 재건 협력을 망라한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 추진 방침을 밝혔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국빈급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키이우의 대통령 관저인 마린스키궁에서 열린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11시간 체류 위해 27시간 이동

윤 대통령은 이날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항공·육로·기차 3가지 교통편을 섞어 14시간을 이동해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지난해 러시아군의 점령기간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키이우 인근 부차시 학살현장을 먼저 둘러보고, 성 앤드루 성당에서 우크라이나 당국자로부터 인명피해와 러시아군의 대학살, 폭격 현장이 담긴 사진 관련 브리핑을 들었다. 이어 러시아군의 총공세로 도시의 70%가 파괴된 이르핀시 방문을 마치고 수도 키이우로 향했다. 대통령궁 인근의 전사자 추모의 벽을 찾아 헌화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키이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공식환영식, 단독·확대 회담을 한 뒤 정상 부부 간 오찬을 진행했다.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 부부의 직접 안내를 받으며 11세기 건축물인 소피아 성당을 둘러봤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우크라이나 국립 아동병원에 들러 치료 중인 아동과 그 가족을 위로하는 것으로 현지 일정을 마무리했다. 윤 대통령은 K팝에 관심을 갖는 환아를 보며 “우크라이나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 아동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와 키이우 아동인권보호센터를 방문했다. 전쟁 초기 러시아에 납치됐다가 힙겹게 귀환한 300여명의 아동이 치료받고 있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들은 성적 학대나 우크라이나 정체성 지우기 교육을 받았고 러시아군의 사기 진작을 위한 선전 활동에 이용되기도 했다”며 “중대한 인권 탄압과 아동 학대가 자행돼 국제형사재판소가 러시아 지도자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말했다. 센터의 한 아동은 지뢰폭탄탐지견(犬)이 어린아이를 이끌고 가는 모양의 스티커를 김 여사의 손목에 붙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 부부는 약 11시간 우크라이나에 체류하며 일정을 소화했고, 13시간에 걸쳐 다시 바르샤바로 돌아왔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국빈급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간) 키이우 인근의 이르핀 민가 폭격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대한민국 가치외교, 유럽으로 확장”

대통령실은 예고에 없던 우크라이나 방문을 감행한 이유에 대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같은 국제회의에서 간접적으로도 우크라이나 관련 협력 방안을 논의할 수 있지만, 몸소 눈으로 현장을 확인할 때 보다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평가할 수 있다”며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외교, 책임 외교의 실천 기조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글로벌 현안에 적용돼 긴밀하게 연대한다는 명분이 작용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집중호우가 부담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지난 14일) 그 시간이 아니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문 기회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없을 것으로 봤다”며 “당장 한국으로 뛰어가도 (호우 피해)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기에 (현지에서) 수시로 보고받고 지시를 내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에 앞서 미국, 일본 등 G7 정상들은 일제히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와 지난 5월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등 국제무대의 주요 의제는 우크라이나 지원과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결속이었다. 자유진영의 주요 의제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선 우크라이나 직접 방문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한국 정부와 기업이 참여할 명분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한국 기여도를 높이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국빈급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간) 키이우 인근의 부차시 집단학살 희생자 무덤에 묵념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학살 현장 방문, 살상무기 지원엔 선 그어

윤 대통령이 러시아군의 학살·폭격 현장을 직접 둘러보면서 비살상 무기 지원 금지 원칙을 계속 고수할지 여부도 주목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확대 지원방안을 발표했지만 살상 무기 지원은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안보 지원 확대와 관련해 방탄복, 헬멧 등 군수물품만 거론했다. 다만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외신 인터뷰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학살 등이 발생할 때는 인도적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국이 직접적인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초청한 것”이라며 “지뢰탐지와 제거 장비, 아동을 위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과 우크라이나 학생을 위한 디지털 교육 장비 및 프로그램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고 대폭 지원을 요청했다”고 선을 그었다. 국방부도 “비살상무기 지원에 대한 기존 방침에서 변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키이우 마린스키 궁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확대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젤렌스키 친서·통신 보안… 순방 막판 결정

“대한민국 기자가 아닌 분은 나가 주세요. 지금부터 앞으로 2박을 더 하셔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도착하는) 오늘 밤 새벽 2시까지가 가장 위험한 시간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통신을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14일 저녁 폴란드 바르샤바 현지에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취재진을 모아 놓고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계획을 알렸다.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로 출발하기 2시간 전이었다. 폴란드 방문 마지막 날이었던 만큼 취재진은 호텔 체크아웃과 개인 짐 반납 등의 절차를 마무리한 상황이었다. 이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측으로부터 오래전 방문 요청을 받은 사실을 알리며 “경호·안전 문제와 방문 필요성을 놓고 고심 끝에 입장을 정했고 윤 대통령이 결심하면서 방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방한했고, 이번 순방 직전에도 우크라이나 측의 초청이 외교 채널을 통해 전달됐다. 하지만 국가 정상의 신변 안전과 경호 문제가 녹록지 않아 순방 막판에 이르러서야 최종 결정을 내렸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윤 대통령 부부는 항공, 육로, 기차를 번갈아 이용하는 과정에서 노후화된 철로를 달리며 험난한 여정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까지만 해도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제히 “우크라이나 방문 계획이 없다”고 부인해 왔다. 다만 대통령 1호기 출국시간이 14일 오후에서 저녁으로 늦춰졌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취재진 사이에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가능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폴란드 한 지방공항에서 바르샤바 쇼팽국제공항으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등과 호우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은 출국시간 지연이 아닌 아예 출국일을 늦추겠다고 통보했고, 취재진이 각 언론사 구성원과 가족에게 귀국 지연 상황을 알리는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이 특정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최소한의 빈도로 통신을 해주시고 국제전화와 유선전화, 국제문자도 위험하다. 한두 사람에게만 걱정하지 않도록 (우크라이나가 특정되지 않게) 우회적 언어로 통신을 해 달라”며 “교통편은 복잡하고 힘들게 가는데 경호상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고 오늘 밤과 새벽(15일) 사이에 우크라이나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외부의 통신 도감청에 대비해 보안을 지켜 달라는 주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키이우에 대한 러시아군의 자폭 드론 공격 등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김건희 여사를 비롯한 최소한의 수행단을 대동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1차장, 김은혜 홍보수석, 임기훈 국방비서관과 의전비서관실 소속 통역, 경호처 경호관들 정도로 제한됐다. 현장 취재도 대통령실 소속 사진·영상 담당 직원들의 전속 취재로 대체되면서 이번 순방에 동행한 취재진은 모두 바르샤바에 남았다. 윤 대통령은 폴란드에서 바르샤바대 연설을 마쳤던 14일 오후 4시40분 이후 곧바로 우크라이나로 향한 뒤 16일 새벽 바르샤바로 돌아와 귀국길에 올랐다.

바르샤바=이현미 기자, 구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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