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D집다] 돌봄이라는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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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같은 주말이 지나자 아이들은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뛰어갔다.
얼마 전 통계청에서 '무급 가사노동 평가액'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평균 기대수명이 86.6세인 여성의 경우 84세가 되어서야 가사노동에서 해방된다는 기사를 봤다.
1인당 가사노동을 성별로 나눠 살펴보니 남성은 31세에 가사노동을 제공하는 양이 받는 양보다 많아지기 시작한다.
반면 여성은 25세부터 가사노동 제공자가 돼 59년간 제공하는 양이 받는 양보다 많다가 84세부터 돌봄을 더 받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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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같은 주말이 지나자 아이들은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뛰어갔다. 농번기면 평일 농사일보다 주말 육아가 더 고되다.
주말에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시기라고 해봐야 사춘기 전까지니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이에게 맞춰 시간과 에너지를 기울이다보면 어른들은 금세 육체적·정신적으로 한계를 느낀다. 돌봄을 받는 아이 처지에선 같이 즐겁게 놀면 되는데 어른의 저질 체력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 8세와 10세인 첫째와 둘째는 제법 동생들을 돌볼 줄 아는 언니와 오빠가 됐다. 양말도 신기고, 머리도 묶어주고, 세살짜리 동생이 어지른 장난감을 대신 치워줄 뿐만 아니라 마른 빨래도 갤 줄 안다. 셋째도 비록 세살이지만 한살 어린 쌍둥이 동생들을 살뜰하게 돌본다고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종종 칭찬을 듣는다. 이렇듯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기 전까지 일정 기간 돌봄을 주고받는다.
얼마 전 통계청에서 ‘무급 가사노동 평가액’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평균 기대수명이 86.6세인 여성의 경우 84세가 되어서야 가사노동에서 해방된다는 기사를 봤다. 1인당 가사노동을 성별로 나눠 살펴보니 남성은 31세에 가사노동을 제공하는 양이 받는 양보다 많아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16년 후인 47세에 다시 제공받는 양이 주는 양보다 늘어나기 시작한다. 반면 여성은 25세부터 가사노동 제공자가 돼 59년간 제공하는 양이 받는 양보다 많다가 84세부터 돌봄을 더 받는다고 한다. 거의 죽을 때가 돼서야 가사노동에서 벗어난다는 것인데, 아마도 조사된 비율을 보니 그조차도 다른 여성의 돌봄 노동 덕인 모양이다.
성별에 따라 돌봄을 주고받는 양의 차이가 막대한 현실 세계의 수치에 새삼 놀랐다. 아들과 딸을 기르는 부모로서 정신이 바짝 드는 기사가 아닐 수 없다. 불평등을 대물림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돌봄은 조금 더 건강한 사람이 조금 덜 건강한 사람을 돌봐주는 상대적인 일인 듯하지만, 주변에선 아픈 할머니가 아픈 할아버지를 챙기거나 더러는 아픈 할머니가 덜 아픈 할아버지를 챙기는 일이 흔하다. 그래서인지 종종 할머니들끼리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는 것이 낫다고, 할아버지 혼자 남으면 딱하다고 한다. 또 우스갯소리라며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저 할머니가 맘 편히 오래 사셨다는 말도 엿들었다.
그만큼 누군가를 정성으로 돌보는 일은 박수받아야 마땅할 일이며, 아무나 할 수 없는 힘든 과정을 묵묵히 감내해야 가능하다. 돌봄 노동자의 희생 없이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더구나 농촌은 초고령화 시대로 접근하고 있다. 농촌 구석구석 돌봄의 수요와 함께 사각지대도 늘어날 것이다.
저출산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이슈인 것은 이제까지 사회복지를 지탱해왔던 가족과 이웃이란 돌봄 노동력으로부터 대대적인 결별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삶이란 살림이다. 누구나 자신과 이웃을 돌보며 산다. 이토록 돌봄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불가결한 삶의 조건일진대, 지금 기울어진 돌봄의 속성과 무게를 꼬집어보는 것은 그저 필자가 청년 여성농민이라서일까?
박효정 농부와 약초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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