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조직 부랴부랴 만드는 기업들…코앞 닥친 공시 의무화
[[Weconomy] 경제의 창]
사업 중심을 천연가스 생산·운송에서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부문으로 재편 중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달 22일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해당 사업을 총괄하는 ‘친환경 본부’를 신설했다. 또 사업 전반의 지속가능 정책을 감독하는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위원회도 만들었다. 한온시스템도 지난 3일 이에스지위원회 신설과 함께 ‘2040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한 ‘탐소감축 이니셔티브’(SBTi) 가입 사실을 알렸다.
이런 움직임은 사실 뒤늦은 감이 있다. 그만큼 친환경 혹은 이에스지를 강조하거나 관련 조직을 만든 기업들이 최근 수년 새 부쩍 늘었다는 뜻이다. 한 예로 등기이사로 구성되는 이에스지위원회를 설치한 기업 수는 매우 가파르게 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자료를 보면, 이사회가 운영하는 내부 위원회 중 이에스지 위원회 비중은 지난해 30.6%다. 해당 비중은 불과 2년 전인 2020년만해도 5.5%에 그쳤다. 주요 기업들은 이사회 내 기능과 목적에 따라 경영위원회·보상위원회·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같은 ‘부문 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최근들어선 이에스지 활동을 감독 또는 관장하는 이에스지 위원회가 이사회 내에 ‘필수 아이템’처럼 빠르게 설치되고 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현대차·엘지전자 등 대형 상장기업 중 이에스지위원회가 없는 곳은 찾기 드물다. 같은 맥락에서 이에스지 활동을 한 눈에 보여주는 ‘지속경영보고서’를 내놓는 상장기업도 수두룩하다.
물론 이런 ‘외형’이 ‘내실’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때론 외형이 진실을 은폐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에스지 평가기관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위원회 숫자는 늘어도 위원회 내 기후환경 전문성 있는 위원은 드물다”며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책임투자를 내실 있게 확대해 나가야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스지워싱(이에스지 경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 논란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이런 흐름 속에 ‘무늬만 이에스지 경영’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장치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그 중심에 ‘공시 강화’가 있다.
■ 배출량 등 리스크 정보 공시 의무 코앞
오는 2025년부터 이에스지 관련 정보 공시의 의무화와 공시 범위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한국회계기준원과 금융위원회는 올해 말까지 세부 방안을 확정·발표할 예정이다.
큰 갈래는 대략 나와 있다. 우선 각 기업들이 발표하는 지속가능보고서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공시 강화다. 현재 한국거래소 공시 규정에 따라 발간되는 터라 지속가능보고서에 담긴 내용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았다. 거래소 공시는 자본시장법에 따른 공시보다 허위나 과장 공시에 대한 처벌 수준이 낮다. 현재 거래소 공시를 자본시장법 공시에 준하는 수준으로 법적 구속력을 높이는 방안과 자본시장법 공시에 따라 제출되는 사업보고서에 지속가능보고서에 담긴 내용을 싣는 방안 등이 논의 중이다.
또다른 논점은 공시 범위다. 현재 지속가능보고서엔 국제 기준에 따라 두가지 형태의 탄소배출량만 담겨 있다. 국내 사업장에서 제품 생산 때 발생하는 직접 배출량(스코프1)과 해당 생산활동이 필요한 에너지원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량(스코프2)가 그것이다. 현재 논의되는 방안은 여기에다 제품 소비 단계와 공급망 단위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스코프3)까지 공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이런 강화 방안은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기업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이웅희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경영지원센터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공시 범위 확대와 공시 구속력 강화는 기업들로선 부담이 커지는 사안이긴 하지만 이는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라며 “투자자 입장에선 신뢰도 높은 이에스지 정보를 같은 산업군에 속하는 기업 간 비교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해당 기업의 미래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해외 수출 기업부터 지원”
이런 공시 확대와 구속력 강화 수준이 큰 만큼 정부 일각이나 자본시장연구원 등 전문가 집단은 적용 시점을 2025년에서 수년 뒤로 미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또다른 쪽에선 외국 정부나 투자자들의 이에스지 정보요구가 거세지고 있다는 점을 들어 도입 시점을 늦추기 보다 수출기업부터 이에스지 공시 강화에 대한 준비를 서두르고, 정부도 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편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한국 정부나 기업이 규제를 늦춘다고 해서 국제 사회의 요구 사항이 늦어지지는 않는다. 정부의 정책 신호가 좀 더 명확해져야 하고 스코프3과 같이 측정이 어려운 배출량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 지원이 필요하다”며 “특히 해외로 수출하는 중견·중소 기업들이 미리 강화된 규제에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이 세계 공급망 내 인권과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공급망 내 기업들의 인권과 환경 실사를 의무화하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 최종안’은 올해 말 확정한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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