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깡의 수렁]④ 피해자 1명당 3.8대 개통… “회선 제한하고 통신사 책임 강화해야”

김유진 기자 2023. 7. 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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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명당 36대 개통해 내구제대출 실행 가능
대리점 휴대폰깡 인지하지만 손해보는 부분 없어
호주·일본, 불공정거래에 통신사 책임 부과
한국은 소비자 책임…통신사 감시 시스템 필요
일러스트=이은현
“개인이 보이스피싱을 조심한다고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내구제대출도 개인의 예방에만 초점을 맞춰선 근절할 수 없습니다. 내구제대출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하는 최일선에 있는 은행은 통장 개설부터 관리하는 등 보이스피싱 예방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구제대출 문제의 중심인 대포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신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정부가 통신사의 역할을 키우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할 때입니다.”

전문가들은 ‘휴대폰깡’의 진화한 모습인 내구제대출(나를 구제하는 대출)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통신사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존 내구제대출에 대한 대책이 수요자를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불법적인 휴대전화 개통을 유인하는 공급자가 나올 수 있는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주도하에 개통할 수 있는 통신 회선을 제한하고, 통신사도 내구제대출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리점 등에 대한 감시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 내구제대출 가능케 하는 통신 구조 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정부의 내구제대출 대책이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요자가 내구제대출을 이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구제대출 사기 일당이 대포폰 자체를 만들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내구제대출의 추가적인 피해를 일으는 소액대출에 대해 정부의 강화된 대책도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마약이 문제라고 하면 마약 수요자만 잡을 게 아니라 공급책을 잡아야 제대로 된 효과가 난다”라며 “내구제대출도 수요자 예방뿐만 아니라 공급 자체를 할 수 없도록 한 사람이 개통할 수 있는 통신 회선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라고 했다.

정부는 대포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개인이 모든 통신사에서 개설할 수 있는 회선을 한 달에 3개로 제한했다. 그러나 내구제대출 실행에는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최근 3년간 내구제대출 피해자의 1인당 휴대전화 개통 대수가 3.8대다. 현행 제도에선 개인은 1년이면 총 36대의 휴대전화를 개통하며 내구제대출을 실행할 수 있다. 주세연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센터장은 “내구제대출은 통상 1~2주 사이에 3대 정도를 개통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통장조차 월에 1개로 개설이 제한되는데 휴대전화 개통을 월 3대로 제한하는 것을 강화해 월에 1~2대까지 제한해야 한다”라고 했다.

지난달 15일 서울시내 휴대폰 판매점.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연합뉴스

정부에서도 관련 부처 간 개통할 수 있는 휴대전화를 더 제한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휴대전화 외에도 태블릿, 스마트워치 등에 필요한 번호가 있어 개인당 개통할 수 있는 통신회선을 더 제한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이 방안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에 정통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최첨단 시대에 번호가 어디에 쓰이는지 모두 알 수 있다”라며 “사업이나 다른 이유로 여러 번호가 필요한 사람은 수고롭겠지만 직접 증명하면 된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대포통장의 경우 19세 청소년이 은행에 가면 통장을 만들기 어렵고 다른 은행 가서는 두 번째 통장 자체를 못 만들지만, 휴대전화는 아니다”라며 “부처 회의에서 ‘자유시장 국가에서 (통신 회선을 추가로) 제한하면 되겠냐는 말까지 나온 것으로 아는데 이건 정부가 휴대전화 파는 업자와 ‘휴대전화 카르텔’을 형성한 것과 뭐가 다르냐”라고 꼬집었다.

◇ 통신사·포털 책임 강화해야

통신사는 3회선 초과 개통 시 개인 신용도를 엄격히 따지고 소액결제도 신규 개통 3개월간은 매월 15만원의 한도를 두며 내구제대출에 대한 통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내구제대출 피해를 줄이긴 부족한 만큼 통신사의 책임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통신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호주·일본 등 해외 사례처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불공정거래가 이뤄질 시 통신사에 책임을 부과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남희 변호사는 “호주 법원에서는 영어가 서툰 원주민에 대해 대리점에서 고가의 단말기와 필요하지 않은 상품을 판매해서 몇백만원의 손해를 입히자 통신사에 대해 440억원의 벌금을 선고했다”라며 “통신사가 직접 거래하진 않았지만 대리점의 행위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역시 고령 소비자들이 많아서 온라인 거래의 피해가 증가하자 소비자가 취소를 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만들었다”라며 “불공정한 거래가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는 명의자, 소비자 책임이지만 호주나 일본에선 사업자가 충분한 관리·감독을 안 하거나, 소비자 피해 막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사업자에게도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라고 강조했다.

일러스트=이은현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금융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불공정 거래가 다양한 방식으로 발생하는데 이를 이용자가 주의해야 한다고 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라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업자 의무를 강력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주세연 센터장은 “내구제대출 피해자와 통신사 대리점에 가보더라도 현장에선 이미 내구제대출인 걸 알고 있고, 통신사도 마찬가지다”라며 “그러나 통신사는 내구제대출로 손해 보는 부분이 없다”라고 했다. 그는 “(피해자가 기곗값을 내지 못하더라도) 서울보증보험이 보증을 해주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주 센터장은 “포털 역시 사이트에 ‘대출’을 검색하면 대부업체 광고부터 뜨는데, 청년층이 공적인 대출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 소액생계비 대출 이상의 자금 지원 필요…교육 필요

정부가 지난 3월 출시한 ‘소액생계비 대출’처럼 맞춤형 자금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소액생계비 대출은 신용평점 하위 20%, 연소득 3500만원 이하의 성인이면 한 번에 5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주거비나 병원비 등 쓰일 곳이 있으면 첫 대출도 1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내구제대출을 이용하는 원인인 소액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내구제대출 이용 유인 자체를 줄인다는 의도로 출시됐다. 하지만 내구제대출 이용자 특성에 맞는 추가적인 금융 지원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청 당일 생계자금을 최대 1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소액생계비대출’ 출시를 일주일 여 앞둔 지난 3월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위치한 중앙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관련 홍보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일정 자격 요건이 있는 소액생계비 대출이나 다른 금융을 이용하기에는 당장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돈을 바로 장만할 수 있는 내구제대출을 이용한다”라며 “하지만 소액생계비 대출도 신청을 한다고 누구나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내구제대출이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는 금융 교육과 홍보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강 부회장은 “청소년, 청년 등 돈이 필요한 사람이 범죄 행위인 줄 모르고 내구제대출을 한다”라며 “돈 몇 푼 받고, 나중에 어떤 범죄에 연루될지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범죄 행위를 엄벌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부의 교육과 홍보가 필요한 사안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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