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보드와 슈트 챙겨 바다로…야, 너도 파도 탈 수 있어!
조수간만 차 크지 않고 해안선 단순
만이라 물결 다양 … 즐기기 딱 좋아
푸시·업 기본동작 익혀 실전 돌입
10번 도전 끝 중심잡기 성공 ‘짜릿’
적절한 순간 잡아 집중력 발휘해야
최근 몇년 사이 해수욕장 풍경에 변화가 생겼다. 예전엔 사람들이 튜브나 고무보트를 가지고 바다에 뛰어들었다면 요샌 서프보드 하나씩 챙겨 파도를 타는 게 대세다. 휴가철엔 해안선을 따라 수십개 서프보드가 줄지어 있는 장관을 볼 수 있다. 1일 강습으로 기본자세만 익히면 여름휴가 내내 서핑을 즐기며 드넓은 바다를 가를 수 있어 초보자들도 많이 도전한다. 기자도 배워봤다.
“서핑은 파도를 타는 액티비티예요. 3m에 달하는 서프보드 위에 올라타 중심을 잡고 파도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오며 스릴을 즐기는 거죠.”
이맘때 강원 양양군 현남면 죽도해변엔 전국 서퍼(서핑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제 몸집만 한 서프보드를 둘러업고 바다로 향하는 사람, 서핑슈트를 반쯤 걸쳐 입고 준비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백사장 위에서 서핑 기본자세를 배우며 고군분투하는 초보자도 간간이 보인다. 해변가를 따라 줄지어 있는 서핑숍 가운데 서핑 경력 10년차 베테랑 전용찬(42)·김유진(37) 대표가 운영하는 ‘서프러프’를 찾았다.
서핑숍에 들어서자마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서프보드가 휴양지 느낌을 물씬 풍긴다. 안쪽에서 구릿빛 피부를 한 전 대표가 걸어 나오며 서핑의 매력을 설명한다. 그는 “수면 위에 둥둥 떠다니며 집채만 한 파도를 기다리다보면 이렇게 온몸이 탈 수밖에 없다”며 “서퍼들끼린 몸이 새까맣게 탈수록 고수라는 걸 직감한다”고 귀띔했다.
‘서핑의 성지’로 익히 알려진 양양엔 자칭 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서핑하기 알맞은 지리적 요건을 고루 갖추고 있어서다. 동해안은 상대적으로 조수간만의 차가 크지 않고, 해안선이 단순해 큰 파도가 잘 만들어진다. 특히 죽도해변은 바다가 육지 쪽으로 들어와 있는 만(灣) 형태라서 다양한 방향에서 파도가 밀려온다. 주말이면 하루에 1500대에 달하는 서프보드가 떠다닐 정도로 그 열기가 거세다.
서핑을 하려면 서프보드와 서핑슈트, 그 안에 입을 수영복만 있으면 된다. 누구든 2시간이면 기본기를 뗄 수 있다. 우선 실내에서 간단하게 서핑의 역사, 서핑할 때 다치지 않는 법 등 간단한 이론 수업이 진행됐다. 중요한 건 실전. 바로 밖으로 나가 모래사장에서 자세를 배우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곧장 바닷물에 입수한다.
“1번 푸시(Push), 2번 업(Up)만 기억하면 돼요”라며 강사가 시범을 보인다. 서핑의 기본자세 ‘테이크 오프(Take off·서프보드에서 일어나는 동작)’를 설명하는 것. ‘푸시’라고 외치며 손으로 서프보드를 짚고 팔을 곧게 펴 상체를 들어 올리고, ‘업’ 하면 오른 다리 무릎을 구부려 발을 몸 쪽으로 최대한 끌어올린다. 강사는 “허리를 곧추세우는 것보다 엉거주춤하게 서 무게중심을 아래로 가게 하고 허벅지에 힘을 주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코치해줬다.
뙤약볕 아래서 테이크 오프 자세만 30번 정도 했더니 그제야 바다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졌다. 어깨까지 물에 잠길 정도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 서프보드 위에 올라탄다. 머리를 해안가 쪽에 두고 중앙에 맞춰 엎드린 다음 힐끗힐끗 먼바다를 돌아보며 파도가 오는지 지켜본다.
커다란 파도가 다가오면 해안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손으로 물살을 헤치며 추진력을 얻는다. 서프보드가 파도에 올라 앞쪽이 살짝 들리는 순간 재빨리 푸시·업 동작을 해야 한다. 상체만 약간 일으켜 세워도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용기를 내 두 발을 몸 쪽으로 당겨 일어서려고 노력해보지만 중심을 잡는 데 실패해 곧장 물속으로 고꾸라졌다.
10번 도전 끝에 드디어 파도를 제대로 타는 데 성공했다.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서면 파도가 부드럽게 서프보드를 모래사장 쪽으로 밀어줬던 것.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짜릿한 속도와 발끝에서 느껴지는 물살의 일렁임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그토록 사나웠던 파도가 이제는 재미있는 미끄럼틀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강사가 뒤에서 “오, 성공이에요”라며 박수를 쳤다.
한번 성공하면 그다음부터는 확연하게 실력이 향상된다. 이제 5번 파도가 오면 3∼4번 탈 정도다. ‘다음 파도 때는 더 빨리 오른발을 당겨와야겠다’라든가 ‘너무 앞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면 앞구르기를 하게 되니 최대한 뒷발에 힘을 줘 버텨야 한다’는 식으로 몸이 반응했다.
수면 위에 둥둥 떠서 ‘타기 좋은’ 파도를 기다리는 다른 서퍼들과 어느새 ‘내적 친밀감’도 생겼다. 초보자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높은 파도가 왔을 때 이를 자연스럽게 올라타는 능력자가 등장하면 주위에서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한다. 모래사장 근처엔 서프보드에서 떨어져 나뒹구는 초보자들이 모두 같은 자세로 귀로 들어간 물을 털어내느라 정신이 없다.
서핑 고수들은 서핑을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표현한다. 본인이 탈 수 있는 파도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수없이 많이 엎어지고 물을 먹지만 단 한번 성공했을 때 부드럽게 물 위를 가르며 느끼는 통쾌한 기분 때문에 멈추기 어렵단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물살을 온몸으로 만끽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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